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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시장이 이목을 집중하는 게 몇 가지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언제쯤 돈줄을 조이기 시작할 것인가다. 이에 따라 증시는 고점 부담을 못 이기고 추락할 것인가. 더 나아가 인플레이션은 금융위기 상황까지 가져올 것인가.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 정도로 재정을 지출한 건 처음입니다. 지금이 역사상 가장 많아요.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내년 여름이면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할 수 있어요.”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히는 조지 매그너스 옥스퍼드대 교수는 이데일리와 화상 인터뷰에서 최근 인플레이션 우려를 이렇게 정리했다. 연준이 공개석상에서 인상 시기로 언급한 오는 2024년보다 훨씬 이를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그는 UBS, 뱅크오브아메리카(BoA), SG워버그 등에서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하며 수십 년간 시장을 분석해온 전문가다. 특히 그는 UBS에서 수석경제고문으로 일했을 당시인 2006~2007년 연속 보고서를 통해 ‘민스키 모먼트(Minsky Moment·부채 확대에 기댄 경기 호황 후 채무자의 상환 능력이 나빠져 건전한 자산까지 팔면서 금융시스템이 붕괴하는 시점)’를 경고했고 이듬해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부채비율 최고치
-요즘 인플레이션이 화두다.
△(물가 상승률이 15% 안팎까지 올랐던) 1980년대 초 같은 초인플레이션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다. 하지만 최근 10년, 15년과 비교하면 앞으로 물가는 확 뛸 것이다. 4월 기준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4.2%(전년 동월 대비)로 나왔다. 내년이면 5~6%대까지 오를 것으로 본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보지 않는다. 1970~1980년대 같은 높은 인플레이션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지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의 물가 상승은 이어질 것이다.
-팬데믹 이후 돈이 많이 풀렸다.
△굉장히 특이한 상황이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때 이렇게 정부 부채가 높았던 적이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이 전망한 올해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방정부 부채 비율이 102%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재정 지출이 급증한 1945년(104%)과 1946년(106%) 이후 가장 높다.
-미국 통화량 증가 속도가 빠른데.
△그렇다. 요즘 미국의 광의통화(M2) 증가율이 25%(전년 대비) 안팎이다. (지난해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매달 M2 증가율은 21.95%→22.91%→23.27%→23.04%→23.78%→23.71%→24.29%→24.77%→25.75%→27.00%→24.24%로 역사상 최고 수준이다. 팬데믹 이전에는 3~5% 정도였다.) 달러화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풀리고 있다.
◇내년 중순께 연준 금리 인상 대비할 때
-연준의 긴축 시기가 초미의 관심사다.
△제롬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잠시 정책 목표(2.00%)를 넘어도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보지 않는다. 연준의 기대와 달리 지속적으로 물가가 오르면 움직일 수밖에 없다. 올해는 연준이 금리를 올리지 않겠지만, 내년 여름이면 인상해야 할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내년에만 최대 두 차례 올릴 수 있다. (실제 연준은 이날 FOMC 의사록을 통해 테이퍼링 가능성을 처음 시사했다.)
-뉴욕 증시가 요즘 약세다.
△미국 증시는 다소 비싼 편이다. 다만 그렇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경제가 팬데믹 이후 회복하기 시작했고, 재정 지출이 천문학적으로 많다. 달러화 공급 속도도 빠르다. 게다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처리하려는 수조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법안은 의회를 통과하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올해는 증시가 강세 우위의 장을 이어갈 것이다. 애플 등 빅테크주 역시 마찬가지다.
-꾸준한 우상향을 점치는 건가.
△그렇지 않다. 6~18개월 후까지 정점을 찍은 후에는 고점 부담으로 매도세가 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맞물려) 팬데믹 이후 큰 폭 오른 기술주 섹터에서 돈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시장의 취약성은 도드라질 수 있다. 지금은 증시 강세장을 막는 걸림돌이 뚜렷하지는 않은데, 앞으로는 점차 변동성이 커지는 장세로 진입할 것이다. 지금 나에게 주식에 투자하라고 한다면, 조심할 것 같다.
-금융위기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10여년 전 금융위기 이후 다양한 조치들이 있었다. 대형은행들이 자기자본을 자산의 일정 부분 이상을 유지하도록 의무화한 규제 등이다. 금융권의 시스템 리스크를 막으려는 방편이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인플레이션이 온다고 해서 10여년 전 같은 초대형 위기까지 올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당국이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통제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주가, 집값 등이 매우 높아진 상태이고, 앞으로 더 오를 수 있다. 매도세가 일어난다면 국지적인 ‘미니 쇼크’는 계속 이어질 수 있다.
◇미국과 한국, 모두 고령화 파고 넘어야
-팬데믹 이후 미국의 재정이 취약해졌다는 우려가 크다.
△돈을 많이 풀었다. 이로 말미암아 기축통화인 달러화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미국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연준이 사주고 있고, 중국과 일본 같은 주요국들이 매수하고 있다. 다만 문제는 2025~2027년 이 시기 이후 또 다른 재정 지출 수요가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인구 고령화다. 의료, 사회보장 등에 대한 지출이 급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면 시장은 정부가 재정 확대를 통제할 수 있다는 일종의 확신을 주기를 원할 것이다. 쉽지 않은 문제다.
-달러화 위상이 흔들릴 수 있는 건가.
△미국이 고령화 파고를 제대로 넘지 못한다면 달러화 가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매그너스 교수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고령화 시대의 경제학’의 저자다.)
-최근 옥스퍼드대에서 아시아 경제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걸로 안다. 한국 경제에서 무엇을 보고 있나.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노인들이 어떻게 일을 하게 할지를 경제정책에 적절하게 반영해야 한다. 이를 통해 서비스업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매그너스 교수는
△영국 런던대 경제학 학사 △런던대 SOAS 경제학 석사 △미국 일리노이대 경제학 박사 △로이드은행 이코노미스트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이코노미스트 △SG워버그 수석이코노미스트 △UBS 수석이코노미스트 △UBS 연기금 투자위원회 의장 △UBS 수석경제고문 △옥스퍼드대 중국학센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