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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케미칼을 단순히 화학제품만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이 회사는 1987년부터 약을 만들었다. 국산신약 1호인 항암제 ‘선플라’, 천연물신약 1호 ‘조인스’, 세계 최초 필름형 발기부전치료제 ‘엠빅스’, 세계 최초 패치형 관절염치료제 ‘트라스트’ 등이 모두 SK케미칼이 내놓은 성과다.
SK케미칼은 2000년대 후반 바이오의약품에 집중하기로 결정한다. 특히 주목한 것은 백신이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대부분 백신을 수입에 의존했다. 그러다 보니 긴급한 상황이 생기면 속수무책이었다.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때는 정부 고위관계자가 외국에 백신을 구하러 다니는 민망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안재용 SK케미칼 라이프라이언스부문 백신사업부문장(전무)은 “의학 패러다임이 치료에서 예방으로 바뀌는 추세라 백신산업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기술력이었다. 백신은 바이러스를 몸에 넣어 면역계를 활성화하는 약이다. 특징이 서로 다른 바이러스 종류마다 항체반응을 충분히 이끌어내면서 독성을 줄이는 기술이 핵심이다. 예방약이기 때문에 대규모 시설투자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개발된 28종의 백신을 4~5개 글로벌 제약사들이 독식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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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개발 자체도 어려웠지만 ‘실탄’을 확보하는 것도 문제였다. SK케미칼이 백신개발을 본격화하자 기존에 SK케미칼에 백신판매를 맡겼던 외국계 제약사들이 잇달아 계약을 종료했다. 폐렴구균, 독감, 대상포진 등 SK케미칼이 팔던 백신들을 더이상 팔지 못하게 됐다. 2014년에는 혈액제제를 전문으로 하던 SK플라즈마가 분사하면서 SK케미칼의 매출은 2013년 5047억원에서 2014년 3851억으로 급격히 줄었다.
안팎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2014년 SK케미칼은 세포배양 방식의 독감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기존 유정란에 바이러스를 주입해 만드는 방법에 비해 생산 기간이 절반(약 3개월) 밖에 걸리지 않고 계란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사람도 백신독감을 맞을 수 있다. 그 이듬해인 2015년에는 4가 독감백신(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4종을 모두 막음)도 세포배양 방식으로 개발했다. 4개 중 3개만 막는 기존 독감백신에 바이러스 백신 하나 추가한 게 무슨 큰 일이냐고 할 수 있지만 독감백신은 1968년 처음 개발된 이래 2012년 GSK가 4가 독감백신을 개발하기 전까지 40년 넘게 3가백신 밖에 없었다. 기존백신과 간섭효과가 생기지 않으면서 바이러스를 추가하는 방법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폐렴구균백신을, 올해에는 세계 두 번째로 대상포진백신을 잇달아 개발성공했다. 대상포진백신은 빠르면 올해 안에 접종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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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장염백신은 빌 게이츠가 설립한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저개발국 원조 국제 프로그램에 공동참여하는 형식으로 개발 중이다. 차세대 폐렴구균 단백접합백신은 글로벌 백신 제조사인 사노피 파스퇴르와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그만큼 백신개발 기술 자체는 인정을 받는다는 의미다.
경북 안동의 ‘L하우스’는 SK케미칼 백신의 허브다. SK케미칼이 백신사업에 투자한 4000억원의 대부분이 L하우스 건설에 쓰였다. L하우스는 세포배양, 세균배양, 유전자재조합, 단백접합 등 모든 종류의 백신을 개발생산할 수 있는 기술과 설비를 갖췄다. 2010년 설계 단계 때부터 유럽과 미국의 우수의약품제조기준(GMP)에 맞출 수 있도록 준비했다. 백신 시장 진출 초기부터 한정된 국내 시장이 목표가 아니었다. SK케미칼은 해외진출에 본격 시동을 걸 계획이다. 안재용 전무는 “세계보건기구(WHO), 범미보건기구(PAHO) 인증으로 해외진출 길을 튼 뒤 자체생산이 불가능한 개발도상국에 우선적으로 진출해 백신접종의 사각지대를 줄일 계획”이라며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진출은 단기간에 이뤄질 수는 없겠지만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국적제약사에 기술수출을 하거나 제품을 공급하는 형식으로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