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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 기자 출신 정진영(42) 작가가 최근 펴낸 장편소설 ‘정치인’(안나푸르나)의 큰 줄거리다. 비례대표 후(後)순위였던 한 시민단체 대표 ‘정치인’이 엉겁결에 임기 1년 남은 국회의원이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전작인 ‘침묵주의보’(문학수첩·2018)와 ‘젠가’(은행나무·2020)가 각각 언론사, 기업 조직을 주무대로 삼았다면 이번 배경은 국회다. 이른바 정 작가 ‘조직 3부작’의 완결편인 셈이다.
왜 정치인일까. 26일 전화로 만난 정 작가는 “‘정치인은 법을 만드는 사람인데 왜 그 이야기를 아무도 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소설”이라며 “어떻게 법이 만들어지는지 입법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사회부 법조 출입 기자 시절, 만나는 주변 사람마다 똑같은 걸 물어왔단다. “법은 왜 가진 자들에게만 유리하냐”는 탄식이었다는 것. 그는 “모두가 법을 욕하는데 그 법을 만든 건 국회의원이고, 그 의원을 뽑은 건 정작 ‘우리’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며 “진영에 갇혀 ‘묻지마 투표’로 의원을 뽑으면 결국 나의 손해로 돌아온다는 현실을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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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작가인 만큼, 꼼꼼한 취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을 법사위원회에서 바꿔버리는 모습이라든가, 의원들이 기업 청탁을 받아 맞춤형 법안을 만드는 내용들은 현실감을 살렸다. 법학 전공인 그는 “수많은 보좌관, 전직 국회의원, 정치부 기자를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록을 샅샅이 뒤졌다”고 했다.
뚜렷한 기승전결 구조와 인물들을 작위적이지 않게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점도 그의 소설 강점이다. 작품은 일찌감치 드라마화를 확정했다. 작가의 2018년 작 ‘침묵주의보’ 역시 황정민 주연의 JTBC 드라마 ‘허쉬’로 선보였고, 이어 내놓은 ‘젠가’도 스튜디오 드래곤에서 판권을 확보해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정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방송가에서 잘 팔리는 이유에 대해 “한국문학을 가장 열심히 찾아 읽는 이들은 평론가도, 작가도 아니다. 지식재산권(IP)을 찾아 헤매는 방송국 피디(PD)들”이라면서 “개인의 내면을 서정적 문체로 써내는 주류 한국문학이 영상화하기 부적합하다면,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 작품은 캐릭터가 확실하고, 영상이 잘 떠올려진다더라. 웹소설, 웹툰이 자주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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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을 꼬박 받는 기자직을 관둔 것과 관련해선, “후회한 적은 없다”고 했다. “2020년 출근을 하다가 교통사고가 크게 났어요. 그만둘 고민을 했던 시기였는데, 바로 사표를 냈죠. 와이프를 설득했고, 마침 ‘허쉬’가 제작됐어요. 지금은 쓰는 것마다 과분하게 관심 받고 있어 기쁩니다. 잘되든 안되든 결과물은 오롯이 내 것이잖아요. 보람이죠.”
올해 출간 예정인 작품들도 쏟아진다. 5편의 각 단편을 문예지(악스트)와 앤솔러지(일정한 주제에 따른 여러 작가의 작품을 모은 작품집)를 통해 발표하고, 연말 정 작가의 첫 소설집이 나온다. 오는 8월말이나 9월초께는 ‘월급사실주의’ 동인지를 선보인다. 정 작가는 보통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다루는 소설이 필요하다고 믿는 작가들의 모임인 ‘월급사실주의 동인’이다. ‘한국 소설이 우리 시대의 노동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공통 인식이다.
“작가를 대단한 예술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자율성을 가진 하나의 직업인 거죠. 제 글쓰기는 저널리즘 역할을 하는 겁니다. ‘원전비리’ 같은 걸 기사로 다루는 데 한계가 있잖아요. 현실에 발붙인 이야기를 써내려갈 겁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