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길도 막혔는데 항만 보관비까지…기업 해상운임비 '이중고'

노희준 기자I 2024.07.05 05:35:02

[산업계 덮친 물류대란]②TF가동·벌크선 대체 등 대책 마련 분주…“뾰족한 해법 없어”
제지·페인트업계도 물류비 여파로 원자재 수입비용↑
부산항만 수출 컨테이너 터미널 반입제한일 완화 필요
철강·화학대기업 TF 가동..."중견기업 외려 사각지대"

[이데일리 노희준 하지나 김경은 기자] 최근 급등한 해상운임은 기업의 수익성 악화를 초래하게 된다. 산업계에서는 코로나19 당시 같은 물류대란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특히 물류비용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가격이 상승하면 제품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안정세에 접어들고 있는 소비자물가를 다시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주요 한 보일러회사 관계자는 “SCFI(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기준 지난해 미서부 운임 평균 비용은 1600달러 수준”이라며 “올해 1분기 평균 비용은 약 2.5배로 증가했다”고 전했다.

◇홍해사태로 해상운임비 증가…국내요인도 있어

최근 해상운임 급등 배경으로는 우선 지정학적 리스크가 꼽힌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진입하는 지름길 역할을 하는 이집트 수에즈 운하 통행 차질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란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이 이곳을 지나는 선박을 공격하자 컨테이너선이 해군 호위함을 기다리거나 운하를 피해 아프리카 대륙을 우회하고 있다.

여기에 북미와 남미 대륙 사이의 파나마 운하는 일대에 기록적인 가뭄이 찾아와 통과가 가능한 선박 수가 줄어든 데다 중국 컨테이너선 수요가 급증한 여파도 운임비 상승에 한 몫 하고 있다.

국내 요인도 기업의 물류비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 무역협회에 접수된 수출입물류 애로신고를 살펴보면 부산항 터미널은 수출 컨테이너 반입 허용일을 현재 선적 예정일 기준 3~4일 이전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극심하게 선박 이용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선박 입항이 늦어지거나 다음 항차(다음 선적건)로 연기되는 경우가 다반사인 기업들의 불필요한 물류비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소 자동차부품회사의 한 관계자는 “항만 인근 외부 자치장 보관에 따른 보관료와 상하차비, 터미널 운송료 등으로 컨테이너당 기본 하루에 15만원이 발생한다”며 “선적이 연기되면 하루에 2만~3만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반입허용일을 선적 예정기준 최소 7일 이상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원자재 수입가도 높여…“뾰족한 대책 없어”

해상운임비 상승 등 물류비 급증은 수출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요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기업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중견기업 중에서는 제지업계, 가구업계, 페인트업계 등이 표적이 되고 있다.

한솔제지(213500), 무림페이퍼(009200), 무림SP(001810) 등 국내 주요 제지회사들은 펄프를 상당 부분 수입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미국 남부산 활엽수 펄프(SBHK)의 6월 평균 가격은 t당 895달러로 전월 대비 4.1% 올랐다. 3개월 연속 상승세를 기록하면서 역대 최대치인 2022년 8월(1030달러)의 86.9%까지 차올랐다. 홍해 사태에 따른 해상운임 급등이 크게 작용했다.

수출입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태스크포스를 가동하거나 대체선박 확보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외부 변수가 크게 작용하는 만큼 뾰족한 해법 마련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LG화학(051910)롯데케미칼(011170) 등 석유화학업계는 이미 TF 가동에 나섰다. 한 대기업 계열 철강회사 관계자는 “컨테이너선 운임 상승에 따른 물류비용 증가로 부담이 높아지고 있고 선박 수배도 어려운 상태”이라며 “가능한 지역은 벌크선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조정할 수 없는 외부 변수로 인해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석유화학 회사 관계자는 “탄력적으로 운임에 영향이 덜 가도록 하는 게 핵심”이라며 “위험이 발생한 홍해 등의 노선계약을 단계적으로 줄이면서 비용절감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중견·중소기업 어려움 더해…“정부대책 필요”

중견·중소기업은 자체 노력만으로는 물류비 급증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 저렴한 선박 확보 등 정부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북미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한 농기계 회사 관계자는 “과거 코로나 사태의 해상 운임 급등 때는 정부 대책이 중소기업에 한정된 경우가 많았다”면서 “대기업은 대형 해운사를 고객사로 갖고 있고 협상력이 좋아 자체적으로 해결하는데 중견기업만 사각지대에 방치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회사는 물류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물류대행사(포워더)에 대한 영업을 강화하고 연초 운임비로 장기 계약된 취소 선박을 확보하려 백방으로 뛰고 있다.

특단의 정부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비용 절감에 노력하던 기업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판가 인상 카드를 집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하헌구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출 중소기업에 대한 세제·금융비용 지원을 생각해볼 수 있다”며 “수출 중소기업은 해외시장 경쟁이나 대기업에 납품하는 특성을 고려할 때 증가한 물류비용을 전가하기 쉽진 않지만 중견기업의 경우 국내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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