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약품 유통업계의 ‘대모’로 불리는 조선혜 (주)지오영 회장은 국립병원 약제과장을 하다 뛰어나와 회사를 설립한 지 16년만에 이분야 1위 업체로 키워낸 비결을 이같이 요약했다.당시 2자녀를 둔 어머니였지만 “의약품 유통회사들의 낙후된 영업방식에 분통이 터져 직접 선진시스템을 구축한 의약품 유통회사를 만들어 보겠다”며 회사를 차렸다.
창업후 연평균 15%가 넘는 급성장세를 거듭해온 지오영은 한국경제의 미래성장 핵심 동력으로 자리매김한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을 통틀어 명실상부하게 가장 규모가 큰 회사로 우뚝섰다. 업계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이유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거의 모든 의약품 2만여종을 유통한다. 지난해 매출규모는 2조3223억원. 이는 같은 기간 국내 제약 1위 기업인 유한양행(1조4622억원)과 2위 기업인 GC녹십자(1조2879억원) 매출을 합한 것과 엇비슷한 규모다.
“다행스럽게 나는 사업에 관한한 동물적 감각을 선천적으로 타고난듯하다. 이 감각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의약품 유통산업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변화를 경쟁사보다 한발 앞서 예측하고 이에 대비하기 위한 방편을 마련하다보니 회사가 자연스럽게 성장가도를 달려왔다.”
조 회장은 지금까지는 자신의 타고난 사업가 기질과 미래에 대한 예측력이 시너지를 내면서 사업 시작후 큰 부침없이 탄탄대로를 달려올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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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초기 영업과 배송을 분리해 운영하는 이른바 ‘상물분리’ 제도를 업계 최초로 도입한 게 대표적 사례다. 영업하는 직원들이 약품 배달까지 함께 해오던 의약품 유통업계에는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였다. 영업과 배송을 분리하다 보면 필요로 하는 직원규모가 2배 가까이 늘어난다는 점 때문에 기존 업체들은 엄두도 못내던 역발상이었다.
조 회장은 “영업과 배송 업무를 나누다보니 영업은 전문성이, 배송은 정확성과 신속성이 각각 높아지면서 경쟁사들을 압도할수 있었다”며 “이는 주요 거래처인 제약사는 물론 약국, 병원이 어느 유통업체보다 지오영을 신뢰할수 있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가 이 제도를 도입하자 경쟁사들은 ‘저런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제도가 제대로 굴러가겠느냐. 몇년하고 그만 둘수 밖에 없을 것이다’고 외면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이 시스템이 안착하면서 탁월한 효과를 거두는 것을 보자 경쟁사들은 지오영보다 7~8년이나 뒤늦게 하나,둘씩 도입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규모가 크지 않은 상당수 의약품 도매업체들은 이 제도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지오영이 사업 초기 업계 최초로 인천에 8000평 규모의 자동화 물류센터를 구축한 것도 업계에는 충격으로 다가왔다.사업 초창기라 자금여력이 넉넉치 않은 상황에서 이 물류센터 건립에만 350억원을 쏟아부었다. 당시 이 금액이면 어지간한 제약사를 인수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주변에서는 ‘약 팔아서 얼마나 남는다고 그렇게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느냐’며 만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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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물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한 결과 현재 전국에 모두 21개곳의 물류센터를 두고 촘촘한 전국 물류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전체 직원 1796명 가운데 물류 직원이 절반이 넘는 987명을 차지할 정도로 물류 경쟁력을 중시한다.
사업초기부터 적극적인 인수·합병(M&A) 전략을 펴면서 몸집 부풀리기로 규모의 경제를 단기간에 이뤄낸 것도 지오영을 국가대표 의약품 유통업체로 발돋움하게 한 원동력이다.
특히 조 회장은 전국을 권역별로 쪼개 주요 지역마다 대표적인 의약품 유통업체를 차례로 인수하면서 전국적인 영업 및 물류망을 구축하는 길을 선택했다. ‘전국구’없이 지역별 ‘맹주’들이 의약품 유통시장을 쪼개서 장악하는데 만족하고 있던 업계에서는 첫 시도였다. 조 회장의 인수·합병을 통한 전국망 구축 전략은 의도대로 들어 맞으면서 지오영은 최초 전국구 의약품 유통업체로 부상하게 된다. 당시 인수한 부산,대구,대전,광주,강원도,제주도 지역 주요 의약품 유통업체 5개사는 현재 지오영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면서 회사성장의 주춧돌 역할을 하고있다.
여기에 지난 2005년에는 업계 최초로 거래처들이 온라인상에서 의약품을 주문할수 있는 웹주문 시스템을 자체 개발해 오픈하면서 차별화된 온라인 유통경쟁력을 확보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이는 의약품 유통업체에서는 보기 드물게 40여명 규모 IT팀을 두고 평소 물류 및 배송 시스템의 전산 자동화에 역량을 집중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지오영은 별도 IT조직을 거느리고 있는 유일한 의약품 유통업체로 꼽힌다. 조 회장은 “웹으로 주문하는 것은 다국적 제약사들이 가장 선호하고 있는 유통방식이다”며 “향후 해외시장 진출등을 위한 노하우 축척차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 회장이 이런 일련의 혁신적 전략을 치밀하게 추진할수 있었던 배경에는 ‘선진화, 대형화,투명화’라는 경영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그의 ‘투명화’ 경영철학은 리베이트가 만연해 있던 업계에서 ‘리베이트 제로’ 의약품 유통업체라는 신기원을 이뤄내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리베이트 제로 회사의 명성은 몇년 전 서울서부지검에서 리베이트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지오영을 샅샅이 뒤졌던 한 검사를 통해 더욱 빛을 발했다. 그 검사가 리베이트로 적발당한 다른 의약품 유통업체 대표에게 “매출이 수조원에 달하는 최대규모 업체인 지오영도 리베이트 하나 없이 영업하는데 조그만 업체가 리베이트를 주면서 영업하면 되느냐”며 호통을 친 일화가 업계에 회자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지분을 털었지만 세계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국내 의약품 관련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지오영에 자본출자를 한 것도 이 회사의 투명성과 성장성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라는 게 조 회장의 설명이다.
“의약품 유통을 뛰어넘어 종합 헬스케어 서비스 업체로 도약하는 것을 준비하고있다. 헬스케어 제품의 주문,결제, 배송 서비스는 물론 혁신적 IT역량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약사, 약국,병원 그리고 일반환자까지 유기적으로 연결한 다양한 서비스를 구상하고 있다.” 한국 의약품 유통업계 대모의 미래 청사진이다.
△ 조선혜 회장은
◇ 1977년 숙명여대 약대 졸업 ◇1980년 지방공사 인천병원 약제과장 ◇2002년 (주)지오영 대표 ◇2006년 한국의약품유통협회 수석 부회장 ◇2013년 대한약사회 부회장 ◇2018년 한국의약품유통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