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승기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잡았다. 지난 9일 열린 임시주총에서 최 회장 측이 추천한 백인규 후보가 감사위원으로 선임되면서 고려아연 이사회는 최 회장 측 12명, 영풍·MBK 측 7명으로 재편됐다. 올해 초 11대 4였던 이사회 구도는 3월 정기주총을 거쳐 9대 5로, 이번 임시주총을 거치며 다시 12대7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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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양측의 우호 지분율이 각각 40% 안팎으로 큰 차이가 없는 만큼 이사 8명은 각각 4명씩 선임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임기 만료로 새로 선임하는 감사위원 1석은 기존과 같이 최 회장 측이 유리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같은 상황을 가정하면 새로 선임되는 이사 9명은 최 회장 측 5명, MBK·영풍 측 4명으로 구성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이사회 구도는 현 12대 7에서 11대 8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최 회장 측이 우위를 갖는 구도는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남은 기간 양측의 진행 중인 소송전 결과, 주요 주주의 표심과 주총 참여 여부, 양측 이사 후보의 숫자 등에 따라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 테네시주에서 추진 중인 프로젝트 크루서블로 분쟁이 확산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포인트다. 미국 정부가 지정한 핵심광물 11종을 비롯해 총 13개 품목을 생산하는 이 프로젝트는 현재 시장을 독과점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미 첨단산업에 쓰이는 핵심광물을 생산하는 공급망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해외 공장 건설 사업과 성격도 다르다. 미국 정부가 핵심광물 공급망을 자국 내에 확보하려는 전략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미국 연방정부의 대형 인프라·자원 인허가 패스트트랙인 ‘FAST-41’ 적용 사업으로 지정됐고, 이달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관문을 넘었다. 미국 전쟁부가 지난 11일 최종 환경영향평가를 완료하고 ‘중대한 환경영향 없음’(FONSI)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크루서블 사업 자체는 오히려 속도를 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최종 환경영향평가 결과는 미국 전쟁부의 금융지원 여부와 테네시강유역개발공사(TVA)의 전력 인프라 지원 여부 등을 판단하는 데 활용될 예정이다. 고려아연으로서는 대규모 제련소 건설에 필요한 후속 인허가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을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벌어지는 경영권 분쟁이 미국 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완전히 배제하기도 어렵다. 실제 양측은 이미 크루서블을 둘러싸고 충돌한 전력이 있다. 고려아연은 지난 8월 영풍·MBK 측 관계자들을 프로젝트 명칭과 표지를 무단 사용했다며 부정경쟁방지법 위반과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영풍·MBK 측은 최대주주의 정당한 주주활동을 탄압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앞서 MBK·영풍은 크루서블 투자를 위한 제3자 유상증자를 막아달라는 가처분도 냈지만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제로 미 테네시주에서 리셉션을 연 자리에서는 영풍·MBK 측 주요 관계자들이 본인들이 고려아연의 ‘최대주주 그룹’으로 소개하며 크루서블에 대한 지원과 협력 의사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지 관계자들에게 영풍 석포제련소의 환경관리·운영관리 시스템과 인력을 크루서블에 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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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현재로서는 크루서블 사업의 중단이나 차질을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오히려 최근 미국 정부의 환경영향평가 통과와 FAST-41 지정 등을 감안하면 미국 정부 차원의 사업 지원 의지는 상당히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고려아연도 2027년 착공, 2029년 완공이라는 기존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경영권 분쟁이 곧바로 미국 사업의 중단으로 이어진다기보다는, 장기적인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서 지배구조 변화가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가 관건이다.
경영권 분쟁의 시계는 내년 3월에만 맞춰져 있지 않다. 오는 10월에는 MBK파트너스가 영풍 측으로부터 고려아연 지분을 추가로 사들일 수 있는 콜옵션(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능 시점이 도래한다. MBK는 영풍 측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 약 257만주, 지분 약 12%를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행사 가격과 계약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만약 MBK가 콜옵션을 행사한다면 현재 경영권 분쟁의 판을 바꾸는 변수가 될 수 있다. 이를 진행하면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 일부가 MBK로 넘어가면서 영풍의 직접 지분과 배당수익은 줄어든다. 반면 MBK의 직접 지분은 늘어나 경영권 분쟁에서 MBK의 존재감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기존 ‘최윤범 측 대 영풍·MBK’의 구도에서 최 회장 측과 MBK 간 장기적인 경영권 대결 구도가 더욱 선명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다만 현재 고려아연으로부터 안정적으로 배당 수익을 받아가면서 공동 전선을 형성하고 영풍·MBK 연합이 기존 판을 바꾸는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영풍·MBK 측에서 미 통합제련소 사업을 놓고 대규모 해외 투자의 타당성과 자금 부담, 경영 효율성 등을 놓고 계속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며 “내년 주총에서 전개될 이사회 구도에 따라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어떤 향방으로 흐를지 결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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