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열사의 첫째 동생 전태삼(71)씨는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어머니인 고(故) 이소선 여사에 대한 재심 결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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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전씨측은 당시 행위는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한 정당행위로 범죄가 안 된다며 무죄를 주장할 예정이다. 이 여사는 1980년 5월 계엄 당국의 허가 없이 시국 성토 집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징역 1년을 살았다. 작년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무궁화훈장을 받기도 했지만, 가족에게는 응어리로 남은 일이었다.
재심 결정 다음날인 지난 23일 인터뷰에 응한 전씨는 유년시절 형과 함께 뛰어놀던 추억이 있는 남산공원에서 만나자고 했다. 이곳에서 그간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는 전 씨는 “어머니가 생전 재심 소식을 들으셨다면 가장 먼저 태일이형을 부르셨을 것”이라며 “어머니가 ‘태일아 얼마나 힘들었니, 지나보니 네 심정을 알 것 같다’고 말씀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전태일 열사는 22살의 나이에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말라’며 비참한 노동 현실을 알렸다.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달라’는 아들의 유언을 계기로 어머니 이 여사는 민주화 운동에 나서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불렸다. 전씨는 “어머니는 형을 대신해 말 못하는 ‘공돌이’와 ‘공순이’(공장 노동자)를 대표해 청계피복노조를 만들고, 이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셨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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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 소식이 세상에 알려진 당일 전씨는 재심 청구서를 보고 싶어 북부지검 청사를 찾아갔다. 전씨는 “형이 어머니의 재심 소식을 들었다면 뭐라고 생각했을까 고민했는데 고민 끝에 형이 주고 싶은 것은 바로 ‘바보회 명함’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전씨는 ‘전태일(全泰壹)’ 이름이 적힌 바보회 명함을 액자로 만들어 “전태일의 심정을 잊지 말아 달라”며 “어머니의 마음도 똑같을 것 같다”며 검찰에 전달했다. 북부지검은 이 액자를 청사 내 역사관에 보관하기로 했다.
전 씨는 전태일 열사가 1969년 평화시장 재단사들을 중심으로 근로조건 개선을 목표로 설립한 최초의 노동운동 조직을 ‘바보회’로 이름 붙인 사연도 전했다. 전 씨는 “형이 평화시장 노동자들을 만나며 근로기준법에 대해 이야기하자 ‘에이 바보야, 네가 지금 노조 얘기할 때냐며, 홀어머니 모시고 동생들 공부도 시켜야지 왜 바보 같은 일을 해’라고 나무랐다”며 “형에게 모두가 바보라고하니 바보회를 만들어 회장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씨는 북부지검 17층 사무실에서 창밖의 도봉산을 바라보니 감회가 새로웠다고 전했다. 전씨는 “형이 바보회 명함을 도봉산 어느 바위틈에 숨겨뒀었다”며 “어떤 사람이 우연히 찾아 나에게 편지로 보내줬었는데 아마 이런 일(재심)이 후에 있을 줄 알고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도봉산 아래 북부지검 장소도 의미가 남달랐다. 전씨는 “북부지검 자리는 이전에 국군창동병원 부지였고, 그전에는 하천 모래 백사장이었다”며 “그때 여기가 바로 우리 가족이 판자를 깔고 살던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남산 인근 판자촌에 살다가 불이나 강제로 쫓겨났던 전태일 열사 가족이 새로 터를 잡은 곳이 바로 지금의 북부지검 자리였던 것.
가족이 함께했던 곳인 북부지검에서 41년 만에 재심을 결정한 것에 대해 전씨는 “지나간 역사는 거울이다.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후세대에 혼란을 유산으로 남겼을 것”이라며 “성찰과 자각이 시대를 깨우고 있다는 생각에 매우 희망적이고, 고무적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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