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의 한 헬스장에 다니던 30대 남성 이모씨는 최근 퍼스널 트레이닝(PT)과 헬스를 합친 25회분(회당 5만원) 중 남은 기간치를 환불받았다. 웨이트 트레이닝보다 러닝머신을 위주로 이용해 온 이씨는 빠른 걸음 수준인 6km 속도제한 이후 러닝머신을 이용할 필요를 못 느꼈다. 헬스장쪽과 실랑이하던 그는 결국 수수료 없이 남은 7회분을 전액 돌려받았다.
코로나19 이후 헬스장 등 실내체육시설의 일부 프로그램이나 기구 이용이 제한되자 고민 끝에 일부 혹은 전체 환불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4단계가 장기화하는 만큼 이용하지도 않는 서비스에 돈을 낼 수는 없다는 것. 가뜩이나 고객수가 줄어든 실내체육업계에서는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주먹구구식 방역지침 때문에 기존 고객들에게 그나마 들어온 수익을 돌려줄 수밖에 없다며 하소연한다.
|
코로나19 4차 대유행의 확산세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정부는 지난 7월 12일부터 수도권 지역에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라는 초강수를 뒀다. 이에 따라 피트니스 센터에서는 러닝머신의 속도를 시속 6km 이하로 유지하고, 줌바·에어로빅 등 그룹 운동(GX) 종류의 격렬한 실내 운동을 할 때는 120bpm 이하의 느린 음악을 틀도록 했다. ‘PT+GX+헬스’ 등이 한꺼번에 묶인 프로그램을 결제한 ‘패키지’ 고객들은 서서히 환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5개월째 서초구의 한 피트니스 센터에 다니는 김모(25·여)씨는 PT와 헬스를 합쳐서 한 회당 5만원씩 총 40회를 결제했다. 그러나 4단계 후 사실상 헬스 중 러닝머신을 자유롭게 이용하기 불가한 상태다. 김씨는 “PT와 헬스를 한 번에 연장할 수는 있는데, 둘 중 하나만 연장하는 건 불가해서 어쩔 수 없이 헬스는 포기하고 PT만 받았다”며 “요즘 모두가 사정 어려운 건 뻔히 알지만 이용하지도 않는 서비스에 돈을 내는 건 아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관악구 신림동에서 3개월째 PT와 헬스를 하고 있다는 오모(22·여)씨는 “사실 코로나19 이전엔 지불 금액에 샤워실 이용요금도 대부분 포함돼 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한 환불도 이뤄져야 한다”며 “요즘은 운동 끝나자마자 집부터 가서 씻고 나와야 하니 너무 불편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업체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지침 때문에 고객을 잃을까 안절부절 못하며 진땀을 빼고 있다. 1년 6개월째 헬스 트레이너로 일하는 김모(29·남)씨는 “120 bpm이나 러닝머신 속도 제한 등 말도 안 되는 지침 때문에 고객님들이 등록 자체를 꺼린다”며 “아무래도 시설 제한이 많다 보니 기존 고객님들도 환불을 고민하는 게 이해가 된다”고 착잡한 심정을 내비쳤다.
김씨는 “코로나19 이전에는 중도 환불을 할 때 등록 시기별로 수수료를 10% 이상 받았는데 ‘코로나19 환불’은 수수료가 0원이라 업계가 부담을 떠 안을 수밖에 없다”며 “가끔 수업에 오래 출석을 안 하다가 갑자기 ‘코로나19’ 핑계를 대고 환불을 요구하는 고객들이 있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
‘코로나19 환불’ 딜레마는 업주와 소비자 간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일부 업체들은가 자주 바뀌는 방역지침을 일일이 준수하는 게 번거로워 GX 등 프로그램을 아예 잠정 중단한 이후 업체와 소비자 중간에 낀 강사들이 일자리를 잃는 문제까지 발생하고 있다.
최윤정 한국GX피트니스협회장은 “GX 음악 bpm이 제한되니까 근력 운동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바꿔도 회원수가 급격하게 줄었다”며 “그렇게 되면 강사들은 3시간 수업하다가 저녁반이 사라지고,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 스스로 관두는 경우까지 생긴다”고 호소했다.
오성영 전국헬스클럽관장협회장은 “고객이 코로나19를 이유로 환불을 요구하면 어쩔 수 없이 무조건 해준다”며 “정부가 GX 음악 속도를 120bpm 이하로 제한한 이후 환불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패키지 프로그램 같은 현장 상황과 운동효과 등을 고려하지 않고 진행한 탁상행정 때문에 업주와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 회장은 “얼마 전에는 헬스장에 경찰이 찾아왔을 정도로 고객과 환불 관련해 큰 갈등이 있었다”며 “이런 (딜레마) 상황이 이어지는데도 정부는 해결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체육시설 업계도 8일 전국동시차량시위에 동참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