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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댄스를 하는 이모를 따라 호기심에 인연을 맺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가 붙었다. 하지만 “옷을 왜 그렇게 입느냐”, “여자같다, 게이냐”는 냉소적인 주변 반응에 상처를 입을 때도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지난 2013년 중국에서 열린 ‘벨리댄스 차이나’ 대회다. 총 300명의 프로 벨리댄서가 참여해 토너먼트 방식으로 5번의 경기를 치러 1등을 차지했다. 주변의 사늘한 시선이 응원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벨리댄스에 관심을 두는 남성들이 부쩍 늘었다. 김씨가 인천 서구에서 운영하는 벨리댄스학원 수강생 중 남성은 5명이다. 연령대도 초등학생부터 20대 청년, 노인까지 다양하다.
그는 “벨리댄스는 여성들만 하는 스포츠라는 선입견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못한 남성들이 변하고 있다”며 “‘왜 남자가 벨리댄스를 하지’라는 생각이 아니라 ‘나도 벨리댄스 배울래’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자연스럽게 춤을 추는 날이 올 것이다”고 말했다.
여성들의 탈코르셋 열풍에 이어 남성들의 탈갑옷 바람이 불고 있다. ‘남성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벨리댄스와 네일아트 등을 여가생활로 즐기는 남성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탈코르셋은 보정 속옷을 뜻하는 코르셋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들이 남의 시선을 의식해 억지로 꾸미지 않을 것을 주장하는 사회적 운동이며 페미니즘 열풍과 함께 거세지고 있다. 여성다움의 사회적 굴레, 구체적으로는 짙은 화장이나 긴 생머리, 과도한 다이어트, 브래지어 등을 그만하자는 움직임을 뜻한다.
탈갑옷은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남성에게 강요되는 남성성을 거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탈갑옷 운동은 남성들 스스로 자신이 입고있는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지자는 운동이다. 남자는 힘이 세야 하고, 강해보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벨리댄스 추고 네일 받는 男...‘갑옷’ 벗어나고파
김씨의 사례처럼 금남(禁男)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벨리댄스에 도전하는 남성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월드밸리댄스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3년 협회에 등록한 프로 벨리댄서 1000명 중 남성은 고작 3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해 7월 프로 벨리댄서 1200명 가운데 남성은 13명이다.
벨리댄스 뿐만이 아니다. 미용을 위해 네일아트숍을 찾는 남성들도 늘고 있다.
서울 성북구에서 네일아트숍을 운영하는 김모(29·여)씨는 “1년 전과 비교해 가게를 찾는 남성 손님들이 4배가량 늘었다”며 “예전에는 애인을 따라 마지못해 오는 남성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혼자 오는 남성들도 꽤 있다”고 귀띔했다.
네일아트숍에서 만난 직장인 지모(32)씨는 “처음 네일아트숍을 왔을 때 많이 어색했지만 지금은 가게에서 마주치는 남성들이 확실히 많아졌다”며 “여가생활에서까지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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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특정 상품에 대한 남성 구매도 늘고 있다.
공익요원으로 근무하는 이동우(27)씨는 지난달 온라인으로 양산을 샀다. 폭염에도 외근을 자주 하는 이씨는 “양산을 가지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주변에서 ‘남자가 무슨 양산이냐’며 웃기도 했다”면서도 “지금은 친구들이 어디서 샀느냐며 묻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소셜커머스 업체 티몬에 따르면 지난달 남자 소비자가 구매한 양산 제품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43% 증가했다. 같은기간 여성 고객 구매 증가율(34%)과 비교해 10% 포인트 높은 수치다.
티몬 관계자는 “양산이나 썬캡 등 여성들만 사용한다는 선입견으로 구매를 꺼리던 남성들이 변하고 있다”며 “여성들이 주로 사용하던 제품들을 들고 다니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취미나 소비는 성별의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본능과 상관이 있다”며 “양성평등 추세 속에서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라지는 현상이 강해지는 만큼 앞으로 여성과 남성 모두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들을 더 많이 즐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