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프타發 석유화학 ‘눈물의 적자’
3일 산업통상자원부 원자재가격정보에 따르면 석유화학산업 주요 원료인 나프타 가격은 지난달 기준 월평균 톤(t)당 719.6달러로 지난 2월(686.5달러) 대비 한 달 만에 4.82% 급등했다. 같은 기간 에틸렌 가격은 t당 905달러에 거래됐다.
이에 따른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에서 원료인 나프타 가격을 뺀 금액)는 t당 185.4달러(905달러-719.6달러)로 집계됐다. 에틸렌은 ‘석유화학의 쌀’로 불린다. 석유화학 업체들이 에틸렌을 활용해 각종 스페셜티 제품을 생산하는 식이다. 업계에서는 에틸렌 스프레드 손익분기점을 t당 300달러 수준으로 보고 있다. 300달러는 돼야 석유화학 업체들이 이익을 낼 수 있는데, 지금은 손익분기점을 큰 폭 밑돌고 있다는 의미다. 2022년부터 이어진 업황 악화로 공장을 가동할수록 오히려 손해가 누적되는 상황이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LG화학(051910)이 지난해 석유화학 부문에서 143억원의 적자를 낸 배경도 여기에 있다. 롯데케미칼(011170) 역시 지난해 연간 영업손실 3332억원을 기록했다. 이에 기업들은 에틸렌 등 기초유분을 제조하는 나프타분해시설(NCC) 매각을 검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원가 부담이 늘어난 동시에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이 지속하면서 석유화학 업계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기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공급망 경색과 글로벌 기준금리 인상 행진으로 석유화학 제품 전반에 대한 수요가 크게 위축됐다”고 했다.
철강업계 역시 원재료 가격 상승 등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쇳물의 원료인 철광석 가격은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상승하기 시작해 올해 1월 t당 142.58달러로 2022년 6월(144.37달러) 이후 1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1월 이후 조금씩 가격이 하락하고 있으나 여전히 t당 100달러대를 웃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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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 반도체 매입 비용 10% 증가
전자업계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005930)에 따르면 스마트폰 등의 주요 원재료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솔루션 가격은 전년 대비 약 30% 상승했다. 모바일 AP는 스마트폰이, 태블릿PC 등에 탑재하는 중앙처리장치(CPU)다. 삼성전자는 모바일 AP를 자체 생산하는 동시에 미국 퀄컴, 대만 미디어텍으로부터 사들이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제조 비용 상승을 피할 수 없는 구조다.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카메라모듈 가격은 11%가량 올랐다. 하만이 엔비디아와 인텔로부터 매입하는 시스템온칩(SOC) 반도체의 경우 10% 뛰었다.
특히 갑작스러운 대만 지진 탓에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TSMC의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면서 산업계의 인플레이션 걱정은 더 커지게 됐다. TSMC는 애플, 엔비디아, 퀄컴 등 주요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들의 제조를 대신 해주는 회사다.
전기료 인상 역시 산업계의 부담이다. 최근 3년간 40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한 한국전력이 올해 또 한 번 전기료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기료가 오르면 포스코와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전기로를 사용하는 철강사들은 원가 부담 가중을 피할 수 없다. 철강업계는 통상 전기요금이 1㎾h(킬로와트)당 1원 인상되면 연간 원가 부담이 약 200억원 증가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전기료 인상을 제품 가격 인상으로 대응하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중국산 저가 철강 제품과 일본산 열연강판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다. 한국만 가격을 올리면 매출 급감은 불가피하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인플레이션으로 전방 수요가 감소하면서 철강 소비량이 줄고 있다”며 “여기에 원재료 가격 상승과 생산 비용 증가가 예상돼 업황 부진이 올해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산업계의 원자재 부담은 최근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상의가 전국 2230개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들은 올해 상반기 실적에 영향을 미칠 대내외 리스크로 ‘내수 소비 위축’(55.2%)과 ‘원자재가·유가 불안정’(50.1%)을 가장 많이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