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사회계약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 헌법 제34조 제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28일 행정안전부 업무보고 당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제1의무이며 국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고 강조한
지난 18일 단원고의 남현철, 박영인 학생과 양승진 선생님, 일반 승객 권재근 씨와 그의 아들 혁규 군 등 세월호 미수습자 5명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참사 이후 1,312일만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해가 뜨나 달이 뜨나 해가 세 번 바뀌고, 계절이 15번 바뀌는 동안에도 진도 팽목항과 목포 신항을 떠나지 못하던 유가족들은 결국 그들을 가슴에 묻었다.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해 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너무도 아리다.
작년 6월 강제로 활동이 종료된 1기 세월호 특조위는 진상규명을 할 수 있는 권한 자체가 약했다. 자료제출 거부와 출석거부는 예삿말이었고, 정부 등은 노골적으로 조사 방해를 했다. 강제성 없는 특검 요청 권한도 무용지물이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보고 관련 문건을 조작하고,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을 불법 변경했으며,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당일 행적 조사를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과 정책수석 등이 방해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보고시점을 누가, 왜 조작을 했는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조작된 것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운 지경일 정도로 전방위적이고 조직적인 은폐행위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은 방송사에 압력성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단 한 번의 외압이었다고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회피하고 진상을 은폐하려는 청와대, 정부와 이에 휘둘리던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 이면에는 또 어떤 진실이 숨어 있을까. 들여다보기조차 무섭고 황망하다.
지난해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돼 오는 24일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는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사회적 참사법)은 조사관들에게 사법경찰관리의 권한을 주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무제한 특검을 요구할 수 있으며, 국회의 해당 상임위는 1개월 이내에 특검 관련 법안 심사를 마쳐야 하고, 설령 기간 내에 심사를 마치지 못 했을 경우 국회 본회의에 부의 된 것으로 간주하고 1개월 이내에 상정하게 되어 있다. 즉, 특검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없앤 것이다. 5명의 특검 후보자도 특조위에서 추천하게 돼 있다. 조사기간도 최장 3년으로 최장 1년 6개월이었던 1기 특조위보다 늘어나 충분한 진상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2기 특조위 활동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일은 국민의 대변자인 국회가 해야 하는 ‘최소한’의 것이다. 더 이상 늦출 수도 주저할 수도 없는 일이다. ‘사회적 참사법’ 처리는 여야가 당리당략으로 유불리를 따질 문제가 결코 아니다. 아무도 그럴 자격이 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과 관련한 상황에서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이를 정쟁의 수단으로 삼아 정치 공세를 위해 악용하는 구태와 구악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작년 이 맘 때 광화문을 비롯하여 촛불이 켜졌던 전국 곳곳에서 불리었던 노랫말을 기억할 것이다. 이 노랫말의 모든 부분이 가슴에 사무칠 정도로 다가오지만, 이제 노랫말대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 불행한 시대를 막기 위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갔고, 비로소 새 시대를 열기 위한 첫 발을 내딛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은 이제 부터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