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국과 러시아의 힘겨루기로 국제 유가가 다시 불안해질 가능성이 커지자 주요 산유국으로 이뤄진 OPEC+도 추가 감산을 하지 않고 현재 산유량을 유지하기로 했다.
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EU 의장국인 체코는 2일(현지시간) EU 27개 회원국 모두가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 협정을 공식 승인하는 서면 절차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합의된 상한액은 60달러다. 가격 상한을 시장가격보다 5% 아래로 유지하기 위해 조정체계를 적용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60달러는 현재 러시아 우랄산 원유 가격인 배럴당 70달러(약 9만1000원) 선보다 10달러(약 1만3000원) 정도 낮은 수준이다. 미국을 비롯한 G7, 호주도 이번에 결정된 상한액에 맞춰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할 예정이다.
EU가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를 도입하면서 물가 상승을 막으면서도 유가 상승으로 러시아가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데 제동을 걸 수 있게 됐다. 가격상한제가 실시되면 G7과 EU, 호주는 상한액을 넘는 가격에 수출되는 러시아 원유에 대한 보험과 운송 등 해상 서비스를 금지할 수 있다.
러시아는 서방의 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즉각 반발하며 석유 공급 중단 가능성을 내비쳤다.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부총리는 5일 타스 통신 등에 “가격 상한제는 자유 무역의 원칙을 어기는 간섭 행위로, 공급 부족을 촉발해 세계 에너지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생산량을 줄이더라도 우리와 협력할 국가에만 석유와 석유 관련 제품을 판매할 것”이라며 “상한액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와 관계없이 가격 상한제라는 수단을 아예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시장 메커니즘도 연구 중”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서방국의 가격상한제 움직임이 일자 우회로를 만들고 있다. 국제사회의 주류 정유사·보험업계와 거래하지 않고 국제 제재 대상국인 이란, 베네수엘라 등과 거래하는 이른바 ‘그림자 선단’을 꾸리고 있다. 그림자 선단은 애초부터 서방과 거래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재에 아랑곳하지 않고 러시아산 원유를 마음껏 운송할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가 이미 약 100척 규모의 그림자 선단을 꾸렸다고 보도했다.
그림자 선단은 쇄빙 기능도 갖춰 겨울철에 러시아 발트해 항구를 누빌 수 있다. 특별한 표식도 없고 선박명은 페인트로 덮어버리거나 깃발을 바꾸는 방식으로 서방국의 규제를 피해 다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서방국가들의 원유가 상한제로 그림자 선단이 러시아 전쟁 수행 능력에 결정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며 “그림자 선단의 수송 능력에 따라 국제 원유가격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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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가 변동성이 다시 커질 수 있자 주요 산유국으로 이뤄진 OPEC+은 4일 열리는 정례회의에서 현재 산유량을 유지하기로 했다.
OPEC+는 4일(현지시간) 정례 장관급 회의 후 낸 성명에서 지난 회의에서 합의한 감산 정책을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OPEC+는 성명에서 “향후 원유 시장을 관찰하면서 수급 균형과 가격 안정을 위해 필요한 경우 즉각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주 초만 해도 추가 감축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주말로 접어들면서 현재 산유량을 유지(동결)로 결정했다. OPEC+은 10월 회의에서 OPEC+는 하루 원유 생산량 목표치를 직전 달보다 200만 배럴(세계 원유 수요의 약 2%) 줄여 4185만 배럴로 낮췄다.
다음 OPEC+ 정례 장관급 회의는 내년 6월 4일로 예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