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인형극'이 19禁인데 '씨받이연극'이 12可라고?

이윤정 기자I 2016.07.26 06:16:00

''관람등급 심의기관'' 없는 공연계 괜찮나
15禁 청소년 동성애 다룬 ''베어 더 뮤지컬''
7可 살인마 스토리 ''잭더리퍼''
관람등급 심의기관 따로 없고
선정성과 작품성 구분 모호해
제작사가 눈치껏 ''고무줄 등급''...

성인인형극 ‘꽃다방’의 한 장면. 성적 코드를 버무려 현대인의 삶과 애환을 코믹하게 풀어냈다. 현재 공연계에는 심의기관이 따로 없어 제작사가 자체적으로 ‘관람등급’을 정하고 있다(사진=프로젝트그룹 결사대).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보이는 라디오 ‘꽃다방’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영화 ‘사랑과 영혼’의 유명 OST ‘언체인드 멜로디’가 흐르는 무대 위. 사연자 중 한 명인 김 작가가 등장했다. 그가 정성을 다해 빚어낸 작품은 ‘남근’. 이후 충남 보령에 사는 녹두씨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형편이 어려워 남몰래 ‘노래방 도우미’를 하는 녹두엄마와 이방과의 정사 장면은 실제처럼 세밀하게 묘사했다. 극에선 익히 알고 있는 고전동화 ‘금도끼 은도끼’도 성인동화로 둔갑했다. “연못에 금도끼 말고 여자도 있나요? 장가 좀 가게 해주세요.” 산신령은 금도끼를 주는 대신 자신도 역시 써보질 못했다며 적나라하게 성기를 드러낸다. 국내 최초로 선보인 19금 성인인형극 ‘꽃다방’(7월 31일까지 다르게놀자 소극장)의 한 장면. 인형이 코믹하게 묘사하는 어른들 이야기에 객석에선 연신 웃음이 터진다.

‘19금’이란 단어에는 누구나 호기심을 갖게 마련이다. 미디어가 급속도로 발달했지만 영화의 노출수위와 등급 판정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영화만이 아니다. 직접 눈으로 보는 무대예술에도 관람등급이 있다. 성인인형극 ‘꽃다방’을 비롯해 앙코르 공연하는 뮤지컬 ‘쿠거’(8월 21일까지 유시어터)는 초연부터 ‘19금’을 내걸었고, 청소년의 마약·동성애 등 파격적인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베어 더 뮤지컬’(9월 4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은 ‘15금’으로 관람연령을 제한했다.

하지만 문제는 공연계의 등급 설정이 주먹구구식이란 것이다. 영화의 경우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로 관람등급을 엄격하게 정한다지만 공연계에는 심의기관이 따로 없어 제작사가 자체적으로 등급을 설정하고 있다.

뮤지컬 ‘베어 더 뮤지컬’의 한 장면(사진=쇼플레이).


△공연계도 ‘19금’ 논란

19금 공연은 공연계에서도 논란거리가 돼 왔다. 1995년 연극 ‘미란다’의 주연 겸 연출자는 공연음란죄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극 중 여주인공이 나체로 약 10분간 2차례나 출연하는데 이를 통해 여성의 신체를 상품화하고 지나친 상업적 의도를 드러냈다는 혐의다.

2009년에는 연극 ‘교수와 여제자’의 노출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성기능 장애를 겪는 교수가 여제자와 성관계를 맺고 회복된다는 내용을 담은 작품으로 여제자 역을 맡은 여배우가 올 누드로 출연하며 화제를 모았다. 당시 제작사가 ‘30세 이상의 관객만 입장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놨음에도 노출 마케팅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이가 많았다.

이외에도 2011년에는 연극 ‘가자! 장미여관으로’가 자극적인 성행위 묘사와 배우들의 파격적인 전라연기로 외설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12년 섹슈얼연극을 표방한 ‘러버’와 19금 연극 ‘불 좀 꺼주세요’ 역시 선정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렸다.

클래식장르에도 있다. 성매매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 나오는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와 여성의 상반신 노출장면을 담은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 등의 DVD 관람등급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국정감사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뮤지컬 ‘쿠거’의 한 장면(사진=쇼플레이).


△제작사가 정하는 ‘관람등급’…심의기관 없어

현재 공연계에는 ‘관람등급’을 정하는 심의기구가 따로 없다. 등급은 전적으로 제작사의 자체 판단에 따른다. 해외 국가에서도 공연에 관람등급을 제한하고 있진 않다. 공연은 TV나 영화와 다르게 다소 비싼 돈을 지불하고 선택해서 즐기는 문화이기 때문에 같은 수준으로 콘텐츠 제재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애매하게 관람등급을 책정하는 일도 벌어진다. 연쇄살인마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잭더리퍼’(10월 9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의 관람등급은 만 7세 이상이고, 씨받이 등 고전적 내용으로 웃음을 선사하는 에로틱연극 ‘수상한 궁녀’(8월 14일까지 공간아울)는 ‘만 12세 이상’이면 입장할 수 있다.

공연에 ‘관람등급’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관객이 여전히 많은 것도 문제다. 실제 공연장에서는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않고 입장하려는 관객과의 실랑이가 자주 벌어진다. 티켓매니지먼트사인 오픈리뷰의 김희정 팀장은 “문자와 팝업창으로 공지를 해도 현장에 와서 ‘관람등급’을 몰랐다며 따지는 관객이 있다”며 “특히 뮤지컬의 경우 티켓가격 자체가 비싸기 때문에 현장에서 입장을 제한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공연계에서도 어느 정도의 제재는 필요하지만 전면적으로 ‘관람등급’을 두는 건 문제가 있다는 반응이다. 송형종 서울연극협회장은 “과거 연극 ‘오셀로’를 공연할 때 원작에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노출장면에 항의하는 관객이 있었다”며 “단순히 상업적인 목적만으로 노출공연을 만들 것이 아니라 양질의 공연문화 형성을 위해 작품성을 갖추려는 자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인인형극 ‘꽃다방’의 한 장면(사진=프로젝트그룹 결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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