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부도의 날' 임박에도…느긋한 미국의 ‘하우스 오브 카드'

김성훈 기자I 2023.05.13 11:10:00

[위클리M&A]
거세지는 미국 정부 디폴트 우려
이러다 나라 망한다 우려 목소리↑
백악관과 공화당 대치 국면 여전
디폴트 가능성0…정치 셈법 한창
국가 부도로 어떤 협상 할까 관건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미국 정부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백악관(민주당)과 공화당 합의로 미국 정부의 부채 한도를 늘리지 않으면 6월 중 미 정부가 국가부도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어서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이 국가 부도 사태에 빠진다는 것은 앞선 경제위기와는 견줄 수 없는 후폭풍을 몰고 올 수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뿐 아니라 자본시장 안팎에서 걱정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협상 당사자인 백악관과 공화당은 느긋한 모습이다. 디폴트를 하나의 협상 카드로 하나라도 유리한 조건을 선점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엿보인다. 최악의 상황을 카드로 하나라도 득이 될만한 것을 얻어내려는 미국 정가의 신묘한 면모를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정부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백악관(민주당)과 공화당 합의로 미국 정부의 부채 한도를 늘리지 않으면 6월 중 미 정부가 국가부도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어서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미국 연방 의회에서 상하원 의원들을 대상으로 새해 국정연설인 연두교서를 하기 전에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AFP)
◇ “이러다 다음달에 나라 망합니다”

미국 정부의 디폴트 우려가 본격적으로 고개를 든 것은 이달부터다. 옐런 재무장관이 지난 1일 공화당 소속인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을 비롯한 의회 지도부에 서한을 보내면서 시작됐다. 6월쯤 미 정부의 부채 한도가 바닥을 드러내 정부 지급을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릴 것이라는 게 골자다. 미국 정부의 디폴트 사태 데드라인을 6월로 못 박은 시점도 이때다.

현재 미국 정부의 부채 상한은 31조4000억달러(약 4경2107조원)에 육박한 상태다. 미국은 지난 1월 정부 총부채가 한도에 육박하자 경제적 타격을 방지하기 위한 각종 조치를 취해 왔다. 그러나 넉 달이 지난 현재까지도 뾰족한 타협안은 도출하지 못했다.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한 하원은 지난달 26일 연방정부 부채 한도 상향과 정부 지출 삭감을 연계한 법안을 찬성 217, 반대 215로 가결했다. 그런데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상원에서 해당 법안은 통과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일찌감치 해당 법안의 거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핵심은 공화당이 부채 한도 상향을 대가로 정부 지출을 줄이라고 했다는 점에 있다. 백악관 입장에서는 트럼프 정부 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부채 한도를 늘려줬는데 바이든 정부 들어 조건을 거는 점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공교롭게도 미 상원은 민주당이, 하원을 공화당이 하나씩 나눠 점령하고 있는 점도 의사소통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양측 입장이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부채 한도 증액을 주제로 담판에 나섰지만 원하는 결과는 만들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자 자칫 미국 정부가 6월 국가 부도 사태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줄리 코잭 IMF 대변인은 11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만약 미국이 디폴트에 빠진다면 차입비용 증가 가능성을 포함해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라며 “모든 당사자가 시급히 이 사안을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급기야 미 연방정부의 디폴트 가능성에 대비해 ‘전시 상황실’(war room)을 가동하고 있다는 발언까지 했다. 다이먼 CEO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디폴트가 현실화할 경우 “미국에 재앙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경고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디폴트를 아예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가정하고 정치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주도권 싸움으로만 보기도 한다. 미 정가의 치열한 권력 다툼을 그린 넷플릭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가 머릿속을 스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진=AFP)
◇ “국가 부도는 없다…유리한 카드가 문제지”

당장 보름 후면 미국이 부도날 위기에 몰렸지만, 미 정계의 행보를 보면 ‘느긋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미국에 있는 시중은행이 뱅크런 사태로 휘청일 때 기민하게 대응하던 미 당국과 자본시장을 떠올리면 이렇게 여유가 넘쳐도 될까 싶은 생각도 든다.

사실 여기에 어느 정도 답이 있다는 말도 나온다. 바람 잡기가 거셀지언정, 디폴트 사태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당초 미국 자본시장에서는 연방 정부의 부채 한도 상향 실패에 따른 디폴트 시기를 7월 중순 내지는 8월쯤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옐런 장관이 6월을 데드라인으로 당겨 잡으며 우려 분위기를 몰고 갔다는 주장도 있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지난 2011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에도 부채 한도 상한을 놓고 여야 대치가 이어졌다. 급기야 글로벌 신용평가사 S&P가 미국 국가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내려 잡으면서 분위기가 일촉즉발의 사태로 흘러갔다. 그러다 부채 한도 상한 기한 이틀 전에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급한 불을 끈 전례가 있다.

이번 사안을 건조하게 바라보는 쪽에서는 2011년 상황이 데자뷔처럼 스칠 수밖에 없다. 아예 ‘일어나지 않을 일’로 가정하고 정치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주도권 싸움으로만 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미 정가의 치열한 권력 다툼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가 떠오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각에서는 결국 양측이 부채 한도 상향을 전제로 어떤 협상 카드를 꺼낼 것이냐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가 입장에서 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우려는 많은 협상을 나눌 이벤트일 수도 있다”며 “실제로 디폴트가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결국 백악관과 공화당간 기싸움이 어디까지 가느냐가 관건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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