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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저 앞에서 크기 자랑은 함부로 할 게 못 된다. 철근콘크리트로 지어 올린 공장들이 감히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굴뚝을 빼들고 무섭게 들어서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듯한 몇몇 간판이 그 뒤로 늘어선 육중한 구조물의 외용을 대신 말해준다.
여기는 ‘고래마을’로 불리던 울산 장생포의 어느 산업단지. 한눈에 그 의도가 전달되고도 남을 작품은 작가 장우진의 ‘고래가 있던 마을-E’(2020). 작가는 장생포의 이질적인 풍경을 디지털 콜라주로 작업한 연작을 발표해왔다.
작품 각각이 제 의도를 넉넉히 내뿜고 있으나, 실제 풍경과는 차이가 있다. 둔탁하고 거대한 공단의 구조물 사이로 ‘숨은 그림 찾기’처럼 고래형상을 박아넣는 것도, 자칫 서정적인 감상까지 스미게 한 어스름한 하늘빛을 어울린 것도. 그렇다고 무작정 허구라고 밀어붙일 수만은 없다. 실제 장생포는 고래가 많이 잡히는 지역이었고, 고래가 사라지며 빈 생태계에는 산업화란 또 다른 고래가 밀려들었던 터.
결국 이 모두는 작가의 감상이고 해석이고 표현인 셈이다. 씁쓸하지만 배척할 순 없는, 단단하지만 여려빠진 우리 삶의 단면이라고 할까.
3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7길 갤러리도스서 여는 개인전 ‘철, 소음, 구름’에서 볼 수 있다. 디지털 콜라주. 180×120㎝. 작가 소장. 갤러리도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