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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아닌 경찰입니다]여경 1만2천명…유리천장·육아·성희롱 '3중고'

이승현 기자I 2017.03.08 05:30:00

올해 기준 1만 2300여명, 전체 경찰 10.6% 차지
활약 늘었지만 '유리천장' 여전…10명 중 8명 하위직
여경 대상 성범죄·보육 부담 등 해결 과제 산적해

지난해 9월 2일 충북 충주 중앙경찰학교에서 열린 제288기 졸업식에서 신임 여경들이 힘차게 행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8일은 유엔이 지난 1975년 세계 여성의 지위 향상과 권익 보호를 위해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2015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GNI)이 2만 7340달러로 우리나라는 경제 선진국으로 발돋움 했지만, 세계경제포럼(WEF) 성별격차지수(GGI)로는 144개국 중 116위(2016년)에 불과하다. 양성평등 사회가 되려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민중의 지팡이’로 불리는 경찰 조직 내에서도 양성 평등 실현을 위한 과제는 산적해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창설 71주년을 맞은 여경(女警)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이데일리 이승현 유현욱 기자] 초급 간부(경위) 배출 주요 통로인 경찰대의 ‘여풍’(女風) 현상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지난해 제32기 경찰대생·제64기 간부후보생 합동 임용식에서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 행정자치부 장관상을 모두 여성이 차지했다. 2002년(18기)과 2006년(22기)에 이어 지난해(32기) 역시 경찰대 졸업성적 1~3위를 여성이 휩쓸었다.

지난 1946년 경무부 공안국 여자경찰과 79명으로 시작한 여경은 올해 1월 기준 1만 2348명까지 늘었다. 업무도 행정 지원과 성매매 여성·청소년 담당 등에서 수사와 경비, 정보 등 모든 영역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 위주인 조직에서 구조적 요인 등으로 적지 않은 차별을 겪고 있다. 심지어 여경을 상대로 조직 내 성범죄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올해로 여경 창설 71년이 됐지만 조직 내 양성 평등을 위해 개선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10% 달성했지만…10명 중 8명은 ‘하급직’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1월 기준 전체 경찰 11만 6812명(의경 제외) 가운데 여경은 1만 2348명(10.57%). 지난 2005년 ‘10년 내 여경 10%’를 목표로 채용을 확대한 결과다.

직무 분야도 다양해지고 있다. 절반 이상(6416명)은 일선 지구대·파출소에 배치돼 생활안전 분야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업무의 꽃으로 불리는 수사 분야에서 일하는 여경도 2244명이나 된다.

지난 2012년 기준 생활안전 2452명·수사 1650명이었던 것에 비해 5년 만에 각각 3964명과 594명이 늘었다. 같은 기간 교통 분야는 663명에서 892명으로 229명 증가했다.

반면 일반 경무(감사·홍보·정보 장비 포함) 분야 여경은 2012년 1502명에서 2017년 1507명으로 제자리 걸음이다. 이 기간 여경이 총 5154명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줄어든 셈으로, 행정 업무보다 치안 현장에서 활약하는 여경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다.

하지만 경찰 조직 내 ‘유리천장’은 여전히 견고하기만 하다.

가파른 피라미드 형태인 경찰 조직에서 여경들은 대부분 하급직에 머물고 있다. 올해 1월 기준 전체 여경의 81.45%가 순경·경장·경사다. 5년 전 85.1%에 비해 크게 나아진 게 없다. 남자 경찰 중 이들 계급 비율은 47.34%다.

초급 간부인 경위는 1700명으로 13.77%다. 일선 경찰서장인 총경은 총 539명 중 13명, 지방청 차장급인 경무관은 67명 중 고작 2명이다.

일선 서장을 지낸 한 전직 여경은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강력히 추진해 결국 10% 목표는 달성했지만 이후 수뇌부는 15~20%로 여경 비율을 높이는 것을 꺼리는 것 같다”며 “재직 시절을 돌아보면 남성은 여성 처우에 대한 공감이 부족했고 여성은 앞가림에 바빠 자신들의 처우 개선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편견 타파·성범죄 근절·보육 확충 등 과제 산적

간부급 여경 확충 문제와 관련,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찰대 신입생 모집에서 현재 12%인 여성의 비중을 높일 것을 권고했지만 경찰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경찰대는 1989년 정원의 4.7%를 여성으로 뽑은 뒤 1997년부터 10%, 2014년부터 12%까지 확대했다. 순경 공채의 경우 여성 채용 비율은 약 20%다.

인권위는 “‘여경 채용 목표제’의 진정한 실현을 위해선 하위직뿐만 아니라 고위직에도 여성 비율을 확대해야 한다”며 “초급 간부로 임명되는 경찰대 신입생의 여성 비율을 하위직 경찰에 비해 낮은 12%로 설정하는 것은 지나친 제한”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이철성 경찰청장은 지난해 말 기자간담회에서 “해외에서도 (여경 비율이)우리 보다 높은 곳이 별로 없다. 경찰은 일종의 완력이 필요한 직업”이라며 다소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심지어 동료나 부하 여경을 상대로 한 성범죄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지난 2015년 8월 강신명 당시 청장은 성범죄 혐의가 명백한 경찰에 대해 감찰 단계에서 즉각 파면 또는 해임하고 수사 의뢰를 의무화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시행키로 했다. 수위가 다소 낮은 성희롱에도 정직 이상의 중징계를 받도록 했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에도 경찰 조직내 성범죄는 끊이지 않는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6년 6월 기준 최근 1년간 동료 여경 등에 대한 성범죄로 징계 받은 경찰이 40명에 이른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계급 사회에선 부하 직원의 인격까지 지배·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지휘관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회식자리 등에서 성범죄를 저지른다”며 “상관들의 비뚤어진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지속적인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보육 문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난해 9월 기준 6세 미만 자녀가 있는 여경은 3621명, 육아휴직을 낸 여경은 1030명이다. 경찰은 장소는 민간에서 임대하고 관리는 직접하는 방식으로 직장 어린이집 22곳을 운영하고 있다. 야간 및 비상 근무가 많은 업무 특성을 반영해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아이를 돌봐준다. 그러나 전체 엄마 여경 수에 비하면 어린이집 수용 인원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곽 교수는 “구색 맞추기 수준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간부가 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해야 한다”며 “여경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장과 배려, 조직 문화 개선 등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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