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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세계 1위 제련소의 변신…새로운 50년 준비하는 고려아연

김은경 기자I 2024.02.06 07:32:13

[초격차 현장을 가다]<7>고려아연 온산제련소
고려아연 1위로 키운 제련사업 ‘성숙기’
‘자동화 시스템’ 도입으로 생산성 극대화
‘공정 효율화·원가 절감’ 중점 추진 과제
제련 기술 독보적…이차전지 사업에 이식

[울산=이데일리 김은경 기자] 지난 25일 울산 울주군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3공장. 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비릿한 금속 냄새가 코를 자극해 온다. 공장 한쪽에는 1개 무게가 1.3톤(t)이나 하는 큼지막한 은색 연점보(연을 넓적한 모양으로 굳힌 것)가 가득 쌓여 있었다. 연은 1위인 아연 다음으로 고려아연 생산량 2위를 차지하는 핵심 제품이다. 주로 내연기관차에 들어가는 납축전지 생산용으로 배터리 업체에 납품한다.

울산 울주군 고여아연 온산제련소 3공장에서 생산된 연점보가 ‘딥러닝 자동검사시스템’을 통과하고 있다.(영상=김은경 기자)
납이 녹으면서 1700℃로 달궈진 시뻘건 액체는 틀로 쏟아진 뒤 일정한 형태로 굳어져 나왔다. 틀에 밀가루 반죽을 부어 빵을 찍어내는 모습과 비슷하다. 여기까지는 오랜 업력이 쌓인 제철소나 석유화학 공정처럼 수십 년 된 구형 설비와 직원 숙련도에 의존하는 장치산업 특성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눈길을 잡아끈 것은 최종 생산설비에 들어선 자동화 검사 장비였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11월부터 연점보 생산공정 1개 라인에 ‘딥러닝 자동검사시스템’을 도입해 테스트 중이다. 비전 카메라가 제품을 촬영하면 인공지능(AI)이 적용된 딥러닝 알고리즘이 일정 패턴을 학습해 불량을 잡아낸다. 실제 카메라 옆 모니터에는 엑스레이로 찍은 것처럼 제품 내부가 투과된 모습이 찍혀 있었다. 여기서 무게가 초과·미달했거나 균열이 생긴 제품은 따로 모아 다시 녹여 재가공한다. 검사에 걸리는 시간은 단 10초, 순식간에 불량을 확인하고 다른 작업까지 할 수 있도록 효율성을 크게 끌어올린 것이다.

울산 울주군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물류창고에 쌓여 있다.(사진=김은경 기자)
현재 이 시스템의 불량 적중률은 약 83% 정도다. 이를 95% 이상으로 높이는 게 회사의 목표다. 고려아연 자회사로 이차전지 소재인 동박을 만드는 케이잼(KZAM)은 이미 지난해 테스트를 마치고 자동 검사 시스템 도입을 완료한 상태다. 강성호 고려아연 융합혁신팀 책임은 “시스템 도입 전에는 품질보증팀이 사람 눈으로 일일이 불량 검사를 해 비효율적이었다”며 “현재는 로봇이 자동으로 불량 제품에 표시하고 사무실에서 원격 품질 검사까지 가능한 데다, 데이터를 모아 불량률을 줄일 수 있어 공정 효율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울산 울주군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전경.(사진=고려아연)
1974년 설립한 고려아연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제련소 면적 43만평, 2022년 연매출 11조원에 영업이익 9200억원, 임직원 수 2000여명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세계 1위 경쟁력을 지닌 제련 사업 덕분이다. 고려아연의 세계 아연 점유율은 8.2%(2022년 기준)로 1위다. 특히 온산제련소는 단일 제련소 기준 세계 최대 규모로 연간 640킬로톤(Kt)의 아연을 생산해 낸다. 기술 고도화로 중국, 호주 등 경쟁 업체 대비 비철금속 회수율을 압도적으로 높이고 추가로 유가금속을 회수하며 수익성을 극대화한 것이 고성장 배경이다.

문제는 캐시카우(현금 창출원)인 제련 사업이 성숙기에 접어들며 성장이 정체했다는 점이다. 고려아연이 지난해부터 자동화 시스템 도입을 통해 적극적으로 생산 효율 극대화에 나선 배경이다. 아연 국내 최대 수요처인 포스코 등 전방산업인 철강 시황 악화와 원재료 가격 상승도 악재다. 여기에 더해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 상승은 많은 양의 전력을 쓰는 제련 업체들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려아연 관계자가 지난 25일 울산 울주군 고려아연 4공장에 설치된 물류 저광사 안전 관제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다.(사진=김은경 기자)
고려아연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올해 제련 공정 효율화와 자동화를 통한 원가 절감을 중점 추진 과제로 설정했다. 현재 일부 설비에서 진행 중인 자동화 테스트를 향후 전체 공장으로 확산하는 것이 목표다. 생산설비뿐 아니라 물류 관리 창고에도 안전 관제 시스템을 도입해 효율화를 꾀하고 있다. 이날 3공장에서 차로 5분여 정도 떨어진 4공장 물류창고에서는 알고리즘을 학습한 CC(폐쇄회로)TV가 작업자에게 위험 상황을 알리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연의 원재료인 광물은 색과 형태 모두 진흙처럼 생겼다. 완제품과 달리 일정한 형태로 원료를 쌓아 두기 어려워 저광사(광석을 쌓아두는 창고)에 자동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기 어려웠던 게 현실이다. 고려아연은 우선 물류창고와 저광사에 알고리즘을 학습하는 CCTV를 설치해 트럭 등이 작업자에게 접근하면 사이렌이 울리도록 설정했다. 시스템통합(SI) 전문 외주 업체가 아닌 고려아연 자체 개발 기술을 적용했다. 시스템은 4공장을 시작으로 향후 10개 전체 물류창고에 확산하는 것이 목표다.

제련 공정 에너지 효율화 작업에도 집중한다. 생산 과정에서 모이는 모든 수치를 데이터화해 전기, 석탄 등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 목표다.

고려아연 관계자들이 지난 25일 울산 울주군 고려아연 4공장 물류 저광사에 설치된 안전 관제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다.(사진=김은경 기자)
앞으로 미래 50년 먹거리를 책임질 신사업 추진에도 속도를 낸다. 고려아연은 최윤범 회장 주도로 ‘신재생에너지·이차전지·자원순환’ 3대 신사업을 육성하는 ‘트로이카 드라이브’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날 4공장으로 이동하는 도로 왼편에는 ‘올인원 니켈 제련소’ 터 다지기 작업이 한창이었다. 고려아연은 2026년 생산을 목표로 연산 4만2600만톤(t) 규모의 니켈 제련소를 짓고 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제련 부산물인 황산을 이용, 황산니켈 제조 생산능력을 빠르게 확보할 계획”이라며 “독보적 제련 기술을 바탕으로 이차전지 소재 생산 분야 밸류체인(가치사슬)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트로이카 드라이브 전략을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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