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올라온 쿠팡이츠 쿠리어(배달원) 체험 후기다. 글쓴이는 음식을 배민 배낭에 담아서 배달했다고 했다. 앞서 배민 배달을 하면서 사둔 배낭이 있어서라고 부연했다. 대신 양심이 있어서 (자체 제작한) 쿠팡이츠 배지를 달고 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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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 배낭에 쿠팡이츠 표식을 단 배달원. 이런 이종교합 배달원은 복장 규정이 없어서 탄생했다. 규정이 없는 이유는 배달앱과 배달원 간 관계를 짚어봐야 알 수 있다. 배달앱 사업자 대부분은 배달원과 도급 계약을 맺는다. 배달앱과 배달원이 배달 주문을 건별로 주고받고, 이행 결과에 따라 비용이 오가는 구조다.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고용 계약과 다르다. 배달원 대부분이 이렇게 일한다. 배달대행업체도 마찬가지다.
쿠팡의 쿠팡친구(옛 쿠팡맨)와 쿠팡쿠리어(음식 배달원)를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쿠팡친구는 쿠팡과 고용계약을 맺고 업무지시를 받는다. 이런 상황이라 쿠팡친구는 타사 배달은 못한다. CJ대한통운이나 한진택배 등 경쟁사에서 택배물량이 넘쳐도 그림의 떡이다.
쿠팡쿠리어는 다르다. 도급계약 신분이라서 여차하면 배민이건 요기요건 가리지 않고 주문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배달원은 배달앱 사업자 지시를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복장 규정이 없는 것이다. 규정은 고용 계약 관계에서 유효하기 때문이다. 배민 관계자는 “배민 배달원이 반드시 배민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고, 단정한 용모를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쿠팡이츠 관계자는 “배달원 용모를 정해둔 규정은 없다”며 “우리는 배달원을 관리·감독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달시장 확장 견인한 도급계약
이렇듯 핵심은 관리·감독 유무다. 도급 계약의 포인트는 배달원이 △자율적으로 주문을 받아 △배달을 마치고 △대가를 받는 것이다. 자율적인 근무 여건은 배달 시장이 노동력을 대거 흡수하는 원동력이 됐다. 정규직 배달원이 근로 여건을 소화하면서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긱 경제(산업 현장에서 필요에 따라 단기 계약으로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의 요체가 배달 산업이라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시장이 소비자 중심으로 커진 흐름이 읽힌다. 주문자 입장에서 음식 배달의 핵심은 ‘음식’이다. 음식의 질이 중요하지, 배달 주체가 누구인지 알 필요가 없다. 소비 패턴도 변했다. 배달은 점포와 고객 간 신뢰로 성사되는 게 예전 시각이라면, 이제는 배달 앱이 끼면서 이런 인식이 옅어졌다. ‘배민에서 주문한 음식이 요기요 포장지에 싸여 도착했다’는 후기는 불편이 아니라 되레 즐거움의 영역이다. 최근 비대면 배달이 활성화한 것도 영향을 줬다. 주문자와 배달원 간에 대면 접촉이 줄어드니 민원도 덜하다.
◇‘음식 배달’이냐, ‘배달 음식’이냐
다만 배달원 입장에서 보면 배달 음식의 우선순위는 ‘배달’이다. 배달의 중심이 음식으로 옮겨가면 노동 여건은 후 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도급 계약 신분으로는 보호받기 어려운 권리가 존재한다. 실제 관리·감독을 받는다면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는 게 배달 여건을 개선하는 길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배달앱 요기요 소속 배달원에게 근로자성을 인정한 것은 이런 점을 고려한 조처다. 앞서 법원은 배달원과 비슷하게 도급 계약 신분의 대리기사와 골프장 캐디에게 근로자 지위를 인정한 판례를 남기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배달 노동자 모임도 근로자성을 인정하라는 요구를 지속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배달원 복장 규정은 못 만드는 게 아니라 안 만드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훗날 근로자 지위를 두고 분쟁이 불거질 때를 대비한 명분 쌓기라는 것이다. 노무사 출신의 박종인 법무법인 강남 변호사는 “도급 계약서에는 복장 규정을 넣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며 “배달원 복장 규율을 적용할수록 근로자성을 인정할 여지가 커지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소극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