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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후 누리꾼들은 ‘도대체 육아 휴직의 취지가 뭐냐’, ‘나도 친정에 아이 맡기고 해외여행 가야겠다’ 등의 댓글을 남기며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판결문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J씨처럼 육아휴직 중 아이를 남겨두고 해외로 떠나는 무모한 결정을 쉽게 하실 수 없을 겁니다.
◇ 3년간 4번의 소송 끝에 이긴 J씨
사연은 이렇습니다. 2011년 4월부터 육아휴직을 신청한 J씨는 그해 6월 아이를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남편과 함께 사업구상을 위해 멕시코로 떠났다가 2012년 2월 귀국합니다. 당초 J씨 부부는 돌이 갓 지난 아기와 함께 떠나려 했지만 아이가 갑자기 급성 비인두염(감기)에 걸려 부부만 출국하게 됩니다.
이후 고용노동부 산하 서울지방고용노동청(고용노동청)은 2013년 J씨에게 아이와 떨어져 있는 기간에 받았던 육아휴직급여 약 800만원을 반환하고 같은 금액을 추가 징수하는 처분을 내립니다. 해외 체류기간 J씨가 육아를 하지 않았으니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고용노동청은 고용보험법 62조 1항 및 74조 1항에 규정된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육아휴직급여를 챙겼을 경우 반환과 추가징수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처분 근거로 삼았습니다. J씨가 육아휴직급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단순히 미충족한 게 아니라 부정수급했다고 본 것입니다.
J씨는 해외 체류기간 친정어머니를 통해서 아이를 양육했고 육아휴직급여 대부분을 아이를 키우는 데 사용했다며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행정소송을 냈습니다. 또 아이와 동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안내를 받지는 못했기 때문에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에 근거해 처분한 것도 잘못됐다고 주장했습니다.
1·2심은 엇갈렸습니다. 1심은 J씨의 손을 들어줬고 2심은 부정수급으로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J씨 승소취지로 판단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서울고법은 지난달 31일 대법원 취지대로 처분을 취소했고, 고용노동청이 재상고를 포기하면서 3년에 걸친 소송은 J씨의 최종승소로 종결됐습니다.
중요한 부분은 왜 대법원이 J씨를 승소취지로 판단했는지 입니다. 대법원이 이같이 판단한 이유는 J씨를 부정수급자라고 본 고용노동청의 처분근거가 잘못됐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처분근거가 잘못됐다면 처분도 취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법원은 고용노동청과 달리 J씨가 육아휴직급여를 타내기 위해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을 사용했다고 보기 어렵고 따라서 부정수급자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또 부정수급자가 될 경우 추가징수 뿐 아니라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용노동청이 더욱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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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법원 역시 J씨가 정상적인 육아를 했다고 판단하진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J씨는 멕시코 출국 후 8개월 동안 자녀와 왕래하지 않았다”며 “적어도 멕시코로 출국해 육아휴직 대상 자녀를 양육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시점부터는 육아휴직급여 수급조건을 충족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수급자격이 있던 자에게 잘못 지급된 육아휴직급여를 환수한다’는 내용의 고용보험법 62조 3항 및 74조 1항을 J씨에게 적용해 휴직급여를 환수할 수 있다고도 봤습니다. 파기환송심 역시 이 같은 부분을 언급했습니다.
그렇다면 법원이 부정수급이 아닌 잘못 지급된 휴직급여로 근거를 바꿔 처분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행정청의 처분에 불복해 제기하는 행정소송인 ‘항고소송’에서는 법원이 이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법원은 ‘행정청의 처분이 잘못됐으니 취소해라’ 또는 ‘정당하다’만 판단할 수 있을 뿐 처분근거나 내용을 달리해 판결할 수는 없습니다. J씨가 승소할 수 있었던 것도 항고소송의 한계 때문인 셈입니다.
고용노동청이 J씨에게 근거를 바꿔 재처분하는 것도 이젠 불가능합니다. 행정 재처분은 처분일로부터 3년 내에만 가능한데 J씨에 대한 처분은 2013년도 있었기에 이미 3년이 넘었습니다. 또 J씨를 상대로 지원금 환수소송(민사소송)을 하는 것도 시효문제(3년)로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J씨는 여러모로 운이 좋았던 셈입니다.
고용노동청 관계자는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는 있겠지만 시효문제 때문에 지원금을 돌려받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추가 법적대응은 없을 것임을 내비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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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청은 육아휴직급여를 받는 기간에는 휴직급여신청자와 아이가 무조건 함께 지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이와 휴직급여신청자가 동거하지 않으면 실질적 육아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셈입니다. 고용노동청 관계자는 “동거하지 않고 육아를 했다고 인정한 사례는 없다”고 말합니다.
결국 육아휴직급여자가 아이와 장기간 떨어져 지내는 경우 J씨처럼 환수처분을 받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고용노동청이 J씨의 사례와 달리 처분근거를 ‘부정수급’이 아닌 ‘잘못 지급된 육아휴직급여’로 삼았다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소송을 해도 이길 확률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아쉬운 부분은 육아휴직 기간 중에도 분명 아이와 떨어질 일이 있을 텐데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남녀고용평등법 14조 1항에 ‘육아휴직 중인 근로자는 아이와 동거하지 않게 된 경우 7일 이내 사업주에게 알려야 한다’는 내용만 있을 뿐 구체적 기준은 없습니다. 또 J씨의 사례로 볼 때 정부가 육아휴직급여 신청자에게 아이와 반드시 동거해야 한다는 내용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