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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 북촌 사무실에서 만난 존리(62·한국명 이정복)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대표적인 ‘주식 전도사’다. 1991년 미국 투자회사인 스커더 스티븐스 앤드 크락(Scudder Stevens & Clark)에서 코리아펀드를 운용하면서 월가의 스타 펀드매니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라자드 에셋 매니지먼트(Lazard Asset Management)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장하성 펀드로 알려진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를 운용했다.
2014년에는 미국 생활을 접고 귀국길에 올랐다. 월가에서 키운 투자신념과 교육철학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공유하며 현명한 주식투자 문화를 정착시키고 싶다는 바람에서였다. 실제 전국 방방곡곡 버스 투어를 다니며 “커피 사먹을 돈으로 커피 회사 주식을, 보톡스 맞을 돈으로 보톡스 회사 주식을 사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그가 강단에 오른 횟수만 1000여건이다. 때문인지 이번 ‘동학개미운동’을 기점으로 그는 동학 대장 ‘존봉준’(존리+전봉준)이란 별칭을 얻었다. 그는 “다들 현금을 챙기라는 패닉장에서 주식을 해야 한다는 말이 신선했나 보다”고 웃었다.
◇ 투자의 원칙…여유 자금으로 장기·분산 투자
리 대표가 제시하는 투자 원칙은 늘 동일하다. 여유 자금으로 분산 투자하고 오래 쥐고 있으라는 것이다. 최근 유행하는 원유나 금 투자에 대해선 “일반 투자자에겐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원자재나 부동산은 기관이나 수천억원을 가진 자산가에겐 헤지(hedge·위험 회피) 수단이지만, 이익 극대화를 위해 움직이는 기업과 달리 ‘일하는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기간 수익률에 일희일비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쏟아져 나오는 비관적인 전망에도 적당히 귀를 닫아야 한다고 했다. 월가 펀드 매니저 시절 어떻게 마인드 콘트롤을 했는지 묻자 “안 봤다”고 답했다. 지금도 그의 사무실 책상은 단촐했다. 그는 “삼성전자(005930)를 샀다면 업황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한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면서 “재무구조, 거버넌스 등을 잘 따져 살 때 잘 사야 한다”고 말했다.
주식 투자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 기존 일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리 대표는 “기업은 살아남아도 개인은 그렇지 못할 것”이라면서 “대신 기업의 주식에 투자하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 “덕분에 사교육 줄였단 말에 보람”
사무실 한 벽면을 꽉 채운 커다란 지도에는 전국 시·군이 모두 표기돼 있었다. 강연을 다녀온 곳마다 노란 스티커를 붙여놨다. 지도를 스티커로 빼곡히 채우는 게 그의 목표였다. 처음 강연을 나갈 땐 펀드 수익률을 운운하며 야유하던 이도, “왜 주식을 권하느냐”고 분노하던 청중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월가 펀드 매니저 시절보다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돈에 관심 없는 대학생”, “사교육 탓에 노후 준비가 뒷전인 학부모”를 만날 때마다 “잠잘 때가 아니다”고 다짐하곤 했다.
투철한 사명감의 근원이 궁금했다. “일본의 실패를 답습할까 끔찍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일본에 대해 “예금과 부동산, 채권에만 투자하는 금융문맹의 나라”라고 표현했다. 리 대표는 “한국이 20년 후 일본처럼 된다면 한국인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면서 “‘동학개미운동’이 올바른 투자 문화로 자리매김하는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주식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 자체에선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강연 뿐만 아니다. 지난해부터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메시지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직원의 권유가 있었다. 2020년 5월 현재 13만 구독자를 자랑한다. 올해 1월 출간한 ‘존리의 부자되기 습관’은 다섯달 만에 16쇄를 돌파했다.
사무실로 직접 찾아온 독자의 사례를 소개했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중년 여성은 방과 후 ‘학원 순례’가 일이었다. 리 대표의 영상을 접한 후 아이에게 의견을 물어 본 후 과감하게 사교육을 끊었다고 했다. 그 돈으로 노후를 준비했다. 아이도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 대신 취미에 푹 빠졌다고 했다.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
◇ 운용사 단독지점으로 접점 늘린다
이번 ‘동학개미운동’에도 불구하고 주식형 펀드 시장은 여전히 외면받았다. 평소 세제 혜택 등을 이유로 연금저축펀드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는 리 대표는 “주식을 하라는 말에는 펀드가 포함돼 있었는데 안타까운 일”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는 다음 책의 주제이기도 했다. 그는 “누군가 ‘주식을 하라’고만 하지 말고 ‘어떻게 해야할지도 알려달라’고 하더라”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투자에 관한 내용으로 다음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6일에는 오금역 인근에 자체 지점이 문을 열었다. 전문적인 리테일 상담 인력을 배치하되 애플 스토어처럼 남녀노소 펀드를 손쉽게 이해하고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펀드 가입은 비대면으로 직접 가입이 가능한 ‘메리츠자산운용 펀드투자’ 앱을 이용해 이뤄진다. “투자가 일상이 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코로나19라는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수많은 기업이 흔들리겠지만 살아남는 기업은 더욱 더 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온라인의 강화, 부동산의 약화, 게임·화상회의 관련주의 약진 등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도 짚었다. 코로나19로 높아진 국가 신용도 호재였다. 그전까지 “한국은 금융문맹”이던 날선 주장과는 온도가 사뭇 달랐다.
“지금 대한민국은 혁명 중입니다. 그걸 잘 이뤄내면 선진국으로 가는 거고, 그렇지 못하면 일본처럼 될 수 있습니다. 이 ‘기회’를 올바른 투자 문화 정착으로 잘 가져가야 할 때입니다.”