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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마치 마법상자를 열었을 때의 찬란하고 환상적인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 컴퓨터 그래픽을 통한 눈속임이 아닌 실제 물리적인 빛으로 그런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작품의 제목은 ‘리플렉션 매핑: 물, 빛, 바람, 불, 구름’이다. 액자 안에는 캔버스가 아닌 55인치 대형 디스플레이를 내장했다. 디스플레이는 아직 상용화하지 않는 최첨단 제품이다. 디스플레이 위에 금박을 입힌 사각형 큐브 수백개를 규칙적으로 배열했다. 물과 빛, 바람, 불, 구름 등을 상징하는 영상이 5개의 액자에 담긴 디스플레이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된다. 전광판 네온사인처럼 보이지만 1분 정도만 들여다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어디서도 볼 수 없던 빛의 현란한 명멸이 자연스럽고 유기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라벨의 음악 ‘물의 요정’이 더해져 마치 빛의 리드미컬한 춤 동작을 한곳에 모아둔 듯싶다. 최첨단제품과 콜래보레이션한 설치·영상 융·복합작품이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진화랑에서 오는 11월 14일까지 여는 채은미(48) 작가의 ‘리플렉션 매핑’(Reflection: Mapping) 전은 현대미술과 첨단전자제품이 만나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리다.
채 작가는 내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한 LG디스플레이의 ‘월페이퍼’를 협찬받아 작품을 만들었다. 1㎜ 미만의 두께에 종이처럼 구부러지는 ‘월페이퍼’는 탁월한 색채 재생력으로 꿈의 화면이라 불리며 디스플레이 산업의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제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채 작가는 “가장 화려한 빛을 구현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강구하다가 ‘월페이퍼’가 개발됐다는 소식을 듣고 LG디스플레이 측에 협찬을 요청했다”며 “회사 측 엔지니어들과 함께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월페이퍼’를 시각예술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육성하기 위한 LG디스플레이의 기대와 지금까지 내보인 적이 없는 ‘작품’을 만들려는 채 작가의 의지가 맞물려 전시가 성사된 것이다.
채 작가는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회화를 넘어선 컨템포러리 아트에 관심이 많았다. 이전에는 금과 자개 등 전통적인 소재에 빛을 반사하거나 굴절하는 독창적인 기법을 사용한 설치와 조형작품을 많이 제작했다. 제작단가가 높아 대부분이 고가임에도 최근 두바이 아트페어에 출품한 작품 9점이 모두 팔릴 정도로 입지를 굳혔다. 이번 전시에서도 ‘큐브 티비 테이블’ 외에 설치·영상 6점, 자개에 색을 입힌 항아리 작품 40점 등 총 52점을 전시한다.
채 작가는 “대중과 호흡하기 위해 예술가는 다양한 장르와 협업해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을 만들도록 기업에 동기를 부여하는 것도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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