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은품 '세탁기' 설치하러 왔어요"…상상도 못했는데 피싱이었다

손의연 기자I 2025.10.09 09:44:35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기-사은품 배송 사기편⑧
기관사칭형 피싱…범죄 조직, 도입부 변화 시도
''사은품'' 등 일상 생활서 접근할 수 있는 방식
고객센터·경찰·검찰 사칭까지 이어지는 조직적 범죄

피싱 사기 종류와 수법이 점차 교묘해지면서 피해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범행은 일정한 ‘시나리오’ 안에서 움직입니다. 상황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이 시나리오를 알고 있다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데일리는 수사기관의 협조를 받아 시민들의 괴롭히는 피싱 시나리오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만약 지금 누군가의 전화나 메시지를 받고 있고, 상대방이 아래의 말을 하고 있나요? 사기 가능성 100%입니다. 지금 당장 끊으세요.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30대 후반 박보윤(가명)씨. 보윤씨는 정신 없이 출근해 바쁘게 일하고 퇴근해서도 육아를 하는 워킹맘이다. 늘 바쁜 나날을 보내는 보윤씨에게 어느 날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사진=챗GPT)
사은품 배송 접근부터 고객센터, 경찰관 사칭범까지

“A캐피탈입니다. 고객님”

“네? 캐피탈이요?”

“네, 사은품으로 세탁기를 설치하러 왔습니다.”

보윤씨는 세탁기라는 말에 살짝 ‘혹’했다. 하지만 이내 사은품을 받을 만한 일이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사은품을 신청하거나, 이벤트에 참여한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보윤씨는 A캐피탈의 고객도 아니었다.

“저는 사은품을 신청한 적도 없고 전에 연락을 받은 것도 없는데, 제 이름이 맞나요?”

“아, 그러신가요? 근데 배송을 해야 해서…난감하네요. 고객님 고객센터에 전화해보시겠어요? 제가 고객센터 번호를 알려드릴게요.”

이윽고 배송 기사는 보윤씨에게 고객센터 번호라며 전화번호를 불러줬다.보윤씨는 번거롭고 귀찮은 생각이 들었지만 배송 기사의 난감함을 생각해 바로 전화 걸었다.

“네, A캐피탈입니다.”

“안녕하세요, 뭐 사은품이라고 세탁기가 왔다는데 저는 신청한 적이 없거든요?”

“아 그러세요?”

“네, 그리고 저는 A캐피탈을 이용하지도 않아서요.”

“아, 네. 고객님. 그럼 저희가 몇 가지 확인을 해야 하는데요. 정보를 입력하시기 전에 ‘휴대전화 보안검사’가 필요합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저희가 알려드리는 원격제어 앱을 설치해주시겠어요?

흔한 고객센터 상담원 같은 어투에 보윤씨는 별 의심이 들지 않았다. 의례로 하는 절차로 생각했다.

보윤씨에게 링크가 담긴 문자메시지가 전송됐고, 보윤씨는 앱을 설치했다. 보윤씨는 나중에 알았지만, 보이스피싱 조직이 요구하는 원격제어 앱은 피해자의 스마트폰을 조작해 금융정보를 빼앗거나, 증거를 인멸할 수도 있다.

상담원은 몇 가지 확인을 마친 후 보윤씨에게 놀랄 만한 말을 전했다.

“고객님, 확인을 해보니 고객님 명의가 도용된 것 같아요. 저희가 담당하는 경찰관을 연결해 드릴 테니 기다려보시겠어요?

보윤씨는 당황했다. 단순한 오류인 줄 알았는데 확인을 안 했으면 큰일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윤씨는 상담원이 알려준 경찰관의 직통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경찰관은 “박보윤씨죠? 네, 관련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데요. 보윤씨 명의가 도용돼 통장이 개설됐어요”라고 말했다.

“그 통장으로 수억원이 빠져나간 걸 확인했는데, 다수 피해자분들이 고소를 접수하셨고요.”

보윤씨는 경찰관이 자신을 ‘공범’으로 여기는 것 같아 찝찝했다.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던 피해자인데…

“하여튼 담당 검사랑 통화를 해보셔야 할 것 같고요. 여기로 전화해보세요.”

(자료=경찰청)


◇“자산 검수해야 하니 금감원 ‘국가안전계좌’로 송금해라”

보윤씨는 담당 검사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 박보윤씨요? 네. 피해가 매우 큰 사건인데, 보윤씨가 연루돼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저는 아닌데…”

“극비수사 중이니 절대 발설하지 마시고요, 경찰관 지시에 무조건 따르셔야 합니다.”

보윤씨는 범인이 아닌, 피해자라는 사실을 수사기관에 증명해야 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보윤씨와 다시 연락이 된 경찰관은 “박보윤씨가 범죄조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가지고 계신 자산이 범죄수익이나 불법 자산이 아니라는 것을 저희가 파악해야 합니다”고 말했다.

“뭘 해야 하죠?”

“일단 저희가 이런 경우엔, 자산 검수를 해야 해요. 보윤씨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주거래 계좌로 모아 주세요. 그걸 저희가 들여다볼 겁니다.”

“네네, 그리고요?”

“제가 알려드리는 국가 관리 계좌로 입금하세요. 그래야 범죄수익인지 아닌지 판가름할 수 있거든요. 이 계좌는 금융감독원 국가안전계좌고요. 피의자가 아닌 것이 증명되면 저희가 바로 돌려드릴 겁니다.”

보윤씨는 가지고 있는 현금 자산을 전부 한 계좌에 모아 경찰관이 알려준 계좌로 보냈다. 당연히 불법적인 자산이 없었기에 꺼리지 않았다.

자금을 보낸 보윤씨는 경찰관에게 ‘확인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화가 닿지 않았다. 두 번, 세 번…아무리 해도 전화를 받는 이가 없었다.

보윤씨는 모골이 송연했다. 순간 사기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보이스피싱을 이런 방식으로 당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도 안 해 봤는데…보윤씨는 결국 사기를 당했음을 인정하고 경찰서로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은 접근방식이 다양해지는 추세다. 검사나 금융감독원, 경찰 등 사칭범이 등장하긴 하지만 평소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상황으로 접근해 경계를 늦추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기관은 자산검수 등 명목으로 재산 이전을 요구하지 않으며 국가안전계좌나 보안계좌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경각심을 가지고 유행 수법과 예방법 숙지에 늘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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