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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화` 감독 장이머우 "내가 타락했다고?"

조선일보 기자I 2007.01.19 12:31:00

장이머우 “상업영화 이제 겨우 3편 했을뿐”
주윤발·공리 주연 ‘황후화’ 총천연 스펙터클의 향연…
“중국영화 지키려면 이 방법뿐”

[조선일보 제공] 더 크게, 더 화려하게, 더 비장하게. 당나라 황실의 치정극을 무협이라는 특유의 장르에 담아낸 장이머우(張藝謀·56) 감독의 ‘황후화(皇后花·25일 개봉)’는, 최근 수년간 색채와 스펙터클에 집착해 온 장이머우식 블록버스터의 극단이다. 궁금했다. ‘영웅’(2002)과 ‘연인’(2004)으로 이어져 온 이 집착에 가까운 고집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 것일까. 18일 방한한 그는 “상업영화는 상업영화로 봐 달라”는 대답을 여러 번 반복했다.

장 감독은 상업영화가 지배하고 있는 중국 영화 시장의 현황을 털어놨다. “관객의 80~90%는 젊은이들이고, 이들은 극장에서 예술영화를 보지 않는다”는 것. 그는 “이러다가는 영화산업 자체가 몰락하고 말 것 같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면서 “이럴 바엔 무협과 고전을 이용, 서구에도 먹힐 수 있는 중국만의 상업영화를 만들자는 결심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거의 허풍으로 느껴질 만큼의 화려한 이미지와 스펙터클의 향연은 그 필수조건이었다는 것. ‘황후화’에서 그 이미지는 황금갑옷을 입은 10만 대군, 수만 평을 뒤덮는 황금색 국화, 10만 병사가 덩어리가 되어 싸우는 전투장면으로 대표된다. 주윤발(황제)과 공리(황후), 그리고 주걸륜(둘째 왕자) 등 초호화 캐스팅이 그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사실 ‘홍등’(1991)이나 ‘집으로 가는 길’(1999)의 작가주의 감독으로 장이머우를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최근의 ‘흥행 감독 장이머우’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에게 ‘두 명의 장이머우’ 이야기를 꺼내자 “우선 그 표현에 감사한다”며 껄껄 웃었다. “그 말은 내가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예전 장이머우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 아니냐”면서.

화제를 바꾸려는 감독에게 ‘타락한 천재’라는 비판도 있다고 한 걸음 더 들어갔더니 “상업영화는 이제 겨우 세 편 했다”는 반박이 돌아왔다. 그는 다시 껄껄 웃으면서 “우리 함께 세 보자. 내가 예술영화를 얼마나 했는지. 아마 10편은 넘을 것”이라며 “예술영화가 내 인생의 중심이란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는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를 함께 찍게 될 것”이라고 덧붙이면서.

이번 영화에 대한 또 하나의 궁금증은 감독과 배우 공리와의 인연이다. 연기학교 학생이었던 스무 살 공리를 배우로 발탁한 사람도 장이머우였고, 함께 찍은 영화도 부지기수인 데다, 심지어 여러 해 동안 함께 살았던 사람. 헤어진 후에도 친구로 지냈다지만, 영화로 만난 것은 무려 10년 만이다. 그는 “10년 동안 그녀가 무척 늙었더라”고 농담을 던지더니 “할리우드에서 다른 장르를 경험(최근 ‘게이샤의 추억’ ‘마이애미 바이스’ 등을 찍었다)하면서 연기로나 배우로나 무척 성숙했다”고 분위기를 바꾸었다. 공리에게 아쉬운 건 없었느냐는 질문에는 “모든 일엔 아쉬움이 있기 마련이지만, 또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둘러갔다.

‘붉은 수수밭’(1987)으로 연출 데뷔한 지 올해로 20년째. 그 기간 동안 영화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중국 격언에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영화는 늘 배울 게 많은 예술이다.” 너무 ‘모범답안’ 같다고 살짝 비틀자, 어젯밤 새벽 4시까지 봤다는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골든글로브 작품상을 받은 작품(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바벨’)을 DVD로 봤는데 정말 대단했다”는 것. 자신보다 열 살 넘게 어린 40대 초반 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것 봐라. 이렇게 능력 있는 젊은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계속 배우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또 한 번 예의 그 너털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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