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설문대할망이 만든 '경이' 속을 걷다

강경록 기자I 2014.02.04 08:10:19

제주 서귀포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 코스

용머리해안에서 바라본 산방산의 모습.
[글·사진=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제주도는 사계절 어느 때 찾아도 좋을 만큼 아름답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을 만큼 매력이 넘친다. 제주민의 삶이 오롯이 살아 있는 오름도 마찬가지다. 그뿐인가. 걷기 열풍을 일으킨 올레길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렇게 좋은 제주에 특별한 일이 하나 더 생겼다. 서귀포시 안덕면 인근에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이 3월에 개통한다는 소식이다. 사실 제주도는 섬 전체가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지질공원. 지질학적 가치가 높고 경관이 수려한 지질명소 10곳을 선정해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고 있다. 이번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도 그 일환이다. 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여기에 전설과 신화가 많은 지역의 특성을 더해 지역주민과 함께 지속발전이 가능한 지질관광상품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아직은 미흡하지만 미리 찾아 걸어본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은 수려한 경관은 물론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지녔다. 걸음걸음마다 발 아래로 느껴지는 지구의 혈기 왕성한 맥박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값진 경험이었다.

용머리해안을 걷다 보면 층층이 나이테를 머금은 절벽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이 절벽은 물속에서 터진 화산의 재와 가스가 빠른 속도로 흘러 가며 쌓인 것으로 오랜 시간 비와 바람 등에 의해 침식하며 자연스레 생긴 것이다.
△제주가 가진 특별한 가치 ‘세계지질공원’

독일 서부의 불칸아이펠, 일본 나가사키현 시마바라반도. 이 두 곳의 공통점은 세계지질공원을 바탕으로 관광지로 성장했다는 것. 불칸아이펠은 지구역사를 간직한 350여개의 화산체와 70여개의 마르형 분화구를 기반으로 자전거하이킹, 화산체험, 경비행기투어 등의 상품을 내놓아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시마바라반도는 화산활동으로 새롭게 형성된 헤이세이신산을 비롯해 다양한 화산활동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 지역농산물 판매를 위한 브랜드 ‘지오 스위츠’로 유명하다.

머지않아 제주에도 해외 유수의 지질관광명소와 어깨를 나란히 할 다양한 관광상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제주관광공사와 서귀포시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핵심마을 활성화 사업’을 추진, 관광생태여행과 농산물 브랜드개발에 착수했다.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은 그 시작인 셈이다.

산방산 아래 용머리해안이 트레킹의 시작점이다. 총 30㎞ 코스로 A코스, B코스, A단축코스 등 3개 코스로 구성됐다. A코스는 용머리주차장을 시작으로 용머리해안, 사람발자국 화석, 대정향교, 단산, 덕수리 공방을 거쳐 용머리주차장으로 돌아오는 14.5㎞다. A단축코스는 A코스를 단축해 10.7㎞로 구성됐다. B코스는 용머리주차장을 시작으로 화순금모래해변, 화순선사유적지, 화순곶자왈을 거쳐 다시 용머리주차장으로 돌아오는 15.6㎞ 코스다. 3월에 완공될 코스라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걷기에는 문제가 없다.

용머리해안을 걷다 보면 층층이 나이테를 머금은 절벽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물속에서 터진 화산의 재와 가스가 빠른 속도로 흘러 가며 쌓인 것으로 오랜 시간 비와 바람 등에 침식하며 자연스레 생긴 것이다.
△마그마가 솟아올라 龍이 됐네…용머리해안

A코스를 걷기로 했다. 시작은 산방산 아래 용머리해안. 산방산 앞자락 바닷가에 있다. 산방산휴게소에서 불과 5분여 걸어 내려가면 수려한 해안 절경과 마주친다. 쉼 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피하며 아기자기 놓여 있는 관광로를 걷다 보면 태평양의 푸르름과 멋들어진 해안 절경 속으로 빠져든다. 용머리라는 이름은 언덕의 모양이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닮았다 해 붙여졌다. 용머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하멜기념비’가 있으며 용머리를 관광하는 데는 1시간 정도면 족하다.

용머리해안은 산방산과 함께 제주의 대표 지질명소다. 봄마다 유채꽃밭을 배경으로 관광객들의 사진에 등장하느라 바쁜 산방산에 비해 유명세가 덜하다. 갔다가 헛걸음을 할 확률도 높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동절기 5시30분)까지 개방하지만 썰물 때만 입장을 허용한다. 그래서 하루 중 탐방 가능시간은 3~4시간에 불과하다. 파도가 높을 때도 입장 불가. 찾아갈 땐 물때와 바다날씨를 먼저 확인해야 하지만 한번 가보면 이국적인 풍경에 놀라게 된다.

이 이국적인 풍경을 이해코자 한다면 제주가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학술용어로 수성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응회환, 물속에서 터진 화산의 재가 가스와 뒤섞여 무척 빠른 속도로 흘러가며 쌓인 지형이란 뜻이다. 마그마의 분출 형태는 물과 만나면 더 격렬해진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마그마가 분출된 건 약 100만년 전. 이후 영원과도 같은 세월 동안 바다의 손길을 받아 지금의 모습이 됐다. 요즘은 돈 많은 중국인 신혼부부들이 해외 원정 웨딩사진 촬영장소로 인기다. 그 또한 외계의 풍경 같긴 일반. 다른 명승지라면 눈살을 찌푸리게 했을 법한, 좌판에서 멍게 써는 모습이 그래서 이곳에선 밉지만은 않다. 최소한 그건 한국의 풍경임이 분명하다.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약 5만년전인 중기 구석기시대의 사람발자국 화석이 제주 남제주군 대정읍 상모리 및 안덕면 사계리 일대 해안에서 발견돼 주목을 끌고 있다. (사진=제주관광공사 제공)
△한반도에서 제주까지 이어졌네…사계리 사람 발자국 화석

용머리해안을 나와 송악산 방면으로 사계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사계 화석발견지를 만나게 된다. 2003년 10월 이곳에서 세계를 깜짝 놀랄 만한 발견이 있었다. 선명하게 두 발로 걸은 듯한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것이다. 모두의 예상대로 그것은 사람의 발자국이었다. 세계서 8번째인 사람 발자국 화석이다. 더불어 새와 동물의 발자국도 함께 발견됐다.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희귀하게 꼽히는 사례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465호로 지정된 곳이다.

제주도에서 발견된 사람 발자국화석은 총 500여점.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다량의 발자국 화석들이 발견되면서 사계리는 전 세계가 주목했다. 이쯤해서 의문점 한 가지. 과연 발자국의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먼저 발자국 화석의 크기와 생성연대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결과는 놀라웠다. 주인공은 무려 2만여년 전 이 땅을 살다간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경기도 연천 전곡리의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쓰며 살았던 ‘호모 에렉투스’보다 진일보한 ‘호모 사피엔스’라 불리는 구석기인이었다. 사람 발자국 화석의 주인공은 우리의 조상이었던 셈이다.

당시 우리 조상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호모 사피엔스는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고 불을 지배했으며 언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산 것이다. 그렇다면 도구 또한 사용했을 터. 2010년 제주도의 천지연폭포 주변에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보다 작고 날카로운 ‘좀돌날’이 출토됐다. 이 좀돌날의 탄소연대를 측정한 결과 이곳에 거주했던 사람들은 사계리에 발자국을 남긴 이들과 동일한 시대의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이들은 어떻게 바다를 건너 제주도에 터를 잡고 살았던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2만여년 전 제주는 한반도와 붙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렇기에 구석기인들은 제주에 걸어갈 수 있었다. 이들이 살았던 제주는 식량이 풍부했을 것으로 보인다. 사람의 발자국과 함께 다량의 동·식물 화석도 함께 발견된 것이 증거다. 누군가가 남긴 발자국엔 그렇게 삶의 흔적들이 녹아있었다. 마치 우리가 글로서 일기를 쓰듯 자신의 존재를 발자국으로나마 남기고 싶지는 않았을까.

용머리주차장에서 바라본 산방산의 모습.
△한라산 봉우리 뚝 잘라 만들었네…산방산

트레킹의 중심은 산방산이다. 어딜 가도 산방산은 전후좌우에서 보인다. 마치 엄지손가락을 세워놓은 형상이다. 누군가는 종의 모습을 닮았다고도 하고, 중절모 같다고도 한다. 산이라고 불리기엔 어딘가 어색하다. 왜일까. 답을 알려면 먼저 산방산의 생성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산방산은 땅에서 용암이 솟구쳐 만들어낸 산. 점성이 강한 용암이 굳어져 지금의 모양을 이루었다. 그 모양이 마치 돔처럼 생겼다고 해서 학술적 용어로 ‘용암돔’이라고 불린다. 그 규모 또한 세계적으로도 희귀하기에 지질학적 가치 또한 높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봉긋하게 솟은 모양 때문에 한라산 백록담에 있던 봉우리가 떨어져 나온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어느 사냥꾼이 한라산에 올라가다가 실수로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화살로 맞추고 말았고, 이에 화가 난 옥황상제가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던진 것이 산방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한라산을 만든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의 높이가 너무 높아 윗부분을 뽑아 던진 것이 산방산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산방산을 뒤집어 백록담에 맞춰보면 얼추 비슷하다고 하니 ‘믿거나 말거나’다.

아쉽게도 산방산 등산로는 2021년까지 폐쇄됐다. 그동안 산방산 정상을 향하는 등산로가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아 훼손 등의 문제가 발생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한다. 대신 산방사 쪽에서 산방굴사로 오르는 길이 있다. 산방굴사까지는 대략 10여분.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용머리해안의 전경을 바라
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다. 산방굴사는 절벽으로 둘러싸인 산방산에 천연석굴로 불상이 안치돼 있어 산방굴사라고 불린다. 굴 밖으로 보이는 용머리해안은 물론 형제섬, 가파도와 마라도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제주의 최고의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여행메모

△가는 길=제주 여행은 차량을 렌트해 이동하는 것이 좋다. 공항 내 대여소가 마련돼 있어 쉽게 구할 수 있다. 제주공항에서 시내를 빠져나와 1135번 도로를 타고 제주경마공원 방향으로 가다 덕수3교차로에서 산방산 방면으로 1132국 도로를 타고 가면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이 나온다.

△볼거리=서귀포권에는 볼거리가 넘쳐난다. 성산일출봉, 우도를 비롯해 섭지코지, 한화 아쿠아플라넷 제주, 중문관광단지, 천지연폭포, 산방산, 용머리해안 등이 대표적인 관광지다. 동쪽해안은 올레길 중 가장 아름답다는 5~10번 구간이 지나간다.

산방산에서 바라본 용머리 해안의 모습. 용머리라는 이름은 언덕의 모양이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졌다.
용머리해안에서 바라본 산방산의 모습. 용머리해안은 수성화산활동으로 생성된 해안으로, 물속에서 터진 화산의 재가 가스와 뒤섞여 빠른 속도로 흘러 가며 쌓인 지형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6시(동절기 5시 30분)까지 개방하지만, 썰물 때만 입장을 허용한다. 그래서 하루 중 탐방 가능 시간은 3~4시간에 불과하다.
용머리해안을 걷다 보면 층층이 나이테를 머금은 절벽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이 절벽은 물속에서 터진 화산의 재와 가스가 빠른 속도로 흘러 가며 쌓인 것으로 오랜 시간 비와 바람 등에 침식하며 자연스레 생긴 것이다.
한 겨울에도 따뜻한 기후탓인지 용머리해안을 찾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용머리해안에서 바라본 산방산의 모습.
용머리해안은 물때를 잘 맞춰 가야 낭패를 면할 수 있다. 동절기에는 오후 5시 30분까지 입장이 가능한데 그것도 썰물때만 공개된다.
용머리 해안을 걷다 보면 층층이 나이테를 머금은 절벽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이 절벽은 물속에서 터진 화산의 재와 가스가 빠른 속도로 흘러 가며 쌓인 것으로 오랜 시간 비와 바람 등에 의해 침식하며 자연스레 생긴 것이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