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절감` 논리에 국립대도 약발 안 먹히는 강사법 대책

신하영 기자I 2018.12.22 09:00:00

부산대 시간강사 졸업학점 축소 등에 반대하며 파업
비정규교수노조 “강사채용규모 큰 대학 진통 불가피”
대학 “비용절감” VS 강사노조 “고용보장” 평행선
강사채용규모 연세대>외대>서울대>부산대>이대 순

시간강사 처우개선과 신분보장을 위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일명 강사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한 달도 안 돼 전국 대학 중 처음으로 부산대 시간강사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18일 오후 부산대 시간강사들이 대학본관 앞에서 파업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내년 8월 시간강사 처우개선을 위한 고등교육법 개정안(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부산대를 시작으로 강사들의 파업이 확산될 조점을 보이고 있다. 교육부는 강사법 시행에 대비, 연간 강사료 지원예산 577억원을 확보했지만 국립대조차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부산대에 따르면 이 대학 시간강사들은 최근 대학본부와의 단체교섭이 결렬되자 파업에 돌입한 상태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한교조) 부산대분회 관계자는 “대학 측이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대형강좌·사이버강의 확대, 졸업학점 축소 등을 검토하고 있다”며 “더 이상의 교육환경 악화를 막기 위해 파업에 나섰다”고 말했다.

현재 경상대·경북대·전남대·성공회대·조선대 등에서도 시간강사들이 대학 측과 단체교섭을 벌이고 있다. 이는 매년 연말 강사료 인상에 관해 협상하는 자리지만, 올해는 내년 8월 시행될 강사법이 이슈로 떠올랐다. 이들 대학에서도 교섭이 결렬될 경우 부산대처럼 강사 파업이 확산될 수 있다.

강사법은 시간강사에게 고등교육법상 교원의 지위를 부여, 임용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한 게 골자다. 강사법 시행에 따라 대학은 강사를 임용할 때 최소 1년 이상으로 계약해야 하며 방학 중에도 임금을 줘야 한다. 강사에게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최소 3년까지는 재임용 절차를 보장토록 했다.

◇ “연간 577억 예산 확보” VS “턱없이 부족”

교육부는 강사법 시행에 따라 대학의 추가 비용을 577억원으로 추산했다. 전국의 시간강사 7만5329명이 받는 연간 강의료 총액 4616억원에서 방학기간(4개월)을 제외, 8개월로 나눈 한 달치 강의료다. 교육부 관계자는 “최근 몇 년 간의 시간강사 업무형태를 보면 성적처리와 다음 학기 강의준비가 방학기간의 통상적 업무였으며 이를 위해 여름방학·겨울방학 2주씩, 연간 4주가 필요하다”고 했다.

교육부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시간강사 한 달 치 강의료 577억원을 확보했다. 다만 강사법 시행 시점이 8월이라 내년에는 한 학기 강사료인 288억원을 투입한다. 교육부는 강사들의 고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대학에 해당 예산을 우선 배분할 방침이다.

반면 대학들은 4개월 치 강의료인 2228억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퇴직금(262억원)과 건강보험(287억원)을 보장하려면 올해 기준으로 최소 2700억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 국립대 교수는 “법적으로 교원 지위가 보장되는데 당연히 퇴직금과 건강보험을 요구할 것”이라며 “시간강사와 대학 간 퇴직금 소송에서 강사가 승소한 사례가 있어 강사들의 줄 소송이 일어나면 대학은 감당하지 못 한다”고 했다. 지방 사립대 교무처장도 “교육부의 강사료 지원 여부와 관계없이 대부분의 대학들이 비용부담을 우려해 강사 감축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강사의 경우 근로시간 월 60시간(주당 15시간) 미만의 근로자이기 때문에 퇴직금·건강보험 적용대상이 아니라며 이런 주장을 일축한다. 강사법은 시간강사의 주당 강의시수를 ‘6시간 이하’로 규정했다. 다만 대학총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최대 9시간까지 강의를 맡길 수 있다.

◇ 강사 채용규모 줄일수록 대학 비용↓

강사들의 파업에 돌입한 부산대의 2018년 기준 강사채용규모는 1106명이다. 강사법은 강사의 주당 강의시수를 6시간 이하로 규정했지만, 복무관리를 고려할 때 강사 규모를 줄일수록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대학이 전체 강사 인원의 고용보장을 요구하는 강사단체와 평행선을 긋는 이유다.

이상룡 한교조 정책위원장은 “대학들은 대형 강좌 확대, 졸업학점 축소 등 비용절감을 최우선에 두고 강사법에 대응하고 있어 교육의 질 하락과 강사들의 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강사채용규모가 큰 대학을 중심으로 강사와 대학 간 마찰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전국에서 시간강사 채용규모가 가장 큰 대학은 연세대로 모두 1321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어 △한국외대 1236명 △서울대 1213명 △부산대 1106명 △이화여대 1042명 △경희대 1039명 △한국예술종합학교 1034명 △고려대 1024명 △경북대 884명 △동국대 790명 순이다. 이상룡 위원장은 “대학 강의를 시간강사에게 의존하면서 그만큼 비용을 줄여온 대학이 많다”며 “이들 대학이 강사를 줄이려면 입학정원 자체를 줄여야 하는데 이는 등록금 수입 감소를 우려해 못하면서 강사법에 따른 추가 비용부담은 꺼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 “대학원 위기 막으려면 신규강사 진입 보장해야”

강사법 시행이 대학원의 위기로 확산될 것이란 우려도 여전하다. 강사법은 그간 학기단위로 계약해온 강사의 임용기간을 1년 이상으로 못 박았다. 특히 결격사유가 없으면 3년간은 재임용 절차가 보장된다. 이 때문에 대학원을 갓 졸업한 신규 박사인력의 강사 진입을 막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국립대 교수는 “강사법은 강사 채용 시 공정성이 담보된 심사위원회를 구성, 공개임용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이럴 경우 교육·연구 실적이 많을 수밖에 없는 기존 강사들이 채용에 유리하며 이는 결국 신규강사의 진입을 막아 대학원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고 했다.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시간강사로 경력을 쌓으려 해도 일자리 자체가 줄어 대학원 진학자마저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다.

김규태 교육부 고등교육정책관은 “대학원을 나온 신규 강사들의 진입 통로를 열어놔야 학문후속세대(대학원생과 박사과정을 마친 연구인력)를 보호할 수 있다”며 “강사 채용규모의 30% 정도는 신규박사를 채용하는 등 대학별로 할당제로 문제를 풀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강사 채용 규모 상위 30개교 현황(2018년 4월 기준, 자료: 대학정보공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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