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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추억이 모락모락’ 온기 가득한 안흥찐빵

강경록 기자I 2017.10.13 06:00:01

강원도 횡성 안흥찐빵마을
서울~강릉 오가던 여행객 배고픔 달래
심순녀 찐빵집 알려지며 찐빵마을 탄생
가을 정취 물씬한 태기산 정상
청태산 자연휴양림, 숲채원도 가볼만해

강원도 횡성의 안흥찐빵마을. 찐빵을 빚고 있는 노파의 손길에 정성이 가득하다. 찐빵은 밀가루에 달걀 흰자, 설탕, 소금으로 반죽을 만들고 그 안에 팥소를 넣어 숙성 후 찌는 과정으로 만들어진다.
[횡성=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찐빵은 배고픈 국민에게 최고의 간식이었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따뜻하고 촉촉한 촉감이며, 한입 물면 쫀득하면서 포슬포슬한 그 느낌, 한입 베어 물면 살짝 풍기는 밀가루 익은 냄새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가장 치명적인 유혹은 속에 든 팥소. 그 달콤함은 마치 악마의 속사임이었다. 찐빵의 달콤한 유혹을 강원도 횡성으로 향했다. 마침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져 찐빵을 제대로 맛보기에도 딱 좋은 날씨다. 횡성에는 찐빵으로 이름난 곳이 있다. 바로 안흥이다. 안흥찐빵으로 전국적으로도 이름났다. 면소재지 시골 마을에 찐빵집만 무려 19개일 정도다. 이마저도 줄어든 숫자다. 한때 30개가 넘는 진빵집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 입구부터 찐빵 모양 캐릭터가 웃고 있고, 마을 정자도 ‘찐빵 마을 정자’다. 찐빵이 전부인 마을이 안흥이다.

갓 쪄낸 찐빵을 솥에다 옮기는 모습. 막걸리를 더해 반죽한 것이라 약간의 시큼함이 있다. 이 냄새가 특히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가난하던 시절 배고픔 잊게 한 ‘찐빵’

찐빵을 솥에다 옮겨 쪄내고 있다. 막걸리를 더해 반죽한 것이라 약간의 시큼함이 있다. 이 냄새가 특히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원도 횡성의 새말나들목을 빠져나와 다시 42번 국도를 20분쯤 달려 가파른 산길을 내려가면 이번 여행의 목적지 안흥이다. 찐빵은 전국 어디에나 있는 음식이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나, 주택가 길모퉁이 가게나, 시장의 노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이 흔한 찐빵이 안흥이라는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대박’이 났다. 도대체 이 조그만 마을에 이렇게 많은 찐빵집이 생겨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찐빵의 유래부터 살펴보자. 찐빵은 ‘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만두에 더 가깝다. 중국의 만두가 일본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찐빵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1341년 원나라에 유학을 갔던 일본 승려 류잔(龍山) 선사가 귀국하면서 함께 일본으로 간 중국인 임정인(林淨因)이라는 사람이 찐빵을 만들었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그는 이후 절에서 만두를 빚어 생활했다. 고기 대신 단팥을 넣어 일종의 ‘단팥만두’를 만들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육식금지령으로 고기를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임정인도 고기를 만두소로 만들 수 없었다. 대신 일본인이 좋아하는 단팥을 소로 사용했다 . 이후 불교 신도 사이에서 이 단팥만두가 큰 인기를 끌었고. 일본의 만주(饅頭)로 발전했다. 우리나라에는 구한말 일본에서 들어온 만주가 찐빵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지 중의 오지인 안흥은 어떻게 찐빵으로 유명해진 것일까. 안흥의 역사와 지리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안흥은 서울과 강릉을 잇는 국도 42호선이 지나는 마을로, 예로부터 대관령을 넘어 서울로 가는 영동지방의 길손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르는 중간 기착점이였다. 조선시대에는 안흥역이 있어 역관 또는 역촌으로 불렸을 정도였다. 1960년대에는 서울에서 강릉까지 가는데 하루가 꼬박 걸렸을 정도라고 한다. 그 중간이 바로 안흥이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물자가 안흥에서 쉬고 또 묵어갔다. 차부(화물차나 시외버스터미널)가 있었고, 식당과 여관, 차량 정비소까지 들어서며 안흥은 나날이 번성해 갔다. 이때쯤 안흥찐빵이 등장했다. 쉬어가는 사람들에게 요긴한 먹거리, 간식거리로 찐빵은 잘 팔렸다.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찐빵은 인기였고, 안흥찐빵이 고유명사처럼 불릴 만큼 유명하지도 않았다. 이후 1970년대 영동고속도로가 뚫리면서 국도를 지나지 않는 차들로 인해 한때 안흥은 침체기를 맞았다. 사람들은 더는 안흥에서 머물지 않았다. 곧장 강릉으로, 또 서울로 향했다. 그렇게 찐빵도 차츰 잊혀갔다.

안흥진빵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탄 것은 ‘심순녀 찐빵집’이 언론에 90년대 중반에 소개되면서부터다. 당시 맛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열아홉에 찢어지게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와 온갖 행상을 치렀다는 심순녀 씨의 인생담이 더 눈길을 끌었다. 이후 그녀의 찐빵이 갑자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마을 사람들도 너도나도 찐빵집을 차리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최근에도 이곳 가게들은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찐빵을 만들고 있다. 바뀐 게 있다면 막걸리 대신 효모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수요가 늘어나면서 발효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래도 피는 여전히 쫄깃하다. 소는 적당히 달고, 맛은 여전히 구수하다. 손으로 하나하나 손수 찐빵을 만드는 것은 50년 전 그대로다. 바람이 쌀쌀해지는 가을부터 겨울까지 찐빵을 빚는 손도 바빠진다. 성수기에는 이 마을 19개 찐빵집에 수백명의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손으로 찐빵을 빚는다. 다른 누군가에게 또 다른 추억이 그렇게 또 빚어지는 것이다.

태기산 가을 낙조는 두번 보기 힘들 만큼 최고의 장면을 선사한다. 특히 가을철 일교차 큰 날 새벽이나 해 질 무렵에 넘실대는 구름을 뚫고 정상까지 솟구쳐 오르면 고산준령이 섬처럼 떠 있다.
◇가을로 물들어가는 횡성의 자연

서울에서 주문진을 잇는 6번 국도는 10월의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주목받는 드라이브 코스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횡성군과 평창군을 잇는 구간에서 길이 험해진다. 바로 태기산(1261m)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태기산은 여행을 좀 다녀본 이들이 가을에 꼭 한번 찾아가봐야 할 산 중 하나다. 가을철 일교차 큰 날 새벽이나 해 질 무렵에 넘실대는 구름을 뚫고 정상까지 솟구쳐 오르면 고산준령이 섬처럼 떠 있다. 특히 태기산의 가을 낙조는 두 번 보기 힘들 만큼 최고의 장면을 선사한다.

횡성의 최고봉인 태기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주변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이 으뜸으로 꼽히는 산이다. 삼한시대 말기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신라군에게 쫓기다 이곳에 산성을 쌓고 신라와 싸웠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태기산 자락인 성골 골짜기에는 허물어진 성벽을 비롯해 집터와 샘터가 곳곳에 남아 있다. 산 능선을 따라 줄지어 선 20기의 풍력발전기도 눈길을 끈다. 풍력발전기 옆으로 개설된 임도를 따라 차를 타고 편안하게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력발전기와 그 뒤로 보이는 산과 들의 풍경은 말을 잃게 한다. 낮은 구름으로 산들이 섬처럼 보일 때가 특히 아름답다.

청태산자연휴양림은 울창한 잣나무 숲 사이에 800m 길이의 데크로드가 놓여 있어서 누구나 쉽게 숲을 접할 수 있다.
인근의 청태산(1200m)도 무르익는 가을을 만끽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청태산자연휴양림’은 천연림과 인공림이 잘 조화된 산림을 간직하고 있다. 휴양림에서 청태산 정상까지는 6개 등산로가 있다. 울창한 잣나무 숲 사이에 800m 길이의 데크로드가 놓여 있어서 누구나 쉽게 숲을 접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휴양림에는 숲속의 집 11동 11실, 산림문화휴양관 2동 29실 등 숙박시설과 숲속수련장 3동이 갖춰져 있다. 잣나무 숲에 자리한 28개의 야영 데크는 청태산자연휴양림을 ‘캠핑하기 좋은 국립자연휴양림 6선’에 들도록 한 1등 공신이다.

청태산에는 ‘2010 한국관광의 별’에서 장애인 우수관광시설부문을 수상한 숲체원이 있다. 이곳에는 두 개 단지로 만들어진 아늑한 분위기의 통나무형 숙박시설이 있고 숲속휴게소와 식당, 휴게동 등의 편의시설도 있다. 탐방로는 노약자나 장애인도 쉽게 숲 체험을 할 수 있는 데크로드, 야생화와 버섯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생태교실 코스, 자작나무와 잣나무 숲을 지나 오솔길로 오르는 숲 탐방로 코스로 나뉜다. 숲체원은 다양한 프로그램도 선보인다. 직무 스트레스 해소, 공동체 의식 강화, 숲에서의 자아 성찰 등의 맞춤형 프로그램뿐 아니라 숲 모니터링, 생태교육 등을 이용할 수 있다

횡성축협한우프라자 횡성본점의 한우구이
◇여행메모

△잠잘곳= 인근의 성우리조트(033-340-3000)와 성우유스호스텔(033-340-3000)도 가족여행객이 자주 찾는 곳이다.

△먹을곳= 횡성을 대표하는 먹거리는 횡성한우다. 진짜 횡성산 한우는 간판에 ‘횡성한우’ 로고를 새겨놓은 식당에서만 맛볼 수 있다. 횡성본점(033-343-9908), 우천점(033-345-6160), 새말점(033-342-6680), 둔내점(033-345-8888) 등을 거느린 횡성축협한우프라자가 가장 믿을 만한 집이다. ‘양평식 해장국’을 내는 운동장해장국(033-345-1770)은 지역주민의 단골집이다. 안흥찐빵은 면사무소 앞 안흥찐빵(033-342-4570)과 심순녀 안흥찐빵(033-342-4460)이 손꼽히는데 자매가 운영한다.

△‘제11회 안흥찐빵축제’가 오늘(13일)부터 일요일(15일)까지 안흥면 안흥찐빵마을 일원에서 열린다. 국내 유일의 찐빵축제로 찐빵과 함께하는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안흥찐빵 만들기 체험, 안흥찐빵 많이 먹기 대회, 안흥찐빵 무료 시식 등 안흥찐빵을 주제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이 외에도 도리깨질, 민속놀이 등 농경문화 체험과 도깨비도로 체험, 코스모스 포토존, 추억의 영화관 등 즐길 거리도 가득하다. 문의는 안흥찐빵축제위원회(033-340-2703).

운동장 해장국의 양평식 해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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