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토크]①막걸리의 최고봉 '송명섭 막걸리' 빚는 무형문화재 송명섭 대표

박경훈 기자I 2017.08.14 06:05:00

송명섭 막걸리, 아스파탐·구연산 없는 전통 그대로의 막걸리
처음 마시면 '갸우뚱', 이내 그 담백함에 빠져들어
발효 막걸리,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맛 뽐내
"젊은이들 충분히 막걸리 애용해, '위정자'들 와인 선호 못 마땅"

송명섭 대표가 무형문화재가 된 사연도 흥미롭다. 유성엽 국민의당 국회의원이 과거 정읍시장 시절 송명섭 장인의 ‘죽력고’를 마시고 감동받았다. 그는 “이런 술이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시청 공무원들과 합심해 그는 무형문화재에 자리에 올랐다. (사진=박경훈 기자)
[정읍=이데일리 박경훈 기자] ‘송명섭 막걸리.’ 대부분에게는 낯선 이름이겠지만 막걸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막걸리의 ‘최고봉’으로 정평이 나 있다.

처음 이 막걸리를 마시면 ‘이게 무슨 맛인가’ 하고 자문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마셨던 ‘입국’을 기반으로 아스파탐, 구연산 등 화학첨가물이 들어간 달고 신 막걸리에 비하면 ‘무(無) 맛’에 가깝기 때문이다. ‘무(無) 맛’의 비법은 ‘무(無) 첨가물’. 다른 첨가물은 모두 배제한 채 ‘쌀’과 ‘누룩’으로만 막걸리를 빚는다.

송명섭 막걸리는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전통주 만들기 ‘무형문화재’ 소유자가 빚은 막걸리다. 주객(酒客) 사이에서 그 명성은 이미 자자하다. 광화문, 대학로 등 서울의 ‘핫 플레이스’에서도 간간이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막걸리 총리’를 자임한 이낙연 총리의 ‘기자단 총리공관 초청’ 막걸리로 선택돼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 2015년에는 ‘KBS 1박2일’에 소개되며 마니아를 넘어 일반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중이다.

유통기한이 두 달여 지난 막걸리와 소금. 막 나온 막걸리와 비교하면 ‘가볍고 어우러진 맛’이었다. (사진=박경훈 기자)
“오래된 막걸리, 숙성해 부담감 없는 맛 느낄 수 있어”

서울에서 4시간을 달려 만난 막걸리 명인, 송명섭(60) 태인합동주조(태인양조장) 대표의 첫 모습은 남달랐다. 그는 대뜸 “술을 취재하러 온 거지 나를 취재하러 온건 아니지 않소? 그러니 술이나 마시면서 얘기합시다. 부족한 내용은 나중에 메일로 드릴께”라는 말로 손님을 반겼다. 어눌한 말투 속에 들어 있는 강단이 강하게 느껴졌다.

자리에 앉은 후 그는 가져올 막걸리가 있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5분 정도가 지났을까, 그는 유통기한이 두 달여 지난 막걸리를 가져왔다. 송 대표는 “오래된 막걸리는 숙성해 거부감 없는 맛을 느낄 수 있다”며 “세 모금을 마시고 차오르는 숨을 느껴보라”고 권했다.

두 달 숙성한 막걸리 맛은 막 나온 그것보다 ‘가벼우면서 어우러진 맛’이었다. 송 대표는 이를 ‘20년 만에 초등학교 친구를 만났지만 어색하지 않은 기분’이라 칭했다. 그는 “와인은 향부터 맡는 순서지만 막걸리는 마신 후 그 맛을 느끼는 게 다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송명섭 막걸리의 유통기한은 단 10일. 그는 “발효식품인 김치를 처음 먹을 때는 아삭하고 ‘어정뜬 맛’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거부감 없는 신김치로 변한다”며 “술도 마찬가지다. 발효 음식은 처음과 끝이 같으면 안된다”며 유통기한이 짧을 수밖에 없는 ‘상품으로서의 막걸리’의 한계를 안타까워했다.

그는 “총리실에서 직접 주문 전화가 왔었다”며 이낙연 총리가 송명섭 막걸리를 택하게 된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사진=박경훈 기자)
“프리미엄 막걸리지만 생산량 적다고 대형 업체에서 비아냥 대”

그는 ‘언제부터’, ‘얼마나’ 라는 질문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막걸리 생산량이 얼마나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송 대표는 성질을 버럭냈다. 그는 “내 막걸리는 시장에서도 프리미엄으로 평가받는다”며 “하지만 대형 업체들은 ‘고작 저 정도 생산하는 주제에’라고 비아냥대 생산량을 밝히는 게 꺼려진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부터 막걸리를 만들었느냐’라는 질문도 말이 안 된다고 큰소리를 쳤다. 송 대표는 “주류 제조 면허는 일제강점기에서야 나온 개념”이라며 “모양새는 시대별로 다르지만 ‘언제부터 김장 김치를 담갔느냐는 질문은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송명섭 막걸리는 무 첨가물 막걸리의 대명사지만 지금의 명성을 얻기 까지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송 대표 역시 막걸리에 아스파탐 등 첨가물을 넣었다. 한 때 직원은 18명에 달했다. 어느 날 송 대표는 부인이 조미료 없이 김치를 담그는 것을 보고 “그렇게 하면 맛이 없다”고 핀잔을 줬다. 부인은 “몸에 좋은지 확실하지도 않은데 내 식구가 먹는 음식에 그럴 수 없다”고 되받아쳤다.

송 대표는 순간 충격을 받았다. ‘항상 술을 음식이라 생각하고 만들었지만 해로울 수도 있는 화학첨가물을 알면서도 넣었다’라는 자책감 때문이다. 이후 송 대표는 본연 그대로의 막걸리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심심한 맛은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매출은 급감했다.

전북 정읍에 자리잡은 송명섭 대표의 논 일부. (사진=박경훈 기자)
“무첨가물 막걸리…매출액 저하로 덤프트럭 운전기사 하기도”

무 화학첨가물을 천명한 터라 다시 화학첨가물을 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업을 접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양조장을 쉽사리 닫을 수 없었다. 대신 송 대표는 25t 덤프트럭을 구입해 운전기사로 변신했다. 그는 그렇게 8년간 양조장 사장과 트럭기사로 ‘투 잡’을 뛰었다.

송 대표는 지난 시기를 되새기며 “‘돈’이 문제가 아니라 ‘명예’가 문제였다”면서 “몸보다 정신적으로 더 힘들었던 시기”라고 설명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의 진심이 점차 통했다는 것. 특히 젊은 층을 위주로 송명섭 막걸리에 대한 입소문이 돌았다. 운도 따라줬다. 2003년 그는 전통 대나무술인 ‘죽력고’ 제조법으로 무형문화재 자리에 올랐다. 송 대표는 지정 3개월 만에 트럭을 처분하고 전통술 만들기에만 집중한다.

송 대표는 “하지만 아스파탐을 넣던 옛날에 비해 판매량이 줄어든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송명섭 막걸리는 송 대표와 부인, 그리고 직원 1명 모두 셋이서 운영한다. 그가 어려운 시기를 버틸 수 있던 또 다른 이유는 ‘자작농’이라는 데 있다. 송 대표 양조장 근처에는 조상 때부터 짓던 약 6만㎡(1만8000평)에 달하는 논이 펼쳐져 있다. 그는 “쌀 한 가마니(80㎏)를 팔면 17만원 정도 밖에 못 받는다”며 “하지만 막걸리로 제조하면 40만원의 가치가 있다”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밝혔다.

막걸리 장인이 보는 막걸리의 현재는 어떨까. 송 대표는 “젊은 사람들은 현재 충분히 막걸리 애용하고 자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오히려 기성세대 특히 기득권 층에게 불만을 표했다. 송 대표는 “정치권 혹은 재계에서 만찬 때 와인이나 위스키를 만찬주로 사용하는 것이 전통주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못마땅하다”고 소리를 높였다.

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옷은 누가 뭐래도 한복”이라면서 “대통령부터 그 국가에 맞는 의상을 입고 음식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송명섭 대표는

전북 정읍 출생으로 그의 집은 대대로 양조장을 해왔다. 유년시절 서울로 유학을 떠났다. 고등학교 재학 중 편찮은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귀향했다. 이후 40여년간 농사를 지으며 양조장을 운영해왔다. 2003년 대나무술인 ‘죽력고’ 제조로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6-3호로 지정됐다. 2013년부터 한국막걸리협회 이사직을 수행 중이다.

용어설명

누룩 : 누룩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술을 만들 때 이용하는 발효제의 일종이다. 쌀, 밀 등 곡물을 이용한다. 주로 곡물양조주 제작에 쓰인다. 밀과 지푸라기와 섞어서 발효한다. 초산균이 먼저 번식해 잡균이 제거된 후 누룩곰팡이가 번식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효모가 다양한 만큼 맛도 다채롭다. 하지만 균의 통제가 어려워 소규모 막걸리 제조 등에 적합하다.

입국 : 일본에서 술을 빚을 때 일반적으로 쓰는 누룩 형태다. 곡물에 당화효소 생산 곰팡이를 배양한 것을 뜻한다. 전통누룩에 비해 pH를 낮춤으로써 잡균 오염을 방지하고 술을 안정적으로 발효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대규모 막걸리 제조 등에 쓰인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