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추세 속에서 성년후견인이 늘고 있는 가운데 은행의 성년후견인 업무는 30년전 수준에 머물고 있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금융사고 예방도 중요하지만 고령화로 성년후견인이 계속 늘어나는 만큼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지만 지지부진이다. 성년후견인은 치매 등으로 정신적 판단력이 낮은 사람 곁에서 권리 행사를 대신하는 역할을 한다.
법원에 따르면 제도를 도입한 2013년 후견인 접수는 414건이었으나 지난해 2330건으로 늘었다. 지난달까지 누적 접수 건수는 6875건이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올해 현재 65세 이상 노인 중 72만5000명이 치매 환자로 추산된다. 노인 10명 중 1명(10.2%)이 치매를 앓고 있다. 2024년 100만명, 2041년 200만명에 이어 2050년엔 270만명을 넘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만큼 성년후견인 제도가 더 확산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이 제도의 수혜자다.
자산을 적절하게 쓰도록 돕는 즉 은행 업무를 대신하는 것이 성년후견인 역할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비대면 거래가 허용되지 않는데다 은행마다 업무 절차가 제각각이어서 볼멘소리가 나온다.
20일 금융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성년후견인 상당수는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반드시 은행 영업점을 방문해야 한다.
은행에서 비대면 거래를 제한한 탓이다. ‘디지털 금융’ 시대에 ‘전표 거래’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성년후견인 절차가 시작되면 당사자 계좌를 동결하는 탓에 연동해 있던 체크카드 사용도 금지된다. 일부 은행은 체크카드를 다시 쓰도록 허가하거나 새로 발급하지만 그렇지 않은 은행이 더 많다. 자동이체도 허용하지 않는 곳이 대다수다.
약 30건의 성년후견사건 업무를 하는 송인규 변호사는 “성년후견인들끼리 우스갯말로 ‘비대면 거래 허용하는 은행 생기면 자산을 모두 옮길 것’이라는 말도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김 법무사가 그랬다.
은행이 성년후견인 비대면 거래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금융사고 예방 차원이 크다. 예컨대 성년후견인이 인터넷뱅킹으로 대출을 일으켜도 막을 방법이 없다. 법원은 이런 우려를 고려해 성년후견인의 인터넷뱅킹 신규 개설을 기각한 적 있다.
다만, 기술적 문제인데 은행이 해결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아울러 제도에 대한 은행의 인식도 낮다. 금융거래는 당사자 거래가 원칙이라서 성년후견인에게 예외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은행 업무 방식도 들쑥날쑥 이라는 것이다. 업무처리 방식이 다른 이유는 마땅한 기준이 없어서다.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 지침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건을 담당하는 김성우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는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은행 업무의 번거로움을 호소하는 성년후견인이 상당하다”며 “은행이 기술적으로 업무 환경을 개선하면 장기적으로 제도 정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