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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관계자의 말이다. 고양이가 출판계를 뒤흔들고 있다. 도도한 모습으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고양이의 매력에 빠진 이들이 늘어나면서 고양이 관련 서적도 덩달아 인기를 얻고 있다. 명동 등 젊은층이 몰리는 곳에 고양이 카페가 자리를 잡고, SNS에 길고양이를 가져다 키운다는 글이나 사진도 늘고 있다. 생애 대부분을 잠으로 잔다는 오해 등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출판가로 이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고양이 전성시대’다.
△고양이 관련 책 판매량 전년 比 160% ↑
4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현재 온·오프라인에서 판매 중인 고양이 관련 서적은 84종이다. 소설 또는 고양이 키우는 방법을 알려주는 전문서적에 국한됐던 과거와 달리 사진집부터 인문서까지 장르 또한 다양하다. 올해 1월부터 7월 말까지 판매량은 총 4만 5000여권. 전년 동기 대비 160% 증가했다.
고양이 관련 책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서점도 등장했다. 지난해 6월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문을 연 ‘슈뢰딩거’는 ‘고양이 책방’으로 더 유명하다. 슈뢰딩거에 비치한 책은 약 200여권. 모두 고양이가 주인공이다. 독자가 가장 많이 찾는 책은 사진집이다. 일반 서점에서 구하기 힘든 고양이 사진·에세이집 등을 구할 수 있어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
김민지 슈뢰딩거 사장은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보다 고양이와 책을 좋아해 시작한 일이었다”며 “제주도에서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 하루 평균 30권 정도가 나간다. 책방을 찾았다가 빈손으로 나가는 손님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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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다룬 책 상당수는 일본에서 왔다. 고양이 관련 문화가 뿌리 깊은 일본에서 출간한 다양한 책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작가는 네코마키다. 그의 필명에도 고양이를 뜻하는 네코(ねこ)가 들어간다. 네코마키의 책은 여러 종이 국내에도 번역출간돼 있다. ‘고양이와 할아버지’(대원씨아이·2017), ‘동물원의 고양이’(미우·2016), ‘콩고양이’(비채·2014) 등이다.
그 중 국내 독자에게 가장 인기를 얻은 책은 ‘고양이와 할아버지’다. 10살 고양이 타마와 75세 할아버지 타이키치의 일상을 그렸다. 사람 나이로 치면 70살쯤 되는 고양이 타마. 할아버지는 타마에게 인간적인 따뜻한 감정을 느낀다. 수채화로 그린듯한 서정적인 그림체까지 독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오오타 야스스케의 ‘후쿠시마의 고양이’(책공장더불어·2016)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남겨진 고양이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이다.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을 돌보는 마츠무라 씨에게 어느날 안락사 운명이었던 시로와 사비가 찾아온다. 셋은 서로 의지하며 후쿠시마에 남은 동물들을 돌본다.
한국 작가들의 고양이 관련 서적도 인기몰이 중이다. 진중권의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천년의 상상·2017)는 고양이에 관한 역사와 문학, 철학을 담은 인문서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주제를 진중권이 키우는 고양이 ‘루비’가 구술하듯 풀어냈다. 현순혜의 ‘트라이브존의 고양이’(드림랜드·2017)는 작가가 여행지에서 만난 다섯 마리의 고양이와 대화를 통해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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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대중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은 현대인의 감성을 위로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손을 내밀면 깍쟁이같이 고개를 돌려 버리다가 어느샌가 곁에 다가가 몸을 기대는 고양이에게서 사람들은 매력을 느낀다. 독일 시장조사기관 GfK(2017년 1월 발표)에 따르면 개를 기르는 비율은 여성이 23%로 남성(17%)보다 6%포인트 높았고, 고양이를 기르는 비율은 여성이 8%로 남성(4%)의 두 배였다.
교보문고의 경우 고양이 관련 서적을 구매하는 이들은 대부분 30~40대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구매자 가운데 30대 여성(25.38%)이 가장 많았으며 이어 40대 여성(21.44%)이 뒤를 이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고양이를 기르는 1인 가구 여성이 늘어나면서 고양이 관련 서적에 대한 관심도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타인의 사랑을 바라나 굳이 그것을 구걸하지는 않고, 속으로는 따뜻하고 겉으로는 늘 까칠하며 이기적으로 보이나 실은 그 누구보다 이타적인 존재”라고 자신의 책에 등장한 고양이를 표현했다.
백원근 출판평론가는 “사람은 반려동물에게 자아를 투영한다. 사람관계에 지친 현대인은 늘 도도하고 주인의 손길을 갈망하지 않으며, 동등한 관계 속에서도 따뜻한 온기를 가진 고양이를 닮고 싶어한다”며 “이런 동경심이 고양이 관련 책을 찾게 만드는 이유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