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두리 정병묵 기자] 자신의 전화번호를 삭제하고 연락을 피했단 이유로 16살 연하의 전 남자친구를 살해한 ‘전주원룸 살인사건’, 10년 동안 알고 지내던 단골식당 주인을 스토킹하다 살해한 ‘창원 식당 여주인 살인사건’. 김태현 사건 외에도 최근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살인사건의 배경에는 삐뚤어진 감정에서 시작해 상대에게 끊임없이 집착하는 ‘스토킹’이 자리잡고 있다.
딱히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었던 스토킹 범죄에 철퇴가 가해진다. 지난 4월 제정된 스토킹처벌법이 오는 21일 본격 시행을 앞둔 것. 법안이 최초 발의된 지 22년 만에 ‘경범죄’에 불과했던 스토킹을 별도의 법으로 처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 보호조치 및 피해자가 원치 않을 시 처벌 불가 등 법안의 세부적인 내용은 손 볼 곳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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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이 규정한 스토킹의 정의는 이렇다.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기. 주거나 직장, 학교 등 일상생활을 하는 장소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 보기. 우편이나 전화, 온라인 등을 통해 물건이나 글, 영상 등을 전달하기 등이다. 이를 반복하는 스토킹 가해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스토킹 범죄 신고건수는 2018년 2772건, 2019년 5468건, 2020년 4515건으로 집계됐다. 올 상반기에는 신고건수가 3482건까지 치솟았다. 반면 지난해 신고건수 대비 처벌 비율은 10.8%에 그친다. 하루 평균 10건이 넘는 스토킹 범죄 신고가 쏟아지지만 처벌이 되는 경우는 1건 정도에 그친다는 얘기다. 그나마 스토킹으로 인정된다 하더라도 경범죄상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분류돼 10만원 이하 벌금에 그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새 법은 상당히 강력한 처벌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전문가들은 법 시행에 의의를 두면서도 여전히 처벌 규정이 미비하다고 본다. 특히 피해자 보호조치(응급조치·긴급응급조치·잠정조치)의 경우 가정폭력처벌법상 응급조치와 달리 현행범 체포 부분이 없어, 보다 적극적인 가해자 제재조치를 위한 추가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긴급응급조치·잠정조치의 청구권자를 검사로 규정한 점은 피해자 보호 신속성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다는 지적이다. 당초 정부 안(경찰청·법무부 등 관계부처 합의안)에서는 긴급응급조치를 경찰이 직접 법원에 신청하도록 규정했다.
◇전문가들, 현행범 체포 등 법 개정 ‘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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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이 강화됐다더라도 실제 피해자들이 신고나 소송을 하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도 문제다. 최근 20대 여성 B씨는 한 남성으로부터 3개월 내내 스토킹을 당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지만, 직접적으로 물리적 피해를 가하지 않아 형사 고소를 할 수 없고, 민사상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도 제기할 수 없다는 변호사 소견을 들었다.
30대 여성에게 1년이 넘도록 스토킹을 당했다는 30대 남성 C씨도 “지속적으로 스토킹을 당해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기물 파손이나 상해 등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의만 주고 돌아가고 만다”면서 “남성이 피해자이고, 여성이 피의자인 경우 경찰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김다슬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정책팀장은 “스토킹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법·제도 개선과 사회 인식 변화를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반의사불벌조항은 폐지하고 인적 신뢰 관계에 있던 자에 의한 스토킹 가중처벌 및 직계존속 고소 가능 특례를 신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용상 불이익처분 금지, 피해자 정보 및 비밀 누설 금지, 피해자와 신고인에 대한 보호, 변호사 선임 특례, 피해자보호명령 등 촘촘한 피해자 보호 및 지원 절차가 추가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찰은 법 시행에 맞춰 ‘스토킹범죄 현장대응 매뉴얼’을 마련해 현장 경찰관의 △신고 접수 △초동대응, 수사 △사후관리 단계별 대응방안 마련 등 균질화된 치안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스토킹 신고에 대한 이력 관리를 통해 지속·반복적 행위에 대한 입증자료로 활용하는 등 스토킹범죄 피해자 전담조사관 교육도 진행할 계획이다.
이다슬 법률사무소 모건 대표 변호사는 “스토킹은 피해자의 의지가 있어도 소송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스토킹 자체는 폭행, 상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사건화 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제2의 김태현을 방지하기 위해 다각도의 개선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