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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재판장 이원신)는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 고문피해자 박씨 등이 제기한 소송에서 “국가는 박씨와 가족들에게 63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총 청구금액 18억원의 30분의 1 수준이다. 다른 고문피해자인 함종호, 손호만, 안상학, 고 우성수씨에 대해선 소멸시효 도과를 이유로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박씨 등은 모두 항소했다.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은 1983년 9월 22일 대구 삼덕동 미문화원 건물 앞에서 폭발물이 터지며 고교생 1명이 숨지고, 행인과 경찰 등 4명이 다친 사건이다. 검경 등 수사기관들은 합동정보신문조를 구성해 1년 2개월 동안 75만명을 용의선상에 올리고 수사를 진행했으나 범인을 밝히지 못한 채 1984년 11월 수사를 종결했다.
◇재심서 국보법·반공법 ‘무죄’, 집시법 ‘면소’
박씨 등은 이 과정에서 용의자로 지목돼 1983년 9~10월 경찰에서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이들은 한달 가까이 불법 구금돼 구타와 고문을 받았다. 검찰은 박씨에 대해 반국가단체 찬양과 이적표현물 소지 등의 혐의(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현저히 사회적 불안을 야기시킬 우려가 있는 집회나 시위를 개최했다는 혐의(구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또 함종호 등 4명에 대해선 집시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대구지법은 1984년 1월 박씨 등에 대한 공소사실 전부를 유죄로 인정하고 박씨에게 징역 3년 집행정지 3년, 함씨 등에게 징역 1년 6월을 각각 선고했다. 항소를 포기한 박씨 등은 같은 해 3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위)는 2010년 6월 박씨 등 사건에 대해 일부진실규명 결정을 했다. 박씨 등은 2013년 5월 대구지법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2016년 3월 재심 개시 결정을 했고, 검찰의 즉시항고로 재심 개시는 2017년 8월 확정됐다.
대구지법은 2019년 10월 재심 사건에서 박씨의 국보법·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당시 조사가 불법구금과 고문 등에 의해 이뤄진 만큼 관련 증거들은 모두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아울러 박씨 등 5명에게 적용된 집시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당시 적용된 조항이 반성적 고려에 의해 1989년 폐지됐다”며 면소 판결을 선고했다. 이들은 재심 판결 후 각각 4600만~4900만원 수준의 구금보상금을 받았다.
◇법원 “면소 부분은 과거사위 결정부터 시효 기산”
박씨 등은 가족들과 함께 재심 판결을 근거로 2020년 8월 국가를 상대로 총 18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이 인정한 배성액 6300만원은 청구액에 비해 턱없이 적다. 특히 박씨를 제외한 나머지 피해자 4명과 그 가족들에 대해선 국가의 배상 책임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집시법 위반과 관련해 “재심면소판결은 재심무죄판결과 달리 판결 확정일이 소멸시효 기산일이 될 수 없다”며 “소멸시효 기산일은 적어도 과거사위의 일부진실규명 결정이 나온 2010년 6월로 봐야 하므로 시효가 도과됐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과거 집시법 유죄 판결에 대한 배상책임에 대해서도 “면소 사유가 없었다면 무죄 사유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할 만한 고도의 개연성 있는 증명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냈다.
유일하게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박씨의 국보법·반공법 수사·판결 부분에 대해서도 위자료만 인정했다. 위자료로 박씨에 대해서 7000만원, 부모에 대해선 각 1500만원 등을 책정하면서도 박씨가 이미 받은 구금보상금 4876만원을 공제하도록 했다. 박씨가 손해배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 일실수입에 대해선 “박씨가 일실수입 산정 기초가 되는 직업 등에 대한 구체적 주장을 하지 않았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