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은 자산 400조 시대를 열었다. 삼성그룹을 포함해 현대자동차·SK·LG·롯데 5대그룹이 보유한 자산은 자산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의 총 자산 중 54%를 차지할 정도로 쏠림현상이 심화했다. 동일인 지정 논란과 연관해 재벌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해 만든 30년 묵은 대기업집단 규제를 재검토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5일 자산 5조원 이상 59개 공시대상기업 집단을 지정했다. 지난해 삼성, 롯데에 이어 재벌그룹 오너일가의 세대 교체가 가속화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삼성 이재용 부회장과 롯데 신동빈 회장을 새 동일인으로 직권 지정했다. 기존 동일인이었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와병 상태이고, 신격호 롯데 회장은 한정후견인 판정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올들어서는 LG그룹과 두산그룹에 새로 동일인을 지정했다. 한진그룹은 조양호 전 회장의 작고 이후 내부적으로 동일인을 정하지 못하자, 공정위가 직권으로 조원태 한진칼 사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다.
반면 경영승계에 나선 대림 효성 코오롱 동원그룹은 기존 이준용 명예회장, 조석래 명예회장, 이웅열 전 회장, 김재철 회장이 동일인 자리를 유지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신임회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부친이 생존해 있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며 “이미 경영승계를 완료했고 전 회장은 지분을 넘기고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음에도 동일인으로 지정한 이유를 남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경영권을 내려놨다고 하더라도 과거 금호그룹처럼 경영권을 다시 회복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규제기관으로서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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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인 지정은 대기업집단 규제를 위한 기초 작업일 뿐이다. 공정위는 동일인을 중심으로 친·인척이 최대주주인 계열사까지 대기업 범위를 확정한 뒤 대기업 집중 억제 및 남용 방지 규제를 한다. 현재 자산 5조원 이상의 그룹은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자산 10조원 이상 그룹은 상호출자금지, 신규순환출자금지, 채무보증제한,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제한 규제를 적용받는다.
문제는 이같은 규제가 현실성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공개된 그룹 자산 규모를 보면 삼성(414조5000억원) 현대자동차(223조50000억원), SK(218조원), LG(129조6000억원) 롯데(115조3000억원)등 상위 5대그룹이 차지하는 자산 비중은 전체 대기업집단 중 54%(지난해 53.4%)다. 자산 10조원이 넘는 기업은 34곳에 불과하고, 30조원이 넘는 기업은 14곳에 그친다. 상위 5대그룹의 매출액과 당기순이익 비중은 각각 57.1%, 72.2%에 달한다. 상위 5위그룹과 다른 대기업짐단간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음에도 동일한 잣대로 규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순환출자 문제는 소멸했고, 채무보증 역시 국제통화기금(IMF)외환위기 이후 사실상 문제가 되는 기업은 거의 없다.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은 사실상 삼성만의 문제다. 실효성 있는 규제는 일감몰아주기 등 총수일가 사익편취 금지 정도다.
이준길 법무법인 지평 고문은 “기업 지배구조가 빠르게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80년대 사전규제를 계속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시장을 통한 사후적 규제를 강화하는 등 전면적으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 다가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여전히 대기업집중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제도 폐지나 변경을 검토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김성삼 공정위 기업집단 국장은 “기업들이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현재 규제가 기업을 경영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다만 동일인 지정에 관해서는 투명성이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검토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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