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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은 이후 다소의 논란도 있었는데 ‘의리적 구투’를 영화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건 연극이며 당시 유행하던 연쇄극이라는 형식으로 연극 중간에 영화장면을 삽입했던 총체극이었다는 것이다. 연쇄극은 연극과 영화가 혼합된 형식이긴 하지만 연극을 주로 하는 가운데 영화를 중간에 보조적으로 삽입했다는 점에서 연극으로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최초의 영화는 4년 후, 전편이 영화로 완성된 ‘월하의 맹서’(1923)로 하자는 주장도 나타났다. 하지만 그건 조선총독부제작의 영화라 한국최초 영화로 하기엔 미흡했다.
지금 다시 그 논점을 정리해보면 1919년 10월27일을 최초의 영화탄생으로 하는 데에 무리는 없다. 1963년에는 극영화만을 최초로 간주하려는 생각에서 ‘의리적 구투’를 언급한 것인데 ‘의리적 구투’가 연극이어서 적합지 않다면 동시에 개봉한 기록영화 ‘경성전시의 경’을 최초의 한국영화로 간주하면 되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 영화의 촬영이 일본인이므로 문제가 있다고도 하지만, 촬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작자가 조선인 김도산인 만큼 ‘경성전시의 경’은 최초의 한국영화가 되는데 문제가 없다.
두 번째로 ‘의리적 구투’는 전혀 해당이 안 되는가에 대한 것이다. 최초의 영화가 반드시 완결된 영화여야 한다는 근거는 없기 때문에 ‘의리적 구투’에 삽입된 영상도 최초의 영화가 될 수 있다. 1963년도 최초의 영화를 연쇄극 ‘의리적 구투’로 정한 것이 잘못이라면 ‘의리적 구투’에 삽입된 영상이라고 정정하면 된다. 연극에 삽입된 부분일지라도 영화부분이 존재했다면 그건 최초의 영화로 간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대표적인 예가 세계 최초의 영화로 알려진 프랑스 영화 ‘열차의 도착’(1895)이다. 이 영화는 불과 몇 십초 분량의 짧은 영상이며 역에 열차가 들어오는 모습을 담은 기록영화 조각일 뿐이다. 연극에 삽입되었느냐 아니냐, 완전한 영화냐 아니냐는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보다 중요한 것은 당시로서 제작의 주체가 조선인이냐, 일본인이냐가 더 중요하다. 조선인이 최초로 제작한 영화면 문제없는 것이다. 이렇게 최초 영화의 논쟁을 정리할 수 있다.
그래서 별 탈 없이 올해 2019년은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00년을 맞이하는 한국영화는 각별한 의미로 10월27일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100년이 되는 사이 영화의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려가고 새로운 100년이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어로 영화를 의미하는 시네마(cinema)란 움직인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만큼 영화는 동영상의 시대를 100년 동안 끌어온 원동력이며 효시였던 셈이다. 이제 앞으로 그 오락산업의 시대가 종막을 고할 것이고 움직이는 영상을 바라보는 시대를 넘어서서 살아 움직이는 영상 그 자체와 어울리는 쌍방향 매체 시대가 열릴 것이다. 인공지능(AI)을 통해 인간이 기계 속에 숨어있는 새로운 휴머니즘의 시대가 전개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