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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국내총생산(GDP)과 가계부채 등 주요 경제통계 산출의 주도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는 기관간 견제를 통해 통계의 정확성을 높이는 면이 없다. 다만 사실상 ‘밥그릇 싸움’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은, 최근 ‘GDP 한계론’ 보완 전담조직 신설
25일 한은과 통계청 등에 따르면 한은의 국민계정부 국민소득총괄팀 내에 총 3명 규모의 국민계정연구반이 최근 신설됐다. 이 조직은 지난 5월 이주열 한은 총재가 ‘GDP 한계론’을 지적한 이후 출범했다. 이 총재는 당시 “GDP가 근래 품질 차별화가 가능한 서비스업 비중 증가, 디지털 경제 확대 등으로 그 신뢰성이 점차 하락하고 있다”고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도 디지털 경제의 급부상을 GDP에 어떻게 담을지 고민하고 있다. 다음달에도 관련 전문가 회의가 열린다. 한은 한 관계자는 “전세계 각국에서도 공유경제 등의 검토는 시작 단계”라면서 “(기존 GDP 통계가)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는지 살펴볼 것”이라고 했다.
‘경제지표의 왕’인 GDP를 추계(推計)하는 곳은 한은이다. 1957년 이후 60년째다. 일각에서는 이 총재가 GDP 한계론을 지적하고 전담조직까지 만드는 등 새 조류를 주도하는 건 통계청 견제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유경준 통계청장은 줄곧 GDP 추계의 통계청 이관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통계청이 작성하는 지역내총생산(GRDP)과 한은의 GDP간 괴리가 크다”면서 “통계작성 창구의 일원화 필요성이 크다”고 했다. 유 청장은 다음달 5일 국정감사에서도 이와 관련한 답변을 비중있게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계청 한 관계자는 “OECD 국가들 중 중앙은행이 GDP를 추계하는 곳은 우리나라 외에 벨기에와 칠레밖에 없다”고 했다.
이에 한은 측은 반대 입장이 분명하다. 또다른 한은 관계자는 “GDP 통계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고도의 노하우가 필요하다”면서 “한은이 장기간 문제없이 해왔고 바꿀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한은과 통계청은 2011년 9월 협력 양해각서(MOU) 체결 이후 정기적으로 통계협력협의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정규일 한은 경제통계국장과 김광섭 통계청 경제통계국장은 올해 국감 이후 다음달 중으로 서울에서 협의회를 열 계획을 갖고 있다.
통계청은 이번 논의에서 GDP 통계 추계 문제를 의제에 올릴 의지를 갖고 있다. 통계협력협의회에서 이를 본격 다룬다면 이번이 처음이다. 또다른 통계청 관계자는 “(한은과 통계청간) 협력과 갈등이 공존하고 있다”고 했다.
◇한은과 통계청, 가계부채 통계로 이미 신경전
두 기관의 신경전은 GDP 산출 뿐만 아니다. 우리 경제 최대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의 경우 상황이 반대다. 통계청이 주도권을 쥔 설문조사식(式) 가계금융복지조사가 기본인데, 한은은 이를 보완하고자 지난해 내부적으로 가계부채DB를 구축했다.
하지만 통계청은 한은의 가계부채DB를 정식 국가통계로 승인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가계부채DB는 외부에 공표되지 못 한 채 내부 보고서용으로만 쓰이고 있다. 최근 가계부채DB반은 한은 금융통계부 산하 금융통계팀에 흡수됐다. 기존 가계부채DB반 직원들은 여전히 같은 일을 하긴 한다. 하지만 그 동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 관계자들은 “(중복 문제 때문에) 기존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더 정확하게 하는 것으로 정리됐다”고 하지만, 금융권 일각에서는 영역 다툼의 영향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 한 인사는 “해외 사례를 보면 각 기관들의 상호 견제는 순기능이 없지 않다”면서도 “가뜩이나 저성장이 고착화된 와중에 요즘 상황은 자존심 싸움 분위기가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