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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춘길은 2011년 ‘현대문학’ 신인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10년 만에 첫 소설집을 출간했다. ‘형사 K의 미필적 고의’에는 그동안 여러 지면에 발표한 단편 일곱 작품이 수록돼 있다.
이춘길의 소설들은 지루할 틈이 없다. 인간 이면에 숨어 있는 악의와 가면의 안팎을 넘나드는 모순들을 집요하게 파헤치되, 질척거리지 않는다. 작품 소재들은 길바닥에서 주워 온 듯한데 살펴보면 흔하지 않다.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동시대의 시공간에서 저마다의 재료로 사는 군상들의 이야기이되, 소설가 이춘길은 억지스럽게 전개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작가의 시선이 평범하지 않은 데다 서사 전개가 상투적이지 않은 것은 이춘길만이 지닌 필력이라 가능한 것이다.
책에 실린 작품들은 처음 읽었을 때와 두세 번 읽었을 때의 맛이 확연히 다르다. 한 번 읽었을 때 살짝 핏기가 도는 맛이라면 거푸 읽을수록 오감을 자극하며 계속 먹고 싶게 만든다. 소설집은 수사가 화려하지도 구구절절 친절하지도 명확한 결말도 없다. 그러나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구성은 뻔한 이야기를 뒤집어 그로테스크한 상상을 촉발한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이 소설집에서 단연 으뜸이다. 마치 투견장에 서 있듯 생생하게 표현되어 하드보일드 매력을 듬뿍 뽐내는 작품이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거나 버려지는 사회의 축소판인 투견장의 비극은 섬뜩하면서 기괴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날카롭게 자란 송곳니”로 사냥감을 찾고 있는 ‘나’는 누구인지,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미필적 고의에서 중요한 건 ‘고의’의 유무이다. 고의가 있었느냐 없었느냐에 따라 사건의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그러므로 ‘고의’성을 가려내기란 대단히 까다로운 일이며 이는 얽히고설킨 관계성을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방현석 소설가는 “그의 서사는 단선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단층적이지도 않다. 나의 삶이 수많은 ‘미필적 고의’에 휘돌리 것 이상으로 나의 ‘미필적 고의’가 타인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기도 한다는 진실을 그는 외면하지 않는다”고 헌사하고 있다. 이 점은 표제작인 ‘형사 K의 미필적 고의’를 비롯해 각 작품마다 다양한 군상들의 관계를 통해 드러난다.
윤재민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간결한 호흡의 문장에서 이따금 터져 나오는 변수들이 결코 이어지지 않을 법한 상황을 끝끝내 하나의 플롯으로 직조해 내고야 만다.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보다 갸웃한 순간이 압도적인 이 소설적 경험이야말로 이춘길 소설 제일의 미덕이자 에센스”라고 강조했다.
책에 실린 일곱 작품의 발표 연도를 보면 10년 만에 출간한 첫 소설집치곤 과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발표 횟수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형사 K의 미필적 고의’는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있으며, 이춘길만의 독특한 개성이 충분히 녹아 있는 데다 묵직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