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현·이영훈·서태지 음악 뮤지컬로…과분한 경험이죠"

장병호 기자I 2018.11.29 06:00:00

뮤지컬 ''광화문 연가'' 김성수 음악감독
1년 만의 재공연…새 넘버 추가 등 변화 가미
이문세 "훔치고 싶은 편곡" 극찬하기도
"퀸·들국화로 뮤지컬 작업? 가문의 영광"

뮤지컬 ‘광화문 연가’의 김성수 음악감독(사진=CJ ENM).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한국 ‘록의 대부’로 불리는 기타리스트 신중현, ‘팝 발라드’를 개척한 작곡가 이영훈, 90년대 ‘문화대통령’으로 대중가요의 판도를 뒤흔든 가수 서태지. 대중가요사에 굵직한 획을 남긴 이들의 음악은 최근 ‘미인’ ‘광화문 연가’ ‘페스트’ 등의 주크박스 뮤지컬로 무대에 올랐다.

내용도 분위기도 전혀 다른 작품들이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김성수(49) 음악감독이 이들의 음악을 뮤지컬로 옮겼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 구로구 디큐브아트센터에서 만난 김 음악감독은 “감히 쳐다보기 어려운 뮤지션의 음악을 뮤지컬로 작업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과분한 경험이었다”며 소회를 밝혔다.

김 음악감독은 요즘 이곳 디큐브아트센터로 출근한다. ‘광화문 연가’(내년 1월 20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가 1년 만에 재공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화문 연가’는 작곡가 이영훈(1960~2008)의 명곡으로 꾸민 주크박스 뮤지컬. 지난해 이지나 연출과 고선웅 작가가 참여한 새로운 버전으로 관객과 만났다.

음악의 힘이 중요한 작품이다. 그만큼 김 음악감독의 어깨도 무겁다. 그는 “주크박스 뮤지컬은 원곡의 느낌을 살리면서 스토리에 잘 끼워 맞추거나 또는 원곡을 해체하는 식으로 작업해야 하는데 ‘광화문 연가’는 이 두 가지를 모두 해야 해서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힘든 만큼 보람도 있다. 이영훈 작곡가의 페르소나였던 가수 이문세는 지난해 공연을 본 뒤 김 음악감독에게 “훔쳐가고 싶은 편곡이었다”는 극찬을 남겼다. 김 음악감독의 아버지가 전한 작품 감상도 감명 깊게 남았다. 김 음악감독은 “아버지께서 공연 속 80년대 대학생들의 시위 장면을 본 뒤 ‘보수로 살아온 내 자신을 잠시 돌아보게 됐다’고 하셨다”며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뮤지컬 ‘광화문 연가’의 김성수 음악감독(사진=CJ ENM).


이번 재공연은 지난해보다 음악적인 부분에서 30% 이상 변화를 가미해 완성도를 높였다. ‘빗속에서’ ‘그대 나를 보면’ ‘난 아직 모르잖아요’ ‘사랑은 한 줄기 햇살처럼’ 등의 넘버를 새롭게 추가했다. 공연 중간 오케스트라 피트가 무대 위로 올라오는 등 음악 외적인 변화도 더해졌다. 김 음악감독이 직접 연주자들을 지휘하는 모습도 무대 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영훈 작곡가의 소품집에 수록됐던 ‘그대와의 대화’를 서곡으로 이용한 것도 의미 있는 변화다. 김 음악감독은 “이 곡은 이영훈 선생님이 생전에 구현하고 싶었던 음악”이라며 “지난 공연에서는 여유가 없어서 작품에 넣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이영훈 선생님이 꼭 하고 싶었던 음악을 관객에게 전하고 싶어 서곡으로 넣었다”고 설명했다.

김 음악감독은 어릴 때부터 록 음악에 빠져 살았다.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고등학교 시절 록밴드 기타리스트 활동을 하면서부터다. 그런 그에게도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는 ‘충격’ 그 자체였다. 시인과 촌장, 들국화와 함께 가요에 관심을 갖게 만든 아티스트였다. 김 음악감독은 “이영훈 작곡가의 음악은 대중적이면서도 깊이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기적 같은 음악이라 생각한다”며 “이영훈 작곡가를 실망시키지 않으면서 동시에 창작진의 기대에도 부합하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록으로 음악을 시작한 김 음악감독이 뮤지컬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2년. 록 뮤지컬 ‘포비든 플래닛’으로 뮤지컬 음악감독에 데뷔했다. 그때만 해도 1회성 작업에 그칠 거라 생각했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무대예술 작업에 뛰어든 것은 2005년 이지나 연출의 연극 ‘클로저’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이후 뮤지컬 ‘록키 호러 쇼’ ‘젊음의 행진’ ‘미녀는 괴로워’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오! 캐롤’과 연극 ‘지구를 지켜라’ 등 다양한 작품의 음악을 맡았다. 김 음악감독은 “지금은 연극·뮤지컬·무용의 구분과 상관없는 무대예술의 음악감독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도 뮤지컬 ‘미인’과 ‘베르나르다 알바’ 등 대극장과 소극장을 넘나들며 바쁘게 작업을 이어왔다. 내년에는 보다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창작뮤지컬 음악 작업에 집중할 예정이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앨범 발표 계획도 갖고 있다. 그는 “작년부터 죽음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 앞으로 나에게 남아 있는 시간을 이유와 의미 있는 작업을 위해 쓰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언젠가 레드 제플린, 퀸, 들국화, 산울림처럼 어릴 때 들은 록 밴드의 음악으로 뮤지컬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생긴다면 가문의 영광일 것”이라며 웃었다.

뮤지컬 ‘광화문 연가’의 한 장면(사진=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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