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은 민심과 소통하며 만드는 연극

강한섭 기자I 2012.10.30 08:29:21
[이데일리 강한섭 칼럼니스트]박근혜 고정 지지층 37%, 야권 후보 고정 지지층 38%. 전지전능한 신이 줄 세운 것도 아닌데 어떻게 여당과 야당 지지세가 이렇게 용호상박일까? 흥미로운 수치는 또 있다. 박근혜대 안철수의 양자 대결을 가정한 여론 조사를 보면 보통 안 후보가 앞서지만 그 차이는 오차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박근혜대 문재인의 양자대결 수치는 점입가경이다. 지지율의 차이가 소수점을 찍어야 할 정도여서 우열이 수시로 뒤바뀌고 있다.
 
 인터넷을 한참 검색해 보아도 이 사실에 대해 속 시원한 분석 기사나 논평이 없다.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통합민주당은 후보도 못내는 불임정당이라 하지 않았는가? 또 안철수 현상은 본격 검증이 시작되면 시들해질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기껏 나온 분석이 금년 대선은 네거티브가 안 먹히는 ‘이상한 선거’란다. 
 
[소유의 종말]로 디지털 문명의 사상적 구루로 자리 잡은 제러미 리프킨의 최신작 [공감의 문명]을 읽으면서 이상한 선거의 단서를 짐작할 수 있는 개념을 발견했다. 그는 21세기 초반을 3차 산업혁명시대라 부르면서 이 시대를 ‘연극적 의식’(dramaturgical consciousness)가 지배한다고 주장한다. ‘드라마트루기’는 연극론, 연극술, 연출법을 두루 포함하는 개념으로 좁혀 말하면 극작술을 가리킨다. 사전적 정의로 의미를 꽤 뚫을 수 없을 때는 업계의 도사에게 직접 물어야 한다. 그랬더니 대뜸 ‘갈등을 극대화 하는거야 !’라는 답변이 나온다. 그래서 ‘긴장감을 끝까지 끌고 가는거네’ 했더니 ‘그렇지, 관객의 심장을 콩당콩당 뛰게 하는거야, 손은 땀으로 젖고.’

연극적 의식이 지배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거대 개념과 서사여서 망막하게 보이지만 의미는 충격적이다. 그것은 연극이 관계의 본질이 되어 사회를 결정한다는 말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배우가 되어 훌륭한 연기를 펼치면 돈과 권력을 얻고 그렇지 못하면 우울한 삶을 살게 된다는 말이다. 시대의 변화는 경제적 현상으로 먼저 나타나는 법이다. 우리 시대의 상징 기업인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 미디어들은 연극적 의식에서 ‘훔쳐보기’와 ‘노출증’의 심리를 찾아내 이것을 비즈니스 알고리즘으로 풀어낸 것이다.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선거는 정치 이벤트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 작동 방식은 19세 이상 성인 모두가 참가하는 총체극에 가깝다. 무대와 객석을 하나로 연결하기 위해 전통과 현대적인 모든 표현 기법을 동원하는 이 연극에서 세 후보는 동시에 공연되는 세 편 연극의 극작가 겸 연출가이며 자신이 직접 주인공역을 담당하는 배우다. 그런데 연극의 성공 즉 대선의 승리는 관객의 역할을 하는 국민이 결정하기 때문에 연극의 대본은 공연 도중에도 여론조사로 측정되는 민심 (관객의 반응)에 따라 수시로 변경되고 있다.

아, 그러고 보니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들이 현실 사회 속에서 미션을 수행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쇼 양식으로 변모한지 꽤 오래됐다. 그리고 한 케이블 방송의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시즌 참가인원이 무려 200만명을 넘어섰으며 시청자 문자투표도 70만 건이 넘는다. 우리는 이미 벌써 연극적 의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는 배우로 뛰고 있는 것이다. 대선이 끝까지 승자를 알 수 없는, 드라마트루기가 훌륭한 연극으로 변해가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강한섭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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