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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동물 입양한 文·尹, 풍산개는 외면했다[헬프! 애니멀]

김화빈 기자I 2022.11.28 08:35:00

파양? 반환? 신구권력 갈등에 껍데기만 남은 풍산개 논쟁
정치권, 풍산개 쟁점 삼아 불필요한 언쟁 ‘눈총’
정부, 풍산개 동물원 위탁 추진에 동물단체 반발
곰이·송강이 자견들, 국가 보호 없이 열악한 환경서 생활
행안부, 뒤늦은 입법예고…거취 결정은 아직도 미정

[이데일리 김화빈 기자] 지난 11월 7일 문 전 대통령이 자신이 기르던 풍산개 ‘곰이’와 ‘송강이’를 국가에 반환하면서 이른바 ‘풍산개 거취’ 논란이 정치권을 강타했지만, 건설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매스컴에 나와 풍산개 반환이 파양인지 아닌지를 놓고 충돌하는가 하면, 풍산개 관리비를 포함한 위탁계약 문제를 두고 공방을 벌이면서 공론장에는 정쟁만 남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은 소문난 반려인이다. 문 전 대통령은 사저에서 토리, 마루, 다운 세마리의 반려견과 찡찡이(반려묘)를 키우고 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관저에서 10마리를 반려하고 있다. 비숑 프리제 2마리를 제외하면 모두 유기동물이다. (사진=이데일리 DB)
◇품격 없는 말들의 향연 속 놓친 본질

풍산개 반환 첫 보도 후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퇴임 이후 본인이 키우는 강아지 사육비까지 국민 혈세로 충당해야겠냐”며 비난의 포문을 열었다.

차기 당권주자로 평가받는 김기현 의원은 “(문 전 대통령이) 쿨하게 버려야 할 대상은 풍산개가 아니라 이재명 대표”라고 비판했고, 홍준표 대구시장은 “세 마리도 건사 못하면서 어떻게 대한민국을 5년이나 통치했느냐”고 반문했다.

문 전 대통령 측도 공방에 참전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룟값을 운운하면서 비아냥대는 것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자신들의 치사함을 가려보려는 꼼수”라고 맞받았고,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실로 개판이다. (윤석열 정부가) 공·사를 구별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여야 모두 모두 ‘대통령기록물’이라는 법적 지위에 갇힌 풍산개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해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논란 초 대통령기록관은 곰이와 송강이의 거취를 여태 그랬듯 동물원에 ‘대여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며 우치공원 동물원 측에 사육 의사를 물었다. 인간과의 교감을 통해 사적인 관계를 맺는 ‘개’의 본성을 고려하지 않고 손쉽게 해결하려는 처사다.

◇풍산개들의 동물원行? 시대에 뒤떨어졌다

이번 풍산개 논란은 이례적이지 않다. 역대 모든 정부에선 ‘선물’로 건네진 개들을 동물원에 넘기는 방법으로 간단히 정리해왔기 때문이다. 일례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남북교류사업 중 북측으로부터 선물 받은 풍산개 ‘우리’와 ‘두리’는 그해 11월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전시되다가 생을 마쳤다.

지난해 6월 곰이와 송강이의 자견인 햇님이는 코로나19로 인천 평화안보수련원 휴관이 장기화되면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사진=연합뉴스)
국가기록물이 아니더라도 대개 대통령이 청와대서 키우던 개들은 청와대를 나서며 불행한 생을 살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 진도군으로부터 선물 받은 8마리 진돗개 중 일부를 가정에 분양했고, 남은 개체를 서울대공원에 보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번식장 출신의 진돗개를 농장주로부터 선물 받아 청와대서 키웠으나 탄핵 후 진돗개보존협회와 진돗개 혈통연구소 등으로 보냈다. 곰이와 송강의 자견 6마리는 서울·인천(2마리), 대전(2마리), 광주 등 지자체와 동물원에 위탁된 상황이다.

동물단체들은 대통령기록관이 동물원에 곰이와 송강이의 사육의사를 타진하자 즉각 반발했다. 개들이 정치적 필요에 의해 공급·번식된 것도 모자라서 쓸모가 다하니 책임감 없이 지방자치단체 등에 맡기냐는 지적들이 쏟아졌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전·현직 대통령 모두 유기동물을 입양해 가족으로 살고 있는 반려인들이다. 곰이와 송강이를 정쟁이 아닌 생명으로 존중하는 해결방안을 찾으라”고 촉구했고, 비글구조네트워크는 “필요하면 끌어안고 이용가치가 없으면 내뱉는 정치 논리를 살아 있는 생명을 대입해 쟁점으로 삼는 정치권은 진짜 반성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풍산개들의 동물원·지자체행은 불행을 답습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지자체에 보내진 개들은 단독생활을 하며 전시되는 삶을 살고 있다. 개들은 밥 먹을 때와 산책 시간을 제외하고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야외견사 등 가정생활보다 열악한 환경서 살아가는 모습도 확인됐다. 국가기록물이라면서 국가의 보호와 책임은 실종된 것이다.

◇법률 개정 통한 ‘실질적 보호 책임’ 이행해야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 3월 2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마련된 인수위원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아무리 정상 간의 선물이라도 (개는) 키우던 주인이 계속 키워야한다”고 말했다. 이후 5일 뒤인 28일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찬회동을 갖고 풍산개들을 문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직접 키우기로 합의했다.

대구 북구 경북대학교 수의과대학 부속 동물병원에서 보호 중인 풍산개 곰이와 송강이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다만 현행법상 문 전 대통령이 풍산개들을 위탁관리하는 법적 근거는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기록관장 재량권으로 문 전 대통령 측과 위탁계약을 맺고, 향후 시행령을 개정하기로 했다.

올해 3월 신설된 대통령기록물법 시행령 제6조의 3은 ‘동물 또는 식물 등이어서 다른 기관에서 더욱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다른 기관의 장에게 이관하여 관리하게 할 수 있다’고 명기했다. 다만, 이는 대통령기록관에 이관 전인 동·식물에만 해당해 곰이와 송강이에게 적용할 수 없었다.

이 같은 문제를 행정안전부도 인식해 지난 6월 18일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행안부에 소속된 대통령기록관이 대통령 선물 중 동·식물을 기관 또는 개인에게 위탁하고 관리에 필요한 물품·비용을 지원하는 게 주된 내용이다. 이번 개정안은 시행 전 이관받은 대통령선물에도 적용한다는 방침이어서 국가에 반환된 곰이와 송강이도 해당될 것으로 보인다. ‘곰이와 송강이의 일반 가정 입양길’이 열리는 셈이다.

대통령기록관 측 관계자는 “곰이와 송강이가 국가에 돌아온 상황에서 대통령 선물을 어떻게 관리할지 종합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저희 기관뿐 아니라 행안부 등 여러 기관이 논의에 참여하고 있어 결정에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다만 해당 관계자는 행정부가 입법 예고한 개정안이 풍산개 거취 논의과정에서 고려되고 있는지에 대해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형주 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 소장은 “입법 예고된 개정안이 곰이와 송강이뿐 아니라 그 자견에게도 적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려동물인 개가 동물원 등에 전시되며 사는 건 모순”이라고 짚은 뒤 “풍산개 논쟁이 열악한 동물원서 전시되는 개들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돼 가정 입양을 보내는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곰이와 송강이의 자견인 별이를 수용한 우치동물원은 지난 2007년 사육장이 부족해지자 풍산개와 시베리안 허스키 6마리를 5만원 이하 가격에 분양했다.

이 소장은 생명을 외교에 이용하는 관례가 근절되는 것이 핵심임을 강조하며 “무작정 국가기록물인 개의 번식을 방치하기보다 중성화 수술 등을 통해 개체수를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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