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은의 지구 한바퀴]16.열정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김재은 기자I 2015.09.19 06:20:00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칼라파테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호르헤뉴베리공항까지는 3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만약 칼라파테 항공편을 못 구했다면, 푼타아레나스에서 산티아고로 가 다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와야했기에 시간이 적어도 만 하루이상 절약된 셈이다. 참고로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시차가 없다. 우리나라보다 12시간 느리다.

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가인 누에베 데 훌리오(Av.9 de July)에 호텔을 잡았다. 사실 가보지도 않고 구글 맵으로 위치만 검색하며 잡은 호텔이라 걱정이 컸지만, 누에베 데 훌리오 대로변에 위치해 시내를 돌아다니긴 참 편했다.

누에베 데 훌리오는 ‘7월 9일의 거리’란 뜻으로 이날은 아르헨티나 독립기념일이다. 사실 아르헨티나는 1810년 5월 25일 스페인으로부터 파견된 지도자를 해임하고 독립했으나 1816년 7월 9일에서야 주 대표들이 모여 공식적인 독립을 선언하게 된다. 누에베 데 훌리오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로로 유명한데, 일방통행 10차선 도로가 양쪽으로 각각 자리하고 가운데에는 가로수와 중앙공원이 있다.

맛이 없던 부에노스아이레스 피자. 사진=김재은 기자
호텔에 체크인 후 짐을 풀고 나서 환전(깜비오·Cambio)을 하고, 백화점 근처에서 맥주와 피자로 늦은 점심을 때웠다. 피자는 맛이 없어도 너무 없다. 그리운 뉴욕의 피자….

아르헨티나는 가죽제품이 저렴하다고 해 주로 가죽제품, 가방 등을 쇼핑했다. 이제 부에노스아이레스 여행을 마치면 런던밖에 안 남기 때문에 여기서 쇼핑을 하고, 캐리어를 하나 더 장만해 이동하기로 결정했다.(덕분에 2주이상 우리를 짓눌렸던 짐싸는 부담이 드디어 사라졌다!)

오후 8시엔 호텔앞에 준비된 차량을 타고 탱고공연 및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우리 빼고는 대부분 50~60대이상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많다. 젊은 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

탱고 공연을 보러 지하로 내려가는데 옷이며, 모자를 빌려주며 사진을 찍으라고 유도한다. 나는 남자 무용수랑, 신랑은 여자 무용수랑 각각 어색한 포즈로 사진을 찍고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탱고 공연장 입구 간판. 사진=김재은 기자
공연장은 생각보다 꽤 컸다. 남미에서 탱고를 직접 배우진 못하더라도 한 번은 봐야 한다는 생각에 호텔 체크인 직후 카운터에 물어 예약한 우리다.

불이 꺼지고, 공연이 시작됐다. 바로 탱고공연을 하는 건 아니고, 통기타 등을 가지고 나와 노래를 부르더니, 카우보이 복장의 아저씨가 나와 탭댄스도 춘다. 탱고공연은 하이라이트라 뒤에 보여줄 모양이다. 공연 중간에 음식이 나왔다. 공연장이 어두워 저녁을 먹기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지만, 그래도 ‘열정의 아르헨티나’를 체험한다 생각했다.(공연모습은 사진 촬영 불가였다.)

우리가 본 탱고는 ‘열정’ 그 자체였다. 너무나 격렬해 한 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저 멀리 달아날 정도로 말이다. 무용수들은 땀을 흘리며 최선을 다해 공연했고,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자정이 지나서야 호텔로 돌아왔다.

탱고는 유럽에서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로 이주한 이주민들로부터 시작된 민족음악으로 그 기원이나 변천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다. 일반적 정설로는 라플라타강 유역 부에노스아이레스 주변의 선착장에 외향항로 선원들이 1800년대 쿠바섬에서 유행하던 2/4박자의 가요조 음악 아바네라를 전했고, 여기에 부에노스아이레스나 몬테비데오 거리에서 연주되고 춤추던 칸돔베가 섞여 밀롱가가 파생됐다. 밀롱가의 변형된 음악이 현재 탱고라는 게 정설이다.(위키피디아)

부에노스 아이레스 둘째날이 밝았다. 버스 시티투어를 하기로 한 날이다. 우리가 여행했던 2013년 12월은 아르헨티나가 국가부도 사태를 맞느냐 마느냐 기로에 놓였던 때다. 때문에 은행 공식 환율과 길거리 환율이 3배이상 차이가 났다. 덕분에 저렴하게 쇼핑을 하긴 했지만, 조금 찜찜하기도 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 거리의 모습. 사진=김재은 기자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코스를 돌며 부에노스 아이레스 여기저기를 살핀다. 산티아고처럼 보랏빛 자카란다가 여기저기 가로수로 자리하고, 늘씬한 언니들이 지나다닌다. 칠레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알록달록 화려한 라보카지역. 사진=김재은 기자
버스 중간중간 내려 관광을 했는데, 탱고의 발상지인 라보카(La Boca) 지역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형형색색의 건물들과 흥겨운 음악, 거리 곳곳에 탱고를 추는 남녀까지…. 라보카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대표한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레스토랑마다 흥겨운 음악에 맞춰 정열의 탱고를 선보이고, 여기저기 자유롭게 앉아 맥주를 마신다.

라보카 지역내 한 레스토랑에서 남녀가 탱고를 추며 손님들을 모으고 있다. 사진=김재은 기자
시간이 많지 않았던 우리는 꼭 먹어봐야 한다는 ‘초리스’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겨우 찾은 레스토랑에서 포장주문을 한 뒤 기념사진을 몇장 찍었다. 소시지를 빵에 끼워 간단한 야채와 함께 먹는 초리스로 간단히 점심을 때웠다. 초리스가 잘 기억나지는 않는 걸로 봐서 맛이 그렇게 감동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보카 주니어스 경기장. 사진=김재은 기자
보카주니어스 경기장도 빼놓을 수 없다. 파랗고 노란 좌석이 빼곡히 들어찬 경기장도 구경하고, 그보다 더 많은 기념품도 둘러봤다. 아르헨티나까지 언제 오겠냐는 생각에 조카 티셔츠도 장만하고, 신랑도 하나 사줬다. 저녁까지 주어진 시간은 두어시간 정도. 이젠 선택을 해야 한다.

고심끝에 우리는 오페라 극장을 개조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부에노스 아이레스 중심가 산타페 거리에 있는 `엘 아테네오 그랜드 스플렌디드`를 가기로 했다. 1919년 5월 오페라 극장으로 문을 열었다가 1928년 영화관으로 바뀌어 운영돼왔다. 2000년 출판 서점업을 하는 그라시아 가문은 영화관을 서점으로 탈바꿈시켰다. 현재 엘 아테네오에선 한해 70만권이상의 책이 팔리고 100만명이상이 방문하는 명소가 됐다.(위키피디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008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10대 도서관을 선정하면서 이곳을 두번째로 꼽기도 했다.

오페라 극장을 개조한 아름다운 서점 엘 아테네오. 사진=김재은 기자
과거 오페라가 공연됐을 무대는 사람들의 쉼터인 카페가 자리한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아르헨티나를 느껴본다. 나라는 위기에 빠졌지만, 길거리에서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밝고 예쁘다. 이렇게 낙천적이기만 해 위기에 빠졌을까 싶기도 하다. 아테네오 서점에서 죽기전에 다시 못 갈 것 같은 ‘파타고니아’ 관련 책자를 구입하고는 발길을 돌렸다.

다시 우리의 목적지는 쇼핑의 중심가인 플로리다 거리의 백화점이다. 샘소나이트 캐리어를 10만원대에 구매하고, 패셔너블한 가죽자켓도 2개 장만했다. 록시땅 시아버터 크림도 몇개 챙기고는 쇼핑을 끝냈다. 이제 슬슬 허기가 밀려온다. 시간은 벌써 오후 8시를 넘어 9시를 향해가고 있고, 우리는 호텔로 걸어오는 길에 펍에서 맥주, 햄버거, 오징어튀김 등을 먹으며 저녁을 대신했다. 펍에는 한명씩 자리한 테이블이 꽤나 많았는데, 그시간에 와인을 병째 들고 마시며 축구를 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빛나는 오벨리스크. 사진=김재은 기자
호텔로 돌아가려면 누에베 데 훌리오를 가로질러야 한다. 밤이 되니 세계에서 가장 넓은 차로 한 가운데 위치한 하얀 오벨리스크가 더욱 빛난다. 길을 건너는 와중에 사진도 찍고, 캐리어를 끌며 호텔로 왔다.

이제 내일이면 남미를 떠나 런던으로 향한다.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하루종일 돌아다닌 우리는 남미의 마지막 밤을 제대로 만끽하지도 못한 채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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