배두용 한국 딜로이트 그룹 통상&디지털 통합서비스 그룹 리더(부회장)은 지난 25일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1월 취임한 이후 한국 기업 중에서 그런 의미 있는 의사결정을 한 회사는 없었다”며 “앞으로 그런 결정을 내릴 회사가 나올 가능성은 커졌다”고 말했다. 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기까지 큰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데, 이같은 의사결정을 내렸다는 점은 존경할 만하다는 것이다.
|
배 부회장은 “앞서 LG전자(066570)가 2018년 미국 테네시 공장에 투자한 금액이 3000억원인데, (이번에 현대차그룹은) 그것의 100배를 한 셈”이라며 “현대차가 대규모 투자 결정을 한 배경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제 관점에서는 퍼스트펭귄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퍼스트펭귄은 불확실하거나 위험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도전하는 사람을 뜻한다. 퍼스트펭귄처럼 도전을 한 선구자 역할을 현대차그룹이 했다는 의미다.
이어 “통상 이슈는 기업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라며 “예를 들어 미국 시장에서 (통상 문제 탓에) TV를 6개월 팔지 못한다면, 그 브랜드는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현대차그룹의 투자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배 부회장은 앞서 LG전자에서 대표이사,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을 역임했다. 트럼프 1기 당시 CFO 겸 대표이사로서 LG전자가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하며 테네시주에 세탁기 공장을 설립하는 데 역할을 했다. 배 부회장은 “당시 반덤핑 관세 10~15%를 부과한다는 것이었고, 회사에서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미국 내 생산을 확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보호무역 조치에 대응한 공급망 분석을 통해 생산지를 최적화하는 전략을 누가 먼저 짜느냐가 트럼프 2.0시대 생존전략이 되리라고 배 부회장은 판단했다. 큰 틀에서 한국 정부의 정책 지원도 기업들 입장에서는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 LG전자 근무 당시 트럼프 1기였다. 과거와 지금 달라진 무역 상황은.
△트럼프 1기 때는 대중 견제나 자국산업 보호가 체계적이지는 않았다. 다만 바이든 정부를 넘어가면서도 그 기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트럼프 2기 정부 들어오며 준비가 더 잘 됐고,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1기 때는 대중 견제가 가장 큰 목적이었다면 2기 들어서는 중국뿐 아니라 캐나다, 멕시코, 유럽 등 과거 우방국으로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 과거 LG전자가 테네시 공장을 설립했던 배경을 설명한다면.
- 최근 LG전자도 미국 공장 생산을 늘리겠다고 했다.
△2018년 세탁기 공장을 지을 때 냉장고, 전자레인지 생산에 대한 예상도 했다. 미국 공장의 3분의 1만 세탁기 공장이 들어가 있고, 나머지는 빈 공간이다. 당시 테네시에 공장 부지를 확인하면서 냉장고 생산도 예상해 지반 작업까지는 해놨다.
- 미국 진출에 고려할 것이 많아 보인다.
△미국으로 진출하며 가장 중요한 건 인센티브를 얼마나 받느냐의 문제다. 결국 협상이다. 법인세 감면, 고용에 따른 인센티브 등이 있는데 결국 주정부와의 협상이 필요하다. 땅 역시 좋은 부지를 찾은 것이 매우 중요하다. 철도, 항만 등 물류를 위한 기반 시설이 있느냐도 중요하다. 미국이 4월 2일부터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하면, 경쟁사의 전략적 판단도 매우 중요하다. 이미 경쟁사들이 공장 건설 부지를 갖고 있으면 마음도 급해지고 선택의 폭도 좁아진다. 회사의 사정이나 제품 상황에 따라 다르겠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 관세를 부과하기 전에 그런 작업 해놓는 게 회사에는 도움이 된다. 미국 생산 기지 확대를 위한 준비는 매우 오래 걸린다. 시나리오별 생산원가를 분석해 생산지를 옮기는 것이 유리한지 등에 대한 판단도 필요하다. 협력업체들의 위치, 용수 문제 등 따져야 할 것이 매우 많다.
- 현대차그룹이 31조원 투자를 결정했는데.
△경쟁사가 먼저 미국 시장에 진출할 우려도 고려해야 한다. 투자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2~3년이 걸리고, 공장 짓는데 몇 년이 걸린다. 그래서 ‘그럼 내가 먼저 간다’라는 의사결정을 현대차그룹이 내린 것이다. 모든 사정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제 관점에서는 퍼스트 펭귄이라고 생각한다. 굶어 죽느냐 아니면 뛰어들어서 잡아먹히냐의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이 1월 취임했고, 그 후 의미 있는 결정을 한 회사를 아직 못 봤다. 31조원이면 엄청난 투자 규모다. 사력을 다하겠다는 뜻이다. 대만의 TSMC는 15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아마 한국에서도 이 같은 투자를 하는 회사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결국 그 회사들이 그동안 어떻게 준비해왔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에 준비하는 게 필요하다.
◇ 배두용 부회장은…△서울대 경제학 학사 △서울대 정책학 석사 △미국 조지워싱턴대 회계학 석사 △행정고시 33회 △국세청 조사국 및 국제조세국 △LG전자 전 CFO 겸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