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누가 강릉에 바다만 보러 가는가

강경록 기자I 2015.08.25 06:32:00

강원도 강릉으로 떠나는 늦여름 여행
25년간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으로 만들어낸 '노추산 모정탑'
허균의 부친 '허엽'의 손길 담은 '초당두부'
길까페의 화려한 변신 '안목항 까페거리'

강원 강릉시의 노추산 자락에 자리한 모정돌탑길. 1㎞ 남짓한 산길 양쪽으로 3000여기의 돌탑이 연이어 있다. 두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차옥순씨가 생전에 무려 26년간 공들여 쌓은 탑이다.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여름을 보내는 동시에 가을을 부르는 비다. 어느덧 펄펄 끓는 가마솥 같던 기나긴 여름도 끝자락을 드러냈다. 언제나 그렇듯 계절이 지나갈 즈음엔 늘 아쉬운 마음이 남는다. 점점 짧아지는 해를 바라보며 여름의 절정을 즐기지 못했다는 자책도 인다. 아마 여름을 다 채우지 못한 마음의 여백일 것이다. 이번 여행지는 강원 강릉시. 대관령 너머에 있는 강릉은 예부터 자연경관이 수려해 여행자가 즐겨 찾는 곳 중 하나다. 멀어져 가는 여름을 위한 이별식을 치르기에 손색없는 곳이다. 식어버린 바닷물에 몸을 담그기는 늦었지만 내년 여름을 기약하기에는 아쉽지 않은 곳이다.

강원 강릉시의 노추산 자락에 자리한 모정돌탑길. 1㎞ 남짓한 산길 양쪽으로 3000여기의 돌탑이 연이어 있다. 두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차옥순씨가 생전에 무려 26년간 공들여 쌓은 탑이다.


▲돌탑에 새긴 모정…노추산 모정돌탑길

강릉 가는 길. 시간을 좀 넉넉히 해서 강원 내륙을 거쳐 가보기로 한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곁들이고 싶다면 영동고속도로 강릉방면 진부 IC(나들목)에서 나와 33번 국도를 타는 게 좋다. 오대천 맑은 계곡이 시종 나란히 하는 데다 오가는 차량도 적어 운전하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는 멋진 코스다. 나전에서 42번 국도로 갈아타고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인 강릉 왕산면 대기리에 자리한 노추산(1322m)으로 향한다. 노추산은 율곡 이이가 붙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공자가 태어난 노나라와 맹자가 태어난 추나라를 합쳐서 붙인 이름이란다. 강릉사람들은 율곡이 노추산 오장폭포 꼭대기에서 공부를 했다고 믿고 있다.

노추산을 첫 목적지로 삼은 이유는 모정탑 때문이다. 모정탑은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만들어낸 3000여기의 돌탑. 2011년 숨진 차옥순 씨가 1986년부터 26년 동안 노추산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쌓은 돌탑길에 마을주민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사연은 이렇다. 스물셋에 강릉으로 시집온 서울 처녀 차옥순. 네 자녀 가운데 아들 둘이 먼저 죽고 남편은 정신병을 앓았다. 끝없는 우환에 지친 그녀는 돌탑 3000기를 쌓으면 근심이 사라진다는 꿈을 꾸고 노추산을 찾아와 탑을 쌓았다. 26년 동안 혼자서 3000기를 쌓고서 그녀는 예순여덟 살에 하늘로 갔다. 1986년부터 2011년까지 노추산 자락에서 벌어진 진짜 이야기다.

모정탑은 대기리 산촌체험학교에서 정선군 구절리 방향으로 4㎞ 남짓 가면 노추산 계곡을 따라 1㎞ 넘게 이어져 있다. 들머리는 소나무 숲 사이에 자리한 오토캠핑장부터. 캠핑장 반대편 갈림길로 들어서면 붉은 금강 소나무 숲길이 나오는데, 덜 다듬어져 울퉁불퉁 거친 이 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여행객이 쌓아놓은 돌탑이 하나둘 눈을 잡는다. 피톤치드로 기분 좋게 샤워하듯 걷다 보면 어느새 나무다리.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돌탑 군이 이어진다.

한마디로 장관이다. 돌탑 둘레도 엇비슷하고 높이도 마치 줄을 맞춘 듯 일정하다. 둥글게 이리저리 돌기도 하는 것이 마치 지형지물을 이용해 쌓은 듯 안정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다가 돌탑으로 담을 쌓은 길 끝에 도착하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크고 작은 돌탑이 계곡을 가득채우고 있기 때문. 이게 정녕 한 사람의 힘으로 가능할지 의문이 들 정도다. 경외스럽다는 표현이 딱 맞다. 가만히 돌탑 위에 손을 얹어 매일같이 돌을 날라 차곡차곡 쌓았을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얼큰한 국물맛이 일품인 동화가든의 ‘짬뽕순두부’


▲대한민국 두부의 교과서…초당두부

짧은 산행 후에는 바다향 가득한 음식으로 허기부터 달래자.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지는 요즘, 여름 동안 허해진 몸을 보양하기 위해선 차가운 음식보다 따뜻한 음식이 좋다. 제격인 음식으로 추어탕이 알려져 있지만 강릉에는 추어탕만큼 몸에 좋은 음식이 있다. 바로 두부다. 두부는 콩 속에 들어 있는 단백질을 추출해 응고시킨 식품. 저칼로리 고단백식품으로 다이어트에도 인기가 높다. 특히 혈압과 콜레스테롤을 낮춰 동맥경화에 효과적이다.

강릉에서는 단연 초당두부다. 일단 초당두부를 맛보려면 경포대 해변에서 남쪽방향으로 1㎞쯤 내려가 초당마을을 찾아야 한다. 큰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초당마을은 들머리부터 20여개의 순두부전문점이 늘어서 있는데, 전국의 많은 식객이 한번 먹어본 이곳의 순두부 맛을 잊지 못하고 찾아드는 곳이다.

초당두부는 사연도 맛도 깊은 음식. 문헌에 따르면 허균과 허난설헌의 부친 허엽이 집 앞 샘물로 콩물을 끓이고 바닷물로 간을 맞춰 두부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그 맛이 좋아 자신의 호 ‘초당’으로 이름을 붙였다고. 두부를 만든 샘물이 있던 자리가 바로 지금의 초당동이다. 초당두부라는 이름은 그렇게 전해졌다.

수백년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초당마을의 두부는 바닷물을 간수로 쓰고 국산 콩을 이용해 두부를 만드는 통방식을 고수한다. 불린 콩을 갈아 면포에 내리면 투박한 가루는 비지가 되는데 이때 맑은 콩물만 가마솥으로 옮긴다. 한 시간 남짓 콩물을 펄펄 끓이는데 그것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손길은 쉴 틈이 없다. 두부가 엉기지 않게 주걱으로 계속 저어야 하기 때문. 끓인 콩물을 식힌 뒤 간수를 섞을 때도 한꺼번에 쏟아 부어서는 안 된다.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몽글몽글한 순두부를 만들려면 바가지로 조금씩 부으면서 양을 조절해야 한다.

초당두부는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이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오롯이 순두부만 맛볼 것을 권한다. ‘초당할머니 순두부집’(033-652-2058)은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손두부가 유명하고, ‘동화가든’(033-652-9885)의 짬뽕순두부는 얼큰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두부 입맛 까다로운 인근 주민도 알아줄 정도다.

직접 볶은 커피콩으로 커피를 내리는 ‘보헤미안’ 까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드립커피를 즐기고 있는 여행객.


▲커피 한잔 속에 담긴 동해바다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면 이제는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겨볼 시간. 안목항 커피거리는 어느새 강릉을 대표하는 명소가 된 곳이다. 한집 건너 한집 꼴로 커피전문점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커피전문점만 30여곳. 어촌 해변임에도 활어횟집보다 커피점이 더 많을 정도다.

이곳이 커피거리로 알려진 건 2000년대 초반. 당시 불과 500m 길이의 도로에 80대 이상의 커피자판기가 있었다. 그래서 ‘길카페’로 통했다. 원래 안목 해변에도 횟집들이 죽 늘어서 있어 여느 해변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던 것이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경포해수욕장을 벗어나 조용한 해변에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 로맨틱한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풍경이 바뀌었다. 이내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자 여기서 힌트를 얻은 자판기사업자들이 자판기를 설치하기 시작했던 것. 이후 소문을 들은 시내 직장인도 점심식사 후 자판기 커피를 마시러 안목해변을 찾았다. ‘단골자판기’를 두는 이들까지 있었다. 요즘에도 커피자판기는 남아 있지만 그 풍경을 이젠 커피전문점이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커피거리에선 흔한 다방커피를 비롯해 원두를 직접 볶는 로스팅커피, 뜨거운 물을 내려 만든 드립커피, 작은 기구에 커피를 채우고 열을 가해 뽑아내는 모카포트식이나 직접 알코올램프에 가열해 커피를 추출하는 사이펀식, 유리비커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더치커피 등 커피의 모든 맛을 즐길 수 있다. 대표적인 커피전문점으로는 핸드드립의 고수로 꼽히는 ‘보헤미안’(033-642-6688), 커피공장으로 통하는 ‘김용덕의 테라로사’(033-648-2760) 등. 비릿한 바다내음을 누르는 커피향의 대명사다.

안목항의 커피전문점은 대부분 2층 야외 테라스를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 야외 테이블과 창가 테이블은 커피 맛과 함께 바다를 바라보는 전망까지 더한 명당이다. 때문에 휴일에는 이 명당을 차지하기 위한 손님들이 일찌감치 장사진을 치기도 한다고 업주들은 귀띔한다. 매년 가을마다 커피축제(10월 8~11일)도 연다.

안목항 커피거리에서 보헤미안을 운영하는 박이추 선생이 직접 볶은 커피콩을 잘게 빻은 원두를 섞어 물을 부어 걸러내는 드립커피를 만들고 있다.


◇여행메모

△가는길=서울 청량리역(www.korail.com)에서 강릉역까지 하루 7회 무궁화열차를 운행한다. 첫차는 아침 7시, 막차는 밤 10시 40분에 출발한다. 자가용을 이용한다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 IC에서 나가면 된다.

△먹을곳=사천항쪽에 물회 전문집이 몰려 있다. 물회는 오징어와 가자미를 주로 사용하는데 전복이나 해삼 등을 추가하기도 한다. 황토전복물회(033-641-8210)와 장안횟집(033-644-1136) 등이 유명하다. 옛 카네이션(033-641-9700)은 대구머리찜 전문집이다. 성산면 쪽에 있다.

△묵을곳=조금 여유가 있다면 최근 강릉 경포대에 새로 문을 연 6성급 씨마크(Seamarq) 호텔을 추천한다. 투숙객에게는 인피니티 풀이 있는 실내외 수영장과 사우나가 무료다. 객실 내 미니바의 맥주와 음료 등도 무료로 제공된다. 가격은 40만원대다.

초당마을 인근의 허난설헌 생가 주변에는 소나무 숲이 있어 전통 한옥과 어우러져 더욱 멋스럽다.
초당마을의 짬뽕순두부
전통 초당순두부를 맛볼 수 있는 토담순두부.
고소한 맛이 일품인 토담순두부의 ‘모두부와 순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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