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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R&D 예산 증액과 생산성

이준기 기자I 2024.07.05 06:01:00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 1990년대 이후 기술드라이브 정책을 본격 추진하고 기술혁신에 의한 질적 성장을 추진하면서 우리는 반도체, 이차전지, 자동차 등 많은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는 성과를 만들어내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은 매년 증가하면서 국민총생산 대비 민간 포함 전체 연구개발투자비는 2014년 4.08%를 기록한 이후 이스라엘과 세계 1, 2위를 다투게 됐다. 2020년 현재 우리의 이 비중은 4.81%로 이스라엘 5.44%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 3.45% 중국 2.40% 일본 3.27% 독일 3.14%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개발 성과는 기대만큼 높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의 SCI 논문 게재 수나 피인용 횟수, 특허의 질적 수준을 보여주는 미국, EU, 일본 등 3국 특허 획득 수가 미흡하고 기술무역적자도 지속한 것이다. 한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22년 136개 핵심기술평가에 따르면 미국을 100%로 할 때 우리는 81.5%로 중국의 82.6%보다 낮았다. 우리의 기술 수준이 중국에 의해 추월당한 것이다. 이에 작년 우리 정부는 연구개발 효율성 제고 대책으로 거칠긴 하기만 대규모 예산삭감 조치를 단행한다. 이에 대해 출연연 등 연구계의 반발은 이어졌고 야당 등 일부 정치권에선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정부는 내년 연구개발 예산을 전년 대비 큰 폭 증액하면서 내년 예산은 삭감 이전인 재작년 수준을 넘게 됐다. 주요 연구개발 예산은 24조8000억원 규모로 편성돼 올해 21조9000억원 대비 약 13% 증액됐고 예산삭감 전인 2023년 대비로도 0.4% 증액됐다.

의문은 남는다. 작년 예산삭감 요인이었던 연구개발 효율성 문제는 해결됐느냐는 것이다. 해결되지는 않았더라도 연구개발 생산성 제고 대책은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국가 총 연구개발 재원은 2020년 현재 민간 부문에서 76.9%, 정부 및 공공부문에서 23.2%, 외국 부문에서 0.2%가 제공되고 있고 연구개발은 기업에서 79.1%, 공공연구기관에서 11.9%, 대학에서 9.0%를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은 기업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연연이나 대학의 연구개발 생산성을 높이는 문제도 중요하나 무엇보다 기업의 연구개발 생산성 제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업의 연구개발 생산성을 높이려면 모순되게도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 보인다. 어느 정도인지 통계로 확인되지 않지만, 기업 과제의 상당수가 정부 과제의 매칭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2020년 현재 국가연구개발사업은 대기업엔 전체 중 1.6%만 투자되고 있고 대부분 출연연, 대학, 중소·중견기업에 투자되는 상황에서 특히 중소·중견기업들의 연구개발 생산성은 정부의 역할로 좌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출연연이나 대학의 과제도 많은 경우 기업과 컨소시엄 형태로 개발되기 때문에 기업의 연구개발 생산성 문제에서 정부의 역할은 중요하다.

정부 과제의 기획, 사업자 선정, 연구개발 관리, 사업화 지원 등 개별과제 차원에서 생산성 저해 요인이 무엇인지 점검함은 물론 연구개발 재원이 연구 주체들의 연구역량이나 생산성을 고려해 배분되고 있는지 등 시스템 차원의 점검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연구자나 연구시설 등 R&D 자원은 대기업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약자 보호차원에서 상대적으로 연구자원이 빈약한 중소기업에 국가 예산을 집중하는 것이 소망스러운 것이냐 하는 점이다.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연구하고 있느냐가 중요할 수 있다.

연구개발예산을 늘려가는 것은 인구가 줄어들고 자원이 빈약한 우리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다만, 개별과제 수행 중 생산성은 확보되는지, 시스템 전체의 개선책은 없는지 등을 점검하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야만 예산증액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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