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희끗하지만 풍채 좋은 김씨는 버스 운전 경력 30년, 택시 운전 5년 경력의 베테랑 기사다. 그는 심야버스 시범운행이 시작된 4월 19일 처음 심야버스의 운전대를 잡은 뒤 6개월째 밤마다 서울시내를 달리고 있다. 60세에 정년 퇴직한 뒤 잠시 다른 일에도 손을 댔지만 운전이 천직이라는 생각에 올해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김씨는 “평생을 운전만 했다”며 “정년을 훌쩍 넘은 이 나이에도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강서버스차고지. N26번 버스기사인 정평철(49)씨(다모아자동차 소속)는 정차된 버스가 이상이 없는지부터 확인하고 있다. 정씨는 지난해 10월 버스 운행 중 사고를 내 해고당했다가, 심야버스 기사로 다시 채용됐다. 정씨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운행 전에 버스 상태까지 직접 점검했다고 한다.
|
◇승객들 “고생 많다”며 커피 등 건네
올빼미버스 기사는 피로도가 심하지만 하루 5~6시간(오후 11시 출근·익일 오전 4~5시 퇴근) 근무하기 때문에 8~9시간 일하는 주간 기사에 비해 급여가 낮다. 보통 3일 일하고 하루를 쉰다. 서울시는 올빼미버스 기사 처우 개선을 위해 시급을 주간에 비해 1.5배로 높이고 일일 근로시간에 1시간을 추가 인정해주기로 했다. 덕분에 월 175만원 쯤 되던 임금이 평균 214만원으로 올랐다. 서울시에 따르면 9개 노선에는 모두 60명의 기사가 근무한다. N10·N30·N40 등 3개의 단거리 노선에 4명씩, 나머지 6개 장거리 노선에는 8명씩이다.
김씨는 “승객 10명 중 6명은 대리기사, 3명은 젊은 친구들이고, 한명 정도는 청소부나 시장 상인들”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청소부나 대리기사 같이 처지 어려운 분들이 ‘고생 많다’며 껌과 사탕, 커피 같은 것을 자주 건네준다”며 환하게 웃었다.
올빼미버스 운행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한 번은 휴대폰 통화 소리가 너무 크다고 승객들끼리 시비가 붙어 주먹다짐까지 갈 뻔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서로 술에 취해 있던 탓이다. 중랑차고지에서 만난 N26번 버스기사 최경식(61)씨는 “취객은 시비도 잘 붙고 취한 채 잠들어 종점까지 가는 경우도 많다”며 고개를 저었다. N26번은 번화가인 종로·신촌·홍대 등을 지나는 버스여서 승객 중 취객 비중이 높은 편이다.
|
또한 승객들이 환불을 요구해도 방법이 없다. 버스회사가 이 문제 때문에 올빼미버스 정비에 신경을 쓴 덕분에 아직까지 사고 없이 운행해 왔지만 9개 노선으로 확대돼 운행되는 버스가 늘어난 만큼 이제는 대비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자정이 넘어가자 보슬비는 천둥을 동반한 장대비로 바뀌었다. 김씨는 “심야에는 무단 횡단하는 사람이 많은데 비가 오면 시야까지 가려 이들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씨 또한 정거장 정지에 유독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요금 왜 올렸나” 실랑이도
이날 운행 중에 요금 문제로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곤 했다. 시범운행이 끝나고 정식운행이 시작되면서 요금이 1050원(카드)에서 1850원(카드)·1950원(현금)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현금을 내던 승객들 일부는 요금을 더 내야 한다는 안내에 “왜 갑자기 요금을 올리냐”고 기사에게 따지곤 했다.
반면 대다수 승객들은 별 불만 없이 묵묵히 요금을 냈다. 서울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김모(27)씨는 “택시 타야 할 시간에 버스를 탈 수 있으니 이 요금으로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버스가 신촌과 홍대 인근을 지나자 학생과 외국인들이 한데 뒤엉켜 올라탔다. 버스 안이 금세 왁자지껄해졌다. 발 디딜 틈 없이 승객들이 가득 찬 사이로 술 냄새까지 진동하니, 한편에서는 짜증 섞인 목소리도 들렸다.
김씨가 운행한 버스는 1시 47분쯤 강서차고지에, 정 기사의 버스는 1시 50분쯤 중랑차고지에 각각 도착했다. 각 노선이 1시간 40분 가량 걸리는 코스인데 비 때문에 다소 늦어진 것이다. 늦은 만큼 휴식시간도 줄었다. 운행시간을 맞추려면 1시 55분에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와 정씨가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차창 밖으론 여전히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기점을 돌아 출발지로 돌아가는 시간인 새벽 2~3시에 버스를 탄 승객들은 대부분 대리기사였다. 이들은 어디서 ‘콜’이 들어오지 않는 지 단말기만을 유심히 바라볼 뿐, 버스 안은 조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