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100년전 골목길로 시간여행…낭만에 추억은 덤

강경록 기자I 2014.11.11 07:49:55

시간이 멈춰선듯...대구 근대골목투어
계산성당 90계단에선 ‘3·1 운동의 애환’이
청라언덕, 약전골목 길에선 ‘문인의 향기’에 흠뻑
허름한 골목길을 환히 비추는 ‘김광석의 얼굴’

근근대문화골목의 둘째구간인 3·1만세운동길. 3·1만세운동길은 제일교회 신관 왼편의 90계단으로부터 이어진 오르막길로 당시엔 소나무 숲이 울창해 ‘대구의 몽마르트’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대구는 근대 건축물이 옛 모습을 지키고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낙동강 남쪽에 위치한 덕에 한국전쟁의 피해를 크게 보지 않았던 때문이다. 고층빌딩의 뒷편, 무심히 길을 꺾어 들어선 대구의 골목에선 ‘툭’ 지나간 시간과 마주치게 된다. 낡고 비좁은 거리지만 누군가에게는 애잔한 추억과 삶의 기쁨, 또 슬픔이 깊이 서려 있는 곳. “너무 낙후돼 개발의 삽날이 비켜가서” 살아남은 거리 구석구석에는 온전히 또는 마구 덧칠된 선인들 발자취가 널려 있다. 최근 대구의 옛 거리가 새삼 빛을 발하고 있다. 문화유산이 돼가는 삶의 흔적이 낡은 거리 골목에서 걸어나와 여행자들에게 굳은살과 속살을 거침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근대문화골목 투어’가 바로 그런 여행이다. 골목길 곳곳에는 1800년대 말부터 한국전쟁까지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구석구석 한 시대를 살아간 인물과 역사적 사건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 골목으로 들어가 본다.

국내 고딕양식의 성당 중 대구의 계산성당(위사진)은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 번째다. 100년 넘은 성당은 그 자체가 오롯한 ‘대구의 역사’다. 멀리 왼쪽으로 제일교회가 보인다.


△근대와 현대의 절묘한 조화 ‘대구 근대문화골목’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나리 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출발점은 동무생각 작곡가 박태준의 짝사랑이 시작된 곳, 청라언덕이다. 청라는 ‘푸를 청(靑)’에 ‘소나무이끼 라(蘿)’ 자를 쓰는데, 언덕 위 제일교회 주변에 서 있는 3채의 선교사 사택 담을 타고 올라간 담쟁이넝쿨을 보고 붙인 이름이다.

대구 근대문화골목는 청라언덕을 시작으로 90계단을 거쳐 계산성당, 이상화 고택, 서상돈 고택, 제일교회, 약전골목, 염매시장, 진골목에 이르는 약 1.5㎞의 골목길이다. 비록 고층아파트와 아스팔트 도로가 곳곳에 생채기를 냈지만 그곳에는 옛 정취와 애환이 조각처럼 선명하게 각인돼 있다.

나무전봇대 가로등을 지나 계산성당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90개의 계단으로 이뤄진 골목길이 나온다. 옛 신명여학교 담장과 이웃한 90계단은 3·1운동이 일어났던 진원지. 계단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대구에서 유일하게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이 보인다. 길은 다시 아스팔트 대로를 건너 계산성당으로 진입한다. 1902년 적색과 흑색 벽돌로 건축한 계산성당은 영남 최초의 고딕양식 성당이다. 김수환 추기경과 교황 요한 바오르 2세는 물론 안중근 의사의 체취가 묻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박정희 양과 육영수 군의 결혼 주례사’ 일화도 이곳 계산성당에서 탄생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로 잘 알려진 이상화 시인의 고택은 검은색 외투에 검은색 중절모를 쓰고 뒷짐을 진 시인의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1939년부터 임종할 때까지 4년 동안 거주했던 고택은 아담한 한옥으로 마당에는 석류나무 한 그루와 우물이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이상화 시인 고택 맞은편의 한옥은 국채보상운동으로 유명한 서상돈 선생의 고택. 서 선생은 1907년 국권회복운동 차원에서 일본에 빌린 국채를 국민모금으로 갚자는 운동을 주도한 인물. ‘남자는 금연을 하고 여자는 은비녀를 뽑아 국채를 갚자’는 서 선생의 외침은 90년이 흐른 뒤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으로 승화한다. 서상돈 고택을 돌아 나가면 계산성당의 검은색 쌍둥이 종탑과 청라언덕에 위치한 제일교회의 하얀색 쌍둥이 종탑이 나란히 보이는 성밖 골목이 보인다. 골목은 분명 한국의 골목인데 담장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유럽의 도시를 닮았다.

길은 다시 200여개 한약방과 한의원이 모여 있는 약전골목을 지나 염매시장까지 이어진다. 약전골목 일대는 소설가 김원일의 자전적 소설 ‘마당 깊은 집’의 무대로도 유명하다. ‘마당 깊은 집’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마당이 넓은 솟을대문 집에 세들어 살던 사람들의 애환을 그린 소설로 골목 곳곳에는 정소아과 등 소설에 등장하는 집들이 몇채 남아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후미진 골목길 옹벽에 그려진 김광석


△골목길 환히 비추는 김광석의 얼굴, 김광석길

‘검은 밤의 가운데 서 있어/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에 있을까.’ 가수 김광석이 부른 ‘일어나’ 중 일부다. 그는 이 노래로 사랑에 다친 연인들의 마음과 시대에 짓눌린 가슴들을 만져주었다. 그가 떠난 지 어느덧 18년.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허름한 골목길을 환히 비추고 있다. 사람이 사라진 거리에 머무는 노래,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하 김광석길)이다.

김광석길은 대구 중구 대봉동의 신천대로 둑길 아래 방천시장이 끝나는 지점에 있다. 방천시장과 둑길 사이의 폭 3m 남짓의 길이 300여m가 전부다. 원래 이 길은 해가 지면 사람의 발길이 끊기고, 상인들이 버린 쓰레기만 쌓여 있던 어둡고 냄새나는 그런 뒷골목이었다. 변화가 시작된 건 2012년 이후. ‘방천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부터다. 전통시장을 문화를 통해 살려보자는 시도가 문전성시 프로젝트였다. 시장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하는 가운데 가장 큰 고민거리로 떠오른 곳이 바로 이곳, 김광석길이었다.

길은 골목 초입에 있는 기타 치는 김광석 조각상에서부터 시작한다. 기타를 치고 있는 김광석 동상은 초입과 골목길 중간에 하나씩 설치됐다. 조각가 손영복의 작품이다. 골목길로 들어서자마자 담벼락에는 대형만화가 그려져 있다. 김광석이 이루지 못한 꿈은 그림으로 이뤄졌다. 기타를 메고 미소를 지으며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있는 김광석은 화가 이슬기의 작품이다. 시인 정훈교는 ‘골목은 사내가 빠져나간 것과 상관없이 낡아갈 것이고 점점 무덤의 곡선을 닮아갈 것’이라는 시 ‘벽화에 세들어 사는 남자’로 발길을 붙잡는다. 사람들은 그렇게 세상에 없는 가수 김광석과 대화를 나눈다.

김광석길은 요즘 ‘새옷’ 입을 준비를 하고 있다. 김광석을 그린 수많은 벽화들이 시간의 흔적을 벗고 낙서의 때도 지우는 작업 중에 있다. 벽화 단장은 아직 진행 중이다. 통기타를 치면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김광석과 사진을 찍고 추억에 잠겨보기에 더 좋은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게다가 군데군데 아름다운 집과 가게들이 하나둘 들어서고 있어 걷고 보는 즐거움을 한층 북돋우고 있다. 이달 말쯤이면 그 길 중간쯤 작은 야외 공연장도 들어선다.

대구 이월드 83타워에서 바라본 대구 전경의 모습


◇여행메모

△가는길=수도권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구IC로 빠지면 된다. KTX를 이용한다면 서울역에서 동대구역까지 2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

△볼거리=근대문화골목 말고도 경상감영달성길(1코스), 패션한방길(3코스), 삼덕봉산문화길(4코스), 남산100년 향수길(5코스), 야경투어, 맛투어 등 다양한 골목투어가 있다. 달성군에 있는 도동서원은 퇴계가 ‘우리나라의 도학의 큰바탕’이라 칭송한 김광필(1454~1504)를 모신 서원. 대니산 고개를 넘어 찾아가는 길과 누각에서 바라본 낙동강 풍경, 묵은 한옥 고가의 정취가 두루 아름다운 곳이다. 수성못이 확 달라졌다. 수성구는 지난해
65억원을 들여 ‘수성못 생태복원사업’을 추진했다. 생태복원사업을 통해 기존 콘크리트 호안을 갈대나 붓꽃 등 수변 식물로 단장했다. 수중에는 연꽃, 꽃창포 등 수생식물을 심고 산책로 주변 녹지에는 맥문동, 수호초 등 20여만 포기의 화초류를 심었다. 산책로도 새로 마련했다. 못 동편에 마사토 산책로를 만들어 기존 산책로와 연결했고 수변과 접한 부분에는 데크로드 180m, 전망데크 5곳, 관찰데크 1곳, 수변 무대 1곳 등을 설치했다. 여기에 조명등도 있어 밤에는 아늑한 분위기의 야경이 연출된다. 오후 8시와 9시 두 차례 펼쳐지는 영상음악분수쇼도 볼만하다.

△잠잘곳= 최근 대구서 가장 핫한 숙박업소는 게스트하우스인 ‘더 스타일’(053-214-6116)이다. 중구 서성로에 위치해 있다. 보유하고 있는 침대 수만 56개로 대구 도심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그렇다 보니 단체 배낭여행객이 선호한다. 자작나무로 만들어진 침대는 벙커 형식으로 돼 있고, 커튼과 LED 등도 있어 사생활보호도 가능하다. 건물 1층은 카페와 놀이공간으로 구성돼 있으며 외국인 게스트하우스 스태프가 함께 대구여행을 즐기는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최근에는 한옥 게스트하우스인 ‘더 한옥&스파’도 오픈해 운영 중이다. 2인실 5만원, 4인실 3만원, 도미토리 2만 5000원. 서성로 14길 26번지(서내동).

△먹을곳=달성군 현풍백년도깨비시장 내의 현대식당(010-3822-4634)의 수구레국밥(5000원)이 별미다. 수구레는 소의 가죽에서 떼어낸 지방육. 걸죽하고 매콤하다. 남구의 진흥반점(053-474-1738)은 전국 5대 짬뽕집으로 유명한 곳. 이곳 짬뽕(6000원)은 직접 돼지고기를 삶아 진한 맛을 낸 육수가 일품이다. 특이한 점은 재료가 떨어지면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점.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 보통 오후 3~4시면 문을 닫는다. 1957년 문을 연 대구의 삼송베이커리(053-254-4064)는 대구 제빵업계의 원조 빵집 중의 하나. 구운고로케, 소보로단팥빵, 크림치즈찰떡빵, 마약빵(통옥수수빵) 등 단 4종의 특화된 빵만 내놓고 있다. 특히 마약빵은 먹을수록 그 맛에 중독된다는 뜻으로 손님들이 ‘마약 빵’이란 별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전통 소구레 전문점 ‘현대식당’의 소구레 국밥
전통소구레국밥전문점 ‘현대식당’의 소구레국밥
전통소구레국밥전문접인 ‘현대식당’의 소구레국밥
다람재에서 바라본 달성군 도동서원의 전경
도동서원 앞을 400년간 지켜온 은행나무.
대구 이월드
대구 이월드 83타워
대구 이월드 83타워에서 바라본 이월드 전경
대구 이월드 83타워에서 바라본 대구 전경의 모습
대구 달서구의 성당못의 해질녘 전경
삼송베이커리에서는 즉석에서 빵을 반죽해 구워낸다.
삼송베이커리에서는 갓 구운 ‘빵’을 즉시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대구 수성못의 아침 전경
전국 5대 짬뽕 중 하나인 진흥반점의 ‘짬뽕’
전국 5대 짬뽕 중 하나인 진흥반점의 ‘짬뽕’
근대문화골목 출발지인 청라언덕에 있는 선교사 챔니스의 주택. 콘크리트 기초 위에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2층 집이다. 현재는 의료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결혼식을 올린 계산성당.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김광석 다시 그리기길
김광석 다시 그리기길
김광석 다시그리기길
김광석 다시그리기길
김광석 다시 그리기길
김광석 다시그리기길
김광석 다시그리기길
김광석 다시그리기길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