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 현실' '로봇의 비애'…창작뮤지컬 소재 변신중

장병호 기자I 2016.12.06 06:02:00

포화상태 이른 뮤지컬시장
창작뮤지컬 중심으로 변화 일어
소재 한계 넘어선 작품들 ''눈길''
-''더 언더독'' TV 교양 프로그램 모티브
-''어쩌면 해피엔딩'' 팝송에서 아이디어
-''서울의 달'' 추억의 드라마 무대로

정체한 뮤지컬시장에 참신한 이야기의 창작뮤지컬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유기견과 로봇 등 소재의 다양성이 특히 돋보인다. 버림 받은 로봇의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트라이아웃 공연 중 한 장면(사진=우란문화재단 시야스튜디오).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뮤지컬시장의 성장이 멈춘 지 오래다. 연매출 3000억원 규모로 ‘파이’는 커졌지만 수익성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포화상태에 이른 시장에서 활로를 찾기 위한 제작사의 고민도 커졌다. ‘마타하리’처럼 물량과 규모를 내세우거나 ‘지킬 앤 하이드 월드투어’처럼 해외시장을 겨냥하는 등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모색 중이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뮤지컬시장의 포화상태를 해결하기 위해선 장기공연 중심인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처럼 규모의 경제를 구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 환경, 티켓가격을 낮출 수 있는 재정적 지원 등으로 뮤지컬 환경의 변화를 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그 중심에는 창작뮤지컬이 있다. 영화나 소설 등 기존의 콘텐츠에 상당 부분 의존했던 것과는 달리 최근에는 뮤지컬만을 위해 고안한, 소재의 한계를 뛰어넘은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원 교수는 “참신한 소재를 발굴해 창작뮤지컬이 활력을 얻고 있는 것은 대단히 긍정적”이라고 평가한다. 새로운 이야기를 찾기 위한 창작자의 노력이 정체한 뮤지컬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최근 뮤지컬계에 화제가 된 독특한 소재의 작품을 꼽아봤다.

△유기견 연기하는 뮤지컬배우

뮤지컬 ‘더 언더독’에선 한 해에 10만 마리가 버림받는 유기견의 현실을 뮤지컬배우가 직접 연기한다. 진돗개 진 역으로 뮤지컬에 데뷔하는 배우 이태성(사진=킹앤아이컴퍼니).
한 해에 버림받는 개는 무려 10만마리. 이들은 유기견보호소에서 20일간만 지낼 수 있다. 그때까지 주인을 찾거나 새 주인을 만나지 못하는 개는 안락사를 당한다. 반려동물 열기의 이면에 감춰진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난 6일 개막한 ‘더 언더독’(내년 2월 26일까지 유니플렉스)의 주인공이 바로 유기견이다. 배우들이 유기견으로 변신해 그들의 현실을 대변한다. 진돗개·셰퍼드·몰티즈·달마티안 믹스·푸들 등 종류도 다양하다.

작품의 발단은 SBS 교양프로그램 ‘동물농장’이다. 4년여 전 방영한 동명의 에피소드가 모티브가 됐다. 유병은 연출과 윤광희·장우성 작가 등 제작진은 “창작뮤지컬의 관건은 신선한 소재를 찾아내는 것”이란 생각으로 소재를 찾던 중 ‘동물농장’과 만났다고 했다. 유기견의 안타까운 사연에 화가 났다는 제작진은 “반려견을 다룬 작품이 거의 없다는 점, 유기견의 아픈 현실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에서 뮤지컬 제작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4년만에 대본을 완성했고 음악·무대·의상 등 스태프와 끊임없이 토론하며 작품을 완성했다.

버림받은 개의 이야기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 이야기다. 새 삶을 꿈꾸는 유기견을 통해 힐링의 메시지를 전한다. 동물사랑 이벤트도 동시에 마련했다. 반려견과 함께 온 관객을 위한 ‘돌봄 서비스’, 유료티켓으로 사료를 기부하는 ‘유기견 후원 프로젝트’ 등을 진행한다.

△SF와 아날로그 감성의 만남

SF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도 있다. ‘어쩌면 해피엔딩’(20일부터 대명문화공장)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에게 버림받은 로봇의 이야기를 담는다. ‘번지점프를 하다’의 박천휴·윌 애런슨 콤비가 작사·작곡·극본을 맡고 ‘킹키부츠’ ‘구텐버그’ 김동연이 연출한 작품이다.

차가운 로봇에 따뜻한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담겠다는 의도다. 피아노와 현악기로 구성한 6인조 라이브연주로 감성을 고조시키고, 턴테이블에서 나오는 재즈선율과 어쿠스틱한 소품이 로봇을 보다 인간적으로 느끼게 한다. 박 작가는 “영국 싱어송라이터 데이먼 알반의 노래 ‘에브리데이 로봇’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더욱 고립되는 요즘 사람들을 로봇에 비유한 노래다. 박 작가는 “인간 같은 외모에 감정을 탑재한 로봇이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2014년 우란문화재단의 작품개발프로그램인 ‘시야스튜디오’를 거쳐 지난해 9월 트라이아웃 공연으로 먼저 선뵀다. 영어 버전도 제작해 해외진출까지 모색하고 있다.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는 동양계 배우를 캐스팅해 현지프로듀서의 협력 아래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박 작가는 “‘남자가 주인공인 극적인 스토리가 흥행한다’는 공식을 따르지 않아 주변의 우려가 많았다. ‘번지점프를 하다’와 같은 잔잔한 분위기를 고집하는 것이 가장 큰 도전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소재를 발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고 전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한 장면(사진=우란문화재단 시야스튜디오).


△‘추억의 드라마’ 21세기로 불러내

드라마를 뮤지컬로 만드는 건 새롭지 않다. 그러나 20여년 전 추억의 드라마를 다시 꺼낸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서울시뮤지컬단의 ‘서울의 달’(9일부터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얘기다.

원작은 1994년 방영해 5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국민드라마’였다.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다는 꿈에 부풀어 있던 당시 한국사회 이면의 슬픈 현실을 달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로 풀어내 공감을 끌어냈다. 뮤지컬은 부푼 꿈을 안고 상경한 시골 청년 홍식과 춘섭의 이야기를 2016년 현재를 배경으로 새롭게 풀어낸다. 지금 시대에서 ‘꿈’이 어떤 의미인지를 배우 이필모와 박성훈, 신예 허도영과 이승재가 홍식과 춘섭으로 각각 호흡을 맞춘다.

추억의 드라마를 뮤지컬로 제작한 것은 창작뮤지컬의 소재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김덕남 서울시뮤지컬단장은 “우리 뮤지컬계는 라이선스 중심이다. 창작도 ‘드라큘라’나 ‘삼총사’처럼 외국 소재를 많이 다룬다”며 “우리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되 관객에게 낯설지 않은 콘텐츠를 찾았다”고 설명했다.

노우성 연출은 “20여년 전 이야기를 다시 뮤지컬화 하는 것이 촌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가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며 “뮤지컬 제작 여건이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1년 중 관객이 공연장에 가장 많이 몰리는 시기에 올린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적잖다”고 말했다.

서울시뮤지컬단의 신작 ‘서울의 달’은 1994년 방영한 ‘국민드라마’가 원작이다. 낯설지 않은 우리만의 이야기로 창작뮤지컬을 고민한 결과다. 주인공 홍식과 춘섭을 연기하는 배우 이필모(오른쪽)와 박성훈(사진=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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