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21대 국회에서 사실상 삼성그룹을 겨냥한 법안이 잇따르고 있다. 순환출자 금지와 금산분리(산업자본의 금융회사 지분 소유제한)규제 강화가 명분이다. 176석의 거대 여당과 정부가 이번 국회를 그동안 처리하지 못한 법안을 통과시킬 좋은 기회로 활용하려는 분위기다.
하지만, 재계는 삼성을 표적으로 삼고 있는 데다 기업활동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하는 것이라고 우려한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6월 입법예고한 ‘금융그룹통합감독법 제정안’도 그런 사례다. 금융그룹 감독제도는 여·수신과 금융투자·보험 중 2개 이상 금융사를 운영하는 자산 5조원 이상 금융그룹 위험을 감독하는 체계를 말한다. 삼성과 현대차, 한화, 미래에셋, 교보, DB 등 6개 복합금융그룹이 대상이다.
금융당국은 복합금융그룹의 경우 비금융계열사 부실이 금융계열사로 전이되면 고객에게 최종 피해자가 될 수 있는데도 금융감독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을 입법 취지로 설명한다. 이번에 법적 강제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특히 복합금융그룹에 대해 자본적정성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자본적정성 비율(적격자본을 필요자본으로 나눈 값)에서 분모인 필요자본의 한 요인인 그룹위험 위험 가중치를 높여 분자인 적격자본을 더 쌓도록 하는 것이다. 자본적정성 비율은 10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금융권에선 이 법이 통과되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곳으로 삼성그룹으로 보고 있다.
다만 정부 법안에는 △그룹내 금융사·비금융사간 임원 겸직·이동 제한 △법령으로 비금융사 주식취득 한도 규정 △대주주 주식처분 명령 등 규제는 일단 제외됐다. 앞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의원 입법안에는 이들 규제가 담겨 있었다. 복합금융그룹도 규제 대상에 넣되 당장 법으로 지분매각 등은 요구하지는 않겠다는 게 현재 정부 방침이다.
상법 개정안도 삼성을 비롯한 재계 전반을 겨누고 있다. 재계에선 지난 6월 입법예고된 법무부 개정안의 △감사위원 분리선임 △3% 의결권 제한규정 개편 △다중대표소송제 등에 대해 모두 부정적이다.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게 주요 이유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주식 약 311억원어치를 보유하면 삼성전자 자회사 7개사에 대해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경제단체들은 주장한다. 다중대표소송은 손해를 발생시킨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모회사 주주가 소송으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법무부 안에서 빠진 집중투표제 의무화도 포함했다. 집중투표제는 1주당 1표의 의결권이 아니라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해 소수 주주가 원하는 후보가 이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달 15일 경총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정부와 국회도 정책이나 법안처리 과정에서 경총을 비롯한 경영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반영해 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당은 이른바 공정경제 법안들을 향후 주요 입법과제로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야당인 미래통합당도 중도보수 전환을 추진하며 경제민주화 등을 정강과 정책에 포함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