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전기버스 관련 정책은 환경부와 지자체의 보조금을 통한 통제에 집중돼 있다. 환경부는 2021년부터 3년간 수도권에 전기버스 보조금으로 2857억원을 집행했는데 이 중 절반 정도인 1454억원이 중국산 전기버스 구매에 사용된 셈이다. 중국산 전기버스 확대에는 환경부가 지자체를 통해 지급하는 보조금도 영향을 미쳤다. 각 지자체는 노후 버스 교체 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로 친환경 전기 저상버스 도입을 늘리고 있다. 이 가운데 중국산 전기버스가 늘어나는 건 값이 싸기 때문인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사용하는 중국산 전기버스는 니켈·코발트·망간(NCM) 기반의 삼원계 배터리를 쓰는 국산 전기버스보다 가격이 1억원 가량 저렴하다. LFP 배터리는 가격이 싸지만 재활용이 어려워 배터리 수명이 다하면 대부분 폐기하지만 NCM 배터리는 값비싼 원료를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재활용성이 높지만 그만큼 제품 자체 가격도 비싸다. 재활용을 생각할 때 NCM 배터리가 더 친환경적이지만, 무공해차를 늘려야 하는 지자체 입장에선 당장 찻값이 싼 중국산을 구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전기버스 원가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배터리의 경우, 국내 배터리 제조업체는 국내 상용차 시장이 작다는 이유로 고가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기버스 생산업체는 배터리를 파는 것인지, 버스를 파는 것인지 모를 형국이라고 하소연한다.
보조금 정책은 전기버스 구매자인 버스 운수사의 측면만을 고려한 것으로 실제 시장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정부의 정책이 산업 발전이란 측면에서 한계가 있음이 명확하다. 전기버스 시장의 최대 고객인 버스 운수사는 정부와 지자체가 정해 놓은 보조금과 운수사 자기부담금 규모에 따라 버스를 구매하게 된다. 운수사들은 자기부담금에 대해 지자체로부터 9년에 걸쳐 보전을 받기는 하지만 일시적인 자금 부담 또는 캐피탈을 이용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할부 이자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중국산 전기버스 업체들은 이러한 운수사의 어려움을 파고들어 자기부담금의 대리 납부 등과 같이 운수사의 재무적 부담금을 경감해 주는 영업 방식으로 국내 시장을 잠식해 왔다. 또한 지자체별로 다르게 지급하는 보조금 정책도 중국산 전기버스가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실질적인 견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지자체의 보조금이 줄어든 만큼 버스 가격의 인하 압박이 커지는데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국내 생산업체는 중국산 전기버스와의 경쟁에서 버터낼 수 없게 된다. 최근의 국내 NCM과 중국 LFP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 차이를 통한 보조금 차등은 중국산 전기버스의 시장 확대를 어느 정도 억제하지만, 일부 중국산 전기버스는 타국의 NCM 배터리를 장착해 이를 회피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국내 전기버스 제조업체들의 만성적인 적자 상황은 시장에서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현대자동차와 우진산전만 해도 수년간 울며 겨자 먹기로 버스를 판매하고 있지만 적자를 벗어난 적이 없고, 대우버스는 사실상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며, 에디슨모터스는 수익성이 악화해 타 기업에 인수됐다. 반면에 운수사는 준공영제라는 방어막을 통해 사업 실적에 상관없이 대를 이어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왜곡된 시장의 모습에서 보조금 정책만으로는 더이상 국내 전기버스 사업을 육성하고 방어하지 못한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이제라도 산업육성을 담당하는 부서가 적극적으로 나서 국내 기업의 육성과 지원을 구체화해야 할 시점이다. 국내 전기버스 생산업체의 도산 우려도 문제지만 대중교통의 중심인 버스 부문이 저가의 중국산 전기버스에 점령된 후 발생할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전국의 철도와 지하철 역사 승강기가 중국산으로 대거 바뀐 뒤 부품 수급의 차질로 고장난 승강기가 몇 개월간 방치되는 일이 버스에서도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문제가 터지고 나서 바로잡으려 한다면 늦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