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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유태환 기자] 여야가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1일 일제히 서울시내 주요 역사에서 시민들에게 귀성인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용산역으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서울역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등 장소는 제각각이었습니다.
두 당의 귀성인사 지역이 갈린 이유는 용산역과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들이 향하는 방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용산역은 호남선, 서울역은 경부선 열차가 출발하는 장소입니다.
호남을 텃밭으로 하는 민주당과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당은 이처럼 자신들의 지역적 기반을 고려해 귀성인사 지역을 택해왔습니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꼭 이런 공식이 100% 들어맞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민주당은 동진(東進) 전략의 일환으로 영남 귀성객을 겨냥한 연휴 인사도 전략적으로 시행하는 모습입니다. 20대 국회가 출범한 뒤로는 용산역과 서울역을 번갈아 가면서 찾는 게 점점 정착하는 분위기입니다.
20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민주당 당권을 쥔 추미애 전(前) 대표는 임기 중 추석 귀성인사와 설 귀성인사를 각각 용산역과 서울역에서 두 차례씩 나눠서 진행했습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 역시 취임 뒤 첫 귀성인사를 했던 지난 추석에는 서울역을 찾았지만 이번 설 귀성인사는 용산역에서 했습니다.
또 하나 눈여겨볼 부분은 짧은 시간이지만 의외로 각 당이 처한 분위기가 귀성인사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점입니다. 사실 귀성인사는 시민들과의 소통을 위한 측면이라는 면 외에 소위 ‘그림’을 만들기 위한 성격도 강합니다.
각 언론사에서 명절 전 주요 정당 지도부가 고향을 향해 떠나는 열차에 손을 흔드는 모습을 담기를 원하는 만큼 그에 맞춰주는 성격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몇 차례 귀성인사를 취재해 본 기자의 시선으로는 이런 행사에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는 귀성객들이 더 많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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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 직후인 2017년 9월 말경의 일입니다. 민주당 지도부가 귀성인사를 위해 용산역을 찾았는데 유례없이 시민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시민들은 추미애 전 대표에게 셀카를 요청하고 “대표님 존경합니다”·“민주당 파이팅”을 외치면서 적극적으로 응원을 보냈습니다. 반면 비슷한 시각 용산역을 찾은 일부 한국당 의원들은 “적폐세력들이 반성할 줄도 모른다. 10년 동안 나라를 얼마나 말아 먹었느냐. 여기는 용산역이다. 호남 시민을 뭐로 아는 것이냐”는 시민들의 꾸지람을 들어야 했습니다.
당시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이뤄진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고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각각 70%와 50% 내외를 기록하며 고공 행진을 벌이고 있을 때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이번 설 귀성길에서는 민주당 소속 김경수 경남지사가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 공모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법정구속되면서 한국당이 호재를 만난 분위기입니다. 실제로 나경원 원내대표는 설 귀성인사 뒤 기자들에게 “오늘 분위기가 괜찮았다. 한국당에 대한 마음이 작년과는 달라졌다”며 “이제 야당에 대한 기대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