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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 소재 모 아파트 단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었던 A씨는 2021년 4월 1일 후임 회장으로 선출된 B씨에게 입주자대표회의의 은행거래용 인감도장과 사업자등록증 원본을 인도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를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로 보고 기소했다.
당시 A씨는 전임 회장의 임기가 끝난 후에도 인감도장 인도를 거부했다. 사업자등록증 원본도 선거 직후 관리소장으로부터 교부받아 보관하면서 반환 요구를 거절했다. 피고인 A씨 측은 “후임 회장의 법적 지위에 다툼이 있었고 혹시 모를 법적 책임을 우려해 임시 보관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1심은 피고인 A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관리규약상 전임 회장인 A씨가 후임 회장 B씨에게 업무 수행에 반드시 필요한 인감 등을 인도할 의무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피고인 A씨가 평소 관리사무소에 보관되던 사업자등록증을 선거 직후 임의로 교부받아 보관하다가 반환을 거부한 행위는 적극적 방해 행위와 다름없다고 판단했다.
A씨는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은 이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인감 등이 후임 회장의 정상적 업무 수행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1심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피고인에게 후임 회장의 업무를 방해할 의사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우선 부작위 업무방해죄의 성립요건을 명확히 했다. 단순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부작위나 소극적 행위가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하려면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만한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밝혔다. 적극적 방해 행위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범행의 동기와 목적, 행위의 양태, 업무의 종류와 내용, 피해자의 지위, 피해자가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나 방법의 유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서는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은 회장 지위에 다툼이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자신이 보관하던 인감 등의 인도를 거절한 것에 불과하다”며 “인감 등을 이용해 회장 행세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업무를 방해한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고 봤다.
이어 “사업자등록증 원본은 관리소장의 승낙을 받아 교부받았을 뿐”이라며 “관리소장이나 피해자를 상대로 물리력이나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또한 피해자 B씨는 2021년 4월 1일 임기를 시작해 4월 8일 입주자대표회의 구성·변경 신고가 수리된 후 회장으로서 입주자대표회의를 개최하고 각종 의결사항을 심의·의결했다. 그리고 B씨는 인감 등 반환을 요구한 때로부터 약 10일 만에 대표자를 변경한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았다. 은행에 대표자 변경 신고도 마쳐 4월 23일경 정상적으로 예금 청구와 세금 납부를 했다. 대법원은 B씨가 인감 없이도 회장 임기 개시 이후 입주자대표회의를 대표하고 운영에 필요한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업무를 시작하고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데 인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고인의 행위로 피해자가 회장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 그런데도 원심은 주위적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며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부작위나 소극적 행위에 의한 업무방해죄 성립요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법원은 단순히 물건이나 서류를 인도하지 않은 행위만으로는 업무방해죄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