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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혼란은 이 총재의 말처럼 금융당국의 정책 실패 때문이다. 대출 관련 정책이 하루 아침에 갑자기 바뀌는데다 은행마다 기준도 천차만별이라 실수요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리의 대출 상품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일관되지 못한 정책 때문에 죄 없는 실수요자들만 피해를 본 것이다.
스트레스 DSR 2단계 연기가 정책 실패 대표 사례다. 연초만 해도 당국은 이자 부담을 덜겠다면서 은행권 대출금리 인하를 유도했다. 이에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하락했고 ‘디딤돌’ 등 정책대출이 확대되면서 수도권 주택가격은 6~7월께부터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는 7월 시행 예정이던 스트레스 DSR 2단계 적용을 뜬금없이 두 달 미뤘다. 차주들은 ‘대출 한도 쪼그라들기 전에 집 사자’, 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이 폭등세를 이어갔고 가계대출 잔액은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그런데도 집값 안정과 가계빚 축소를 위해 펼친 정책은 그저 ‘조이기’뿐이었다. 지난 8월 이후 5대 은행이 30번이 넘는 대출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들이 대출 축소를 위해 금리를 올린 것에 대해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은행들은 금리 인상을 멈추고 유주택자 대출을 제한하거나 대출 만기를 줄여 한도를 줄이는 조치를 내놨다. 하지만 이 원장이 “가계부채 관리 속도가 늦어지더라도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을 줘선 안 된다”면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 기조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다”고 상황을 수습했다.
부동산 시장은 조금의 정책 빈틈만 보여도 일부 투기자본이 판을 키우고 집값을 띄우는 역사가 지속돼 왔다. 대다수 선량한 실수요자들은 어쩔 수 없이 거액의 대출을 받아 매수 행렬에 동참하고 덩달아 가계부채는 불어나는 수순이었다. 오락가락 정책으로 대출 수요를 자극해 가계빚을 늘린 장본인은 다름 아닌 금융당국이다. 금리인하기에 접어든 지금, 올해의 정책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일관되고 정확한 정책으로 가계대출 경감과 집값 안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